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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슈퍼 히어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유쾌하지만 ‘번아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Written By. 키스 핍스, Keith Phipps

Translated By. 띵양

 

*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이미지: 소니 픽쳐스

 

피터 파커는 피곤에 찌들었다. 그리고 우울하다. 40대를 앞둔 그의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사랑하는 메이 숙모를 잃었고, 메리 제인과는 헤어졌다. 또한 몇 차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이제 홀로 냉동 피자나 먹으며 늘어나는 몸무게와 지금보다 더 어두울 미래를 바라볼 뿐이다. 그가 슈퍼 히어로 활동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피터 파커 – 적어도 한 명쯤 – 에게 찬란했던 과거는 옛 영광에 불과하다.

 

필 로드와 로드니 로스먼이 각본을 쓰고, 로스먼과 피터 램지, 밥 퍼시케티이 연출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올해 개봉한 큰 스케일의 애니메이션 중 가장 창의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와 아이디어, 그리고 지난 10년동안 <스파이더맨> 코믹스에서나 볼 수 있던 뉴페이스들로 꽉 찬 작품이다.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와 사라 피첼리의 손에서 태어난 아프리카-라틴계 소년 마일스 모랄레스, 스파이더 로봇과 히어로로 활약하는 일본계 미국인 중학생 페니 파커(키미코 글렌), 흑백 세계의 하드보일드 탐정 스파이더맨 누아르(니콜라스 케이지), 피터 파커가 사망한 평행 세계에서 그의 뒤를 이은 스파이더 그웬(헤일리 스테인펠드), 그리고 작중 코믹스 세계에서 건너온 초능력 돼지 스파이더햄(존 멀레이니)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다양한 스파이더맨이 활동하는 평행 세계를 그린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앞서 설명한 이들과는 다른 피터 파커(크리스 파인)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그는 우리가 아는 피터 파커보다 훨씬 어리고, 머리도 금발인 데다 상당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상을 구하는 재능도 뛰어나 대중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어느 정도인고 하니 그가 낸 크리스마스 앨범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다. 문제는 그가 영화 초반부에서 마일스 모랄레즈(샤메익 무어)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는 것이다. 마일스는 피터의 죽음 이후, 스파이더맨의 정체성과 의무를 이어간다.

 

이미지: 소니 픽쳐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슈퍼 히어로의 주어진 책임을 긍정적으로 여긴다는 점이 이들의 매력 포인트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마일스는 성장하면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전통적인 메시지를 깨닫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마냥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슈퍼 히어로 영화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이 든 피터 파커’ 콘셉트는 거의 모든 <스파이더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 중년 피터(제이크 존슨)는 마일스의 멘토쯤 되는 인물이지만, 자신의 의무를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가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마일스를 비롯한 스파이더맨들이 자신의 전철을 밟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물론 제이크 존슨의 피터 파커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여러 스파이더맨 중 한 명일 뿐이다. 마일스의 세계 속 피터 파커가 만일 죽지 않았더라면, 피터(제이크 존슨)처럼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전혀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크리스 파인은 분명 다재다능한 배우지만, 제이크 존슨이 자연스레 보여준 우울감과 실망감을 연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피터 파커(크리스 파인)는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기도 전에 세상을 떠날 가능성도 높다. 이는 모든 슈퍼 히어로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스파이더햄도 과거를 돌아보며 ‘뭐가 문제였지’라고 고민하는 날이 올까?

 

제이크 존슨의 피터 파커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든 요소는 바로 ‘참신함’이다. <스파이더맨> 영화나 TV 시리즈, 코믹스에서는 이런 류의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단순히 나이만 많은 피터 파커는 여러 번 등장했다. 카리 앤드류스의 코믹스 시리즈 <스파이더맨: 레인>에서는 굉장히 연로한 피터 파커가 등장한 바 있으며, <어메이징: 스파이더걸>에서는 은퇴한 중년의 피터 파커가 등장하기도 했다. 전성기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히어로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윌 스미스 주연 [핸콕]이 머리를 스치지만, 그의 문제는 실망감이나 환멸과는 거리가 멀다. 코믹스와 넷플릭스 시리즈의 제시카 존스 역시 트라우마로 생긴 비관적인 사고방식과 음주습관이 문제지, 나이나 후회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이미지: 넷플릭스, 소니 픽쳐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대개 슈퍼 히어로물은 주인공 앞에 끝없이 펼쳐지는 단편적인 위기들에 대한 이야기지, 히어로 활동 자체에서 느끼는 권태를 담지는 않는다. 우리가 아는 가장 고통받는 히어로들조차 자신의 정체성만큼은 항상 유지했다. 데어데블은 항상 죄책감에 시달리고, 배트맨도 지독한 강박증 환자지만 적어도 두 사람은 히어로 활동에 대한 고뇌를 멈추지는 않는다. 피터 파커도 마찬가지다. 1962년 대중들에게 첫 선을 보인 이후, 설령 벌처나 사냥꾼 크레이븐, 혹은 앞길을 막는 악당이 없는 상황에도 피터는 남들에게 실망감을 안길까 두려워하고 고뇌한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피터 파커는 자신의 존재가 실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애당초 후회와 걱정을 포기했다. 젊은 시절의 야망과 즐거움은 차가운 현실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피터 파커에게 나이는 한계를 의미했고,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피터 파커의 운명이 숙명임을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CW [블랙 라이트닝]은 다른 슈퍼히어로와 비교했을 때 연로하고 지혜로운(재미있게도 이제는 슈퍼 히어로를 연기한 배우가 나이 드는 것이 트렌드가 되는 추세다)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이 외에는 딱히 다른 반례가 없는 게 현실이다. 보통의 슈퍼 히어로라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피터 파커처럼 나이 들수록 슬럼프를 겪는 게 일반적이다. 몇 번만 삐끗하면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맨해튼 마천루 사이를 날아다니다가도, 다음날 너무 지쳐서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은 기분. 올해 개봉한 그 어떤 영화보다도 ‘중년’에 대한 묘사가 현실적이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런 이야기가 슈퍼 히어로 장르에서 더 자주 다뤄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처럼 ‘히어로의 다양성’을 역설하는 작품이 나온 직후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른 작품이기는 하지만, [로건]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히어로의 이야기가 가진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제임스 로드(a.k.a 워머신)가 테렌스 하워드에서 돈 치들로 바뀐 것 외에는 마블 스튜디오에서 배우 교체를 감행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지만, 배우가 캐릭터와 함께 늙어가면서 이야기가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미 이런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봐도 무방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치른 희생과 결정의 망령에 점차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왔고, 크리스 에반스의 캡틴 아메리카도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깊은 환멸감에 빠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 사람의 고뇌는 이야기의 중심이기보다는 곁다리에 가깝고, 적어도 한 사람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하차하는 내년이면 이 이야기의 끝이 보일 예정이다.

 

그런데 만약 두 사람의 고통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다면? 예를 들어보자. 만일 [블랙 위도우] 단독 영화가 온전히 트라우마를 탐구하고 이것이 나타샤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면 어떨까?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이 부분을 수박 겉핥듯 다루기는 했다. 어두운 과거를 설명하고, 비극적인 사랑을 암시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제대로 다뤄진 적은 한 번도 없다. 만일 나타샤의 자아성찰을 그저 ‘불임은 끔찍한 공포’라는 몇 마디 대사로 처리하는 대신 더욱 심도 있게 다뤘다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지금보다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지 않았을까? 스칼렛 요한슨은 폭력과 속임수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캐릭터의 내면을 탐구할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블에 굉장한 역량의 배우가 있는 셈이다. 블랙 위도우의 이야기에 필수적인 액션과 반전뿐 아니라 스칼렛 요한슨의 재능에 기대서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앞에 놓인 단 한가지 예시 –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가 피터 파커의 재기 가능성을 서브 플롯이 아닌 핵심 줄거리로 사용했더라면 영화는 대단히 우울했을 것이다. 마일스에게 길을 인도하는 밧줄(정확히는 거미줄)을 쥐어주고, 다른 스파이더맨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가 즐겁게 살았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자가치유의 가능성을 제시하므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피터 파커가 막 어두운 터널 속에서 벗어나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가 터널을 빠져나오는지, 나오지 못하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아마도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그러기엔 과한 에너지를 쏟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두고 볼 일이다. 소니는 이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여성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핀오프와 속편 제작을 확정한 상황이다. 피터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이후 나아질지는 아직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의 불확실한 미래가 영화 초반에 보여주었던 실망과 생기 없는 태도만큼이나 어둡고 무거워 보인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스파이더맨들을 생소한 악당과 양자 영역의 세계와 마주하게 하면서 위기로 몰았다. 그러나 잊지 말자. 그 어디에도 ‘내일’만큼 수수께끼로 가득하고, 불확실한 존재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Superhero, Fatigued: The Mostly Joyous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 Is Also About Burn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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