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빈상자

 

 

여러 예술 장르 중에서도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진 영화는 다른 예술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제 영화는 대표적인 대중예술로 성장해 그 영향력을 다른 예술에도 돌려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배우는 자세를 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여전히 여러 예술 장르의 성과를 광범위하게 흡수하며 지금의 위치를 더욱더 견고하게 다지고 있다.

영화는 여러 예술 매체 중에서도 특히 사진과 가장 밀접하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더구나 두 매체의 기술기반과 영화가 1초에 24장의 사진을 이어 붙인 결과물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한 몸에서 난 형제 정도가 아니라 한 몸을 공유하고 있는 두 개의 다른 모습으로 느껴질 정도다.

상상의 것을 시각화하거나 현실을 재현하려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종종 알게 모르게 기존에 있었던 이미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건 때로는 수십 년에 걸쳐 쌓인 이미지의 결과물이기도 하고, 때로는 단 한 장의 이미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1. 블레이드 러너 2049

 

자아에 대한 질문과 사건의 실마리를 풀려는 K(라이언 고슬링)는 데커드(해리슨 포드)가 있는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육중한 건축물과 거대한 동상들이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지만, 영화 속에서 라스베이거스는 대재앙 후 방사능 낙진 때문에 버려진 유령도시다. 라스베이거스로 향하기까지 주 무대였던 로스앤젤레스가 어두운 밤과 무채색의 공간인 반면, 라스베이거스는 안개와 같은 오렌지색 물질로 뒤덮였다.

 

 

이미지: 소니 픽쳐스

 

거대한 도시였던 라스베이거스를 사람들이 방사능 낙진 때문에 버렸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 오렌지색 물질이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거대한 유령도시를 감싸고 있는 ‘오렌지 안개’는 라스베이거스를 을씨년스럽게 보이게 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아름다움을 남겨준다.

 

이미지: 소니 픽쳐스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은 로저 A. 디킨스 촬영감독은 드니 빌뇌브 감독과 오랜 시간에 걸쳐 라스베이거스의 풍경을 구상하다가 2009년 호주에서 있었던 모래폭풍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당시 호주 남서부 내륙에서 발생한 거대한 모래폭풍은 수도 캔버라를 거쳐 해안 도시 시드니에까지 이르렀다.

 

이미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트위터

 

우리의 황사경보를 무안하게 할 정도였던 ‘적색 모래폭풍(Red Dust Storm)’은 항공을 포함한 교통을 마비시키고 야외활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할 정도였다. 숨쉬기조차 두려운 풍경에 놀란 사람들은 당혹감 속에 마스크를 사기 위해 상점들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미지만으로 이날의 소식을 접한 사람들에게는 오렌지빛 모래폭풍이 덮은 시드니의 풍경은 아름답기도 했고 신비롭기도 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소름이 돋으면서도 경이로운 그날 시드니의 풍경이 원작에는 없어서 새로 창조해야 하는 라스베이거스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도시지만, 라스베이거스는 영화와 K, 그리고 팬들이 30년 넘게 간절히 찾던 비밀과 데커드를 간직하고 있는 신비로우면서도 두렵기도 한 신전과 같은 도시니까.

 

 

2. 칠드런 오브 맨

 

[칠드런 오브 맨]은 아이가 더는 태어나지 않는 2027년의 암울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2006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상상한 암울한 세상은 먼 미래보다 현시대의 비극을 많이 닮았다. 특히, 영화 속 사회는 2010년대 유럽 난민위기와 2016년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커지고 있는 국수주의와 급속한 우경화를 닮았는데, 이 영화가 상상의 허구가 아니라 예언서처럼 보일 정도다.

이러한 ‘예언’이 가능했던 것은 원작 소설의 작가 P. D. 제임스가 인류가 반복하고 있는 역사를 통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영화에서 인류 역사의 여러 지점을 상징하는 미술과 음악을 통해 이를 시각·청각화했다. 그것이 우리가 영화를 보다가 불현듯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나 핑크 플로이드의 ‘애니멀스’ 앨범을 떠올리게 되고, T. S. 엘리엇의 ‘황무지’에서의 한 줄이나 킹 크림슨의 ‘In the Court of the Crimpson King’을 듣게 되는 이유다. 거기에 감독은 아예 뱅크시의 그래피티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하는 친절함도 보여준다.

 

이미지: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사마농(주), 씨네클럽봉봉미엘

 

그중에서도 감독이 특히 애정을 들인 인용은 ‘피에타’의 이미지였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보다 일반적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은 종교를 떠난 비극의 상징으로 다양한 예술의 형태로 수없이 반복되었다.

[칠드런 오브 맨] 막바지에 이르러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거의 20년 만에 태어난 인류의 아기와 아기의 어머니 키와 함께 한참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마을 뚫고 나가려고 한다. 그때 정신없이 주인공 일행을 따라가던 카메라는 거리에 주저앉아 죽은 아들을 안고 울부짖고 있는 어머니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다.

 

이미지: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사마농(주), 씨네클럽봉봉미엘

 

그 모습은 근본적으로는 ‘피에타’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1990년 코소보 분쟁 중에 프랑스 포토저널리스트인 조르주 메릴롱(Georges Mérillon)이 촬영한 한 사진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마치 르네상스 회화와도 같은 메릴롱의 사진 속에는 알바니아계를 탄압하는 유고연방군에 반대하여 시위하다 학살된 아들의 시신을 어머니와 누나를 포함한 가족과 이웃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미지: 조르주 메릴롱

 

영화에 직접 등장하는 피카소의 ‘게르니카’에서도 피에타의 이미지를 찾을 수 있지만, 감독은 같은 이미지가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을 우려했는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직접 등장시키는 것만은 그만둔다. 대신 놓인 ‘다비드’ 앞에서 정부 고위 관료는 테오에게 변명하듯 말한다. “피에타는 가져오기 전에 그만 파괴됐지 뭐야.” 결과적으로 관객이 영화를 통해 가장 강렬하게 목격하게 되는 피에타는 미술관도 성당도 아닌, 전쟁터 한복판에 놓인 모자의 생생한 모습이 되었다.

 

 

3. 라이언 일병 구하기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나온 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전쟁영화 경향의 전과 후를 가르는 전환점으로 빈번히 언급된다. 가장 뛰어난 전쟁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의 전쟁영화에 미친 파급력만큼은 거부하기 어렵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영화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빈번하게 거론하는 장면은 역시 영화 초반부터 20여 분간 이어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명 ‘오마하 해변’ 전투 장면이다. 당시로서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클라이맥스를 넘어서는 무게감을 전달하는 형식 자체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관객들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극사실주의라고까지 표현되는 전쟁의 묘사였다.

공포와 혼란에 휩싸여 시야가 불분명해지고 귀가 멀어지는 순간을 넘어, 사지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흘러내려오는 장면에는 슬래셔 공포영화를 본다고 하는 관객조차 범접할 수 없는 사실성이 담겨 있다.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오마하 해변 장면에 대해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사진을 재현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기울였다고 했다. 로버트 카파는 헝가리 출신의 미국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사진가였다. 잡지 ‘라이프’ 현상소의 실수로 대부분이 소실되는 사고도 있었지만, 카파가 혼란스러운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촬영한 사진은 거친 입자에다 흔들려 디테일이 뭉개지면서 망쳐진 것처럼 보였다.

 

이미지: 로버트 카파, ICP

 

하지만, 이 한 장의 사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물론 2차 대전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된다. 사람들은 안정된 구도와 고운 입자, 날카로운 선으로 현장을 또렷하게 담긴 사진들보다 이렇게 거칠고 불안정한 사진에서 전쟁터의 공포와 참혹함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야누시 카민스키 촬영감독은 로버트 카파의 렌즈와 필름에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으로 렌즈의 코팅막을 벗겨내고 색조를 60퍼센트나 낮춰 흑백 필름에 가깝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카메라를 그날 현장의 로버트 카파처럼 전쟁터 한복판에 밀어 넣고 공포와 혼돈 속에서 흔들리고 방황하는 현장감을 포착했다. 덕분에 잔혹한 장면보다 멀미 참기가 더 힘들었다는 관객이 속출하기도 했지만 전쟁터의 충격과 공포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사실적인 장면이 만들어졌다.

 

 

4. 샤이닝

 

만일 나란히 서있는 쌍둥이의 이미지를 보면서 싸한 기운을 느낀 경험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의 영화를 봤거나 또는 [샤이닝]의 영향으로 재탄생된 공포스러운 쌍둥이의 이미지를 접한 경험이 있어서일 것이다.

 

이미지: 워너 브라더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특히 지금의 관점에서, 가장 무서운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도 공포라는 개념을 이만큼 깊게 탐구하고 파고 들어가는 영화는 흔하지 않다. 더구나 감독이 영화 곳곳에 겹겹이 쌓아놓은 인용과 장치들까지 하나하나 다 이해하고 나면, 갑자기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닌 서서히 젖어들게 하는 그 공포감은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이 지나도록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지: 워너 브라더스

 

큐브릭 감독이 그렇게 관객들에게 각인한 장면 중 하나는 호텔 복도에서 세발자전거를 타던 대니 앞에 등장하는 쌍둥이의 이미지다. 폭설로 외부와 차단된 거대한 호텔의 텅 빈 복도를 달리는 대니를 마치 악령이 따라가듯 스태디캠이 부드럽게 따라간다. 그러다 모퉁이를 돌자 복도 끝에 불현듯 나타난 쌍둥이가 대니에게 말을 건다. “이리 와서 우리랑 같이 놀자. 영원히, 영원히, 그리고 또 영원히.” 이 쌍둥이는 대니의 가족이 이 호텔에 오기 전 같은 장소에서 아버지에게 (도끼로) 살해당한 그래디 자매였다.

 

이미지: 위키피디아

 

1980년 [샤이닝]의 그래디 쌍둥이 자매는 1966년에 사진가 디앤 아버스(Diane Arbus)가 촬영한 웨이드 쌍둥이 자매와 놀라운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 두 이미지에서 모두, 복도에서 선 쌍둥이 자매는 똑같은 옷과 악세서리를 하고 어깨를 맞댄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묘한 표정의 차이가 나는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의 이미지는 마치 한 사람으로부터 나온 두 개의 자아를 목격하거나 혹은 나의 도플갱어와 나란히 서있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전달한다.

디앤 아버스의 쌍둥이 사진에서 특별히 어떤 공포나 기괴함을 전달하려고 하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신∙지체장애인, 매춘부, 난쟁이, 거인, 여장남자 등 사회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소외층을 주로 촬영했던 사진가의 명성은 이 평범한 사진에 조차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려주었다.

스탠리 큐브릭이 디앤 아버스의 사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으며, 그의 부인은 두 이미지의 연관성이 우연의 일치일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큐브릭과 아버스는 동시대를 산 대표적인 시각예술가였고, 무엇보다 큐브릭 자신이 영화감독 이전에 사진가였으며 잡지사 ‘룩’에서 사진을 배울 때 아버스를 가까이하기도 했다.

소설에서는 자매로만 되어있는 것을 큐브릭이 영화에서 쌍둥이로 바꾸고, 쌍둥이를 캐스팅한 스태프는 아버스의 작품을 염두에 두고 연기 지도를 하기도 했다. 이점을 들어 많은 평론가들이 큐브릭이 아버스의 쌍둥이 사진을 잘 알고 있었고, [샤이닝]의 가장 섬뜩한 장면 중의 하나로 재창조했다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최근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샤이닝]의 무대가 되는 호텔과 쌍둥이를 다시 만났을 때 무섭다기보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건 신선한 체험이었다. 쌍둥이의 이미지는 아버스의 생경한 인물사진과 큐브릭의 섬뜩한 장면을 거쳐 많은 사람들에게 기괴한 이미지로 각인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래서 억울한 세상의 모든 쌍둥이들을 위해서라도, 또한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서라도, 쌍둥이의 이미지 변신이 반갑기도 했다. 물론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아버스의 사진과 큐브릭의 영화를 기억하는 누군가 다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미지를 재창조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와 사진이 교차하고 겹쳐지는 우연 또는 필연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