by. 예하

 

 

가끔 세상엔 정말 이상한 영화들이 나타난다. 돈 없는 열정이 만든 허접한 망작들과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때려 부은 기괴한 영화들이 불쑥불쑥 탄생하는 것이다. 도저히 명작이라곤 할 수 없지만, 분명 영화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세기의 망작 혹은 문제작 5편을 살펴본다.

 

 

 

몽둥이로 귀신 잡는 한국형 B급 호러, ‘무서운 집’

 

이미지: ㈜콘텐츠 윙

 

한국은 자랑스러운 망작의 나라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리얼] 등 역사적으로 쟁쟁한 선택지가 너무 많았지만, 결국 이 영화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서운 집]은 2015년 한국의 컬트 영화계를 강타한 문제작이다. 말도 안 되는 포스터와 예고편을 보고 훌륭한 장난이라 웃었지만, 본편은 더 심했다는 게 문제다. 이 영화가 거대한 농담인지, 진짜 이상한 사람이 만든 진짜 이상한 영화인지 아직도 확실치 않다. 한참 살림을 하고 김치를 담그던 주인공이 움직이는 마네킹을 봤다가, 귀신을 봤다가(귀신이 마네킹에 빙의가 되는 건지 별개의 등장인물인지도 모르겠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 몽둥이로 귀신을 팼다가, ‘베사메 무초’를 틀고 춤을 췄다가… 어쩌면 이거야말로 ‘아방(가르드)한’ 영화인 걸까? 끊임없이 등장하는 계단과 침대 때문인지, 고 김기영 감독의 영화가 연상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실 너무나 한국적인 장치들을 제쳐두면 허접한 분장과 말도 안 되는 플롯으로 B급 호러물의 정석을 충실히 따르는 영화다. 이 영화의 간증 가득한 별점 페이지는 농담이라고 해도, 하여간 봐서 후회할 영화는 아니다.

 

 

통쾌하게 망한 액션 어드벤처, ‘사하라’

 

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에 망한 영화가 없다면 이상할 거다. 2005년 개봉한 [사하라]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선정한 ‘역사상 가장 망한 블록버스터’다. 4000달러를 훌쩍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아니, 매튜 맥커너히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주인공인 ‘통쾌한 액션 어드벤쳐’를 왜들 그렇게 싫어했을까? 원작 소설도 흥미로웠다고 하는데? 사실 이 영화는 ‘완전히’ 망한 건 아니다. 물론 가당찮은 플롯과 최악의 기술이라는 혹평을 받긴 했어도, 결과적으로는 중간치 아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관객 반응을 얻었다. 문제는 애초에 제작비를 너무 많이 썼다는 점이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종횡무진하며 자그마치 1억 6000만 달러를 뿌리고 다닌 걸 보면 정말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평단과 관객이 입을 모았듯 영화가 너무 촌스럽다. 굳이 좋은 소식을 찾자면 두 주연이 잠시나마 실제로 사랑에 빠졌다는 것인데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특히 매커너히는 매우 슬프게도 계속해서 틈틈이 망작의 길을 걷고 있는데, 한국에는 올초 개봉한 남북전쟁 시대극 [프리스테이트] 역시 5000만 달러의 제작비 중 2320달러를 회수하는데 그쳤다.

 

 

명예의 전당, 부동의 최악,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이미지: Valiant Pictures

 

너무 못 만들어서 [시민 케인]의 안티테제를 자청하는 영화는 여럿 있지만, 이 전설을 이길 수 있는 작품은 없다.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은 공식적으로 세상에서 제일 못 만든 영화다. 1959년 만들어진 이 영화의 ‘못 만듦’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은 지구를 방문한 두 명의 외계인이 죽은 사람들을 깨워 행성을 멸망케 하려고 한다는 내용의 SF 좀비물이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거의 모든 장면을 실내에서 촬영했고, 미니어처 UFO에 선명히 보이는 실을 매달아 손으로 덜덜 흔드는 것이 특수효과다. 감독 에드워드 역시 손꼽히는 기인인데, 팀 버튼이 그를 동족이라고 생각했는지 [에드 우드]라는 전기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한편 비루한 말년을 보내고 있던 [드라큘라]의 주인공 벨라 루고시를 만나 수 편의 영화를 찍을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가 루고시의 유작이 되었다. 에드 우드 역시 그리 유복하지 않은 말년을 보냈는데, 사후에 피터 잭슨이니 쿠엔틴 타란티노니 하는 감독들을 포함한 팬들에게 컬트적 지지를 받아 8~90년대 저예산 B급 호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저작권이 풀렸기 때문에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위키 페이지에만 들어가도 본편을 볼 수 있다. 고전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박물관에 가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자. 웃든, 놀라든, 황당하든, 어느샌가 이 졸작에 속절없이 빠져있을 테니까.

 

 

사람들은 왜 스크린에 숟가락을 던지는가? ‘더 룸’

 

이미지: Chloe Productions, TPW Films

 

[스타워즈] 프리미어에 나타나는 제다이들과 [록키 호러 픽쳐쇼]의 모든 넘버를 따라 부르는 메이드복 차림의 관객들은 이제 익숙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이 들어보지도 못했을 독립영화의 상영관 앞에 숟가락(???)을 들고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 영문 모를 일이다.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이후 세상에서 두 번째로 못 만든 영화로 인정받는 [더 룸]의 인기를 단번에 설명하기는 힘들다. 말도 안 되는 설정과 전개, 분장으로 직관적 재미를 주는 여타 B급 망작들과 달리 [더 룸]은 아주 심각하고 우울한 내용의 드라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이 인기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제작, 각본, 연출, 주연을 맡은 토미 웨소의 형편없는 연기와 말도 안 되는 각본이 일으키는 묘한 시너지를 직접 겪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둘러싼 전통은 듣기만 해도 재미있다. 최악의 영화 중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더 룸]의 특별상영은 아직도 전 세계에서 열리고 있다. 사람들은 영화에 나온 무의미한 숟가락 사진을 정말 무의미하게 기리며 집에서 소중히 가져온 숟가락을 스크린에 내던진다. 상영 내내 큰 소리로 이 기념비적인 쓰레기 영화를 욕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대사를 따라 한다. 노래만 없었지 [록키 호러 픽쳐쇼] 싱얼롱만큼이나 즐겁다. 사실 웨소는 이 영화의 제작비 일부를 한국산 가죽점퍼를 미국에 수입하여 번 돈으로 충당했는데, 이곳 제작비의 고향에도 한 번쯤 어처구니없는 상영이 있길 바란다.

 

 

형언할 수 없는, ‘버데믹: 쇼크 앤드 테러’

 

이미지: Severin Films

 

최악의 영화 자리를 탈환하려는 망작들의 다툼은 생각보다 진지하고 치열하다. 그러니 [버데믹]을 본 관객들이 앞서 소개한 [더 룸]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고전 명작 [새]에 관한 오마주라는 이 작품은 새떼가 마을을 공격하는 와중에 피어나는 젊은 남녀의 사랑을 그리는 로맨스 영화다. 대체 2010년대에 어떻게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건지, 혹시 이것이 아무나 영화를 만드는 진정한 디지털 영화 시대의 도래인 건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19%, IMDB 평점 1.8/10이라는 잔인한 스코어를 기록했지만, 옷걸이를 들고 이모지처럼 생긴 새떼를 물리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이것을 영화로 인정해주는 관객들과 각종 사이트들이 참 선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기사를 읽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장 유튜브에 ‘birdemic bird attack scene’을 쳐볼 것. 보면 안다.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