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중요한 역사적 사실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역사의 방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대체 역사’는 그 흥미로운 호기심에서 시작한다. 익히 잘 알고 있는 특정 역사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은 이야기로 바꾸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낸다. 역사 왜곡이나 고증 오류 논란에서 자유롭게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대체 역사물에 속하는 드라마는 어떤 게 있을까. 무시무시한 상상력으로 역사를 재배치하고, 혹은 시간여행을 도입해 역사를 바꾸려고 하는, 흥미로운 시도가 인상적인 드라마를 소개한다.

 

 

 

맨 인 더 하이 캐슬(The Man in the High Castle)

이미지: 아마존

아마존 오리지널 시리즈 [맨 인 더 하이 캐슬]은 필립 K. 딕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음울한 상상력을 풀어놓는다. 그 상상력이란 다름 아닌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독일과 일본이라는 것. 독일과 일본은 실제 역사에서는 패전국으로 남았지만, 드라마에서는 미국을 동서로 나누어 지배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로 묘사된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화려한 네온사인은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가 점령하고, 샌프란시스코의 거리 곳곳은 일본 문화가 넘쳐난다. 미국이 패전국이라는 전제하에 흘러가는 이야기는 무심히 스쳐가는 풍경을 보기만 해도 섬뜩하다. 드라마는 1960년대 기술력의 차이로 미국을 양분한 독일과 일본의 힘의 균형이 서서히 무너지는 사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는 줄리아나와 존의 이야기를 그린다. 일본과 독일의 지배체제에서 접점 없이 살아온 두 사람이 ‘높은 성의 사나이’라 불리는 남자가 남긴 필름을 매개로 얽히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이야기는 현재 마지막 시즌 4를 남겨두고 있다.

 

 

 

SS-GB

이미지: BBC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독일이라는 무서운 상상은 필립 K. 딕만 하지 않았다. ‘해리 팔머’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작가 렌 데이튼도 이 같은 상상을 책으로 펴냈다. BBC에서 제작한 [SS-GB]는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미국이 개입하지 않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일찌감치 승전보를 챙기고 영국을 지배한다는 가정하에 시작된다. 실제 역사와 달리 윈스턴 처칠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저항군의 움직임이 격렬한 1941년 런던, 냉소적인 성격의 아처 형사는 베를린에서 온 연대 지도자 후트의 지휘 하에 미심쩍은 살인사건을 수사한다. 드라마는 전쟁 중 아내를 잃고 세상사에 관심을 놓아버린 아처를 독일과 미국, 영국 저항군이 배후에 자리한 복잡한 사건에 밀어 넣으며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중절모와 트렌치코트, 쉼 없이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탁하게 쉰 목소리의 아처를 만들어낸 샘 라일리는 회색빛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그가 지나는 자리마다 누아르의 색채를 드리운다.

 

 

 

11.22.63

이미지: 훌루

훌루 오리지널 시리즈 [11.22.63]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역사적 비극을 막기 위해 시간여행을 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현재까지도 미제 사건으로 남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이 시간여행을 나서게 된 이유다. 아내와 이혼 직전인 교사 제이크는 가깝게 지내는 마을 레스토랑 주인 알에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는다. 오랜 세월 1960년 과거로 돌아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방대한 조사를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붙박이장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1960년 10월 21일에 도착한다. 제이크는 알의 부탁으로 1963년 11월 22일 일어날 오스왈드의 저격을 막고자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간 여행에 나선다.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지만, 오스왈드의 배후를 둘러싼 음모론보다는 시간여행에 나서는 평범한 남성의 혼란스러운 심리에 초점을 맞춰 흘러간다.

 

 

 

타임리스(Timeless)

이미지: NBC

[11.22.63]이 특정 장소를 통해 시간여행에 나서 비극적인 역사를 바꾸려 한다면, NBC [타임리스]는 그와 반대로 타임머신 기계를 이용해 역사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비밀리에 개발된 타임머신이 역사를 왜곡하려는 전직 정보부 요원 출신 가르시아의 손에 넘어가자 현재에 영향을 미칠 나비효과를 막기 위해 역사학자, 군인, 개발자로 구성된 팀이 급조된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세부적인 사실을 꿰뚫고 있는 루시 박사와 델타포스 출신의 와이어트, 타임머신을 개발하고 파일럿 훈련을 받은 루퍼스, 세 사람은 가르시아가 노리는 1937년으로 이동해 착륙 중 불의의 사고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힌덴부르크 참사 사건이 왜곡되는 걸 막으려 한다. [타임리스]는 매회마다 다른 역사적 시간대로 이동해 가르시아의 위험한 시도를 저지하려는 세 사람의 모험담 같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여기에 막후에서 미국과 세계를 은밀히 조종하려는 비밀 단체 리튼하우스의 음모가 더해져 호기심도 불러일으킨다. 여담으로 시즌 2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된 한국 전쟁 중의 흥남 철수 작전이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