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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파이기가 바라본 마블의 과거와 현재, 미래

이미지: San Diego Comic Con 2019

케빈 파이기는 지난 11년 간 [아이언맨]부터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 22편의 슈퍼 히어로 영화로 이루어진 역사상 전례 없는 프랜차이즈를 이끈 장본인이다. 전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거듭난 마블을 파이기 혼자 세우지는 않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 반박할 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파이기가 가담한 MCU 작품 22편 모두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했고, 전 세계 극장가에서 215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괴물 같은 흥행력을 보여주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아바타] 이후 전 세계 흥행 기록을 새로이 쓰기도 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게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19년 전 제작 보조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마블의 모든 콘텐츠를 책임지게 된 케빈 파이기가 마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The Hollywood Reporter의 ‘Awards Chatter’ 팟캐스트를 편집한 내용입니다)

마블 이전의 케빈 파이기

THR: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USC) 재학 당시 리처드 도너, 로렌 슐러 도너 밑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이들과 어떻게 만나게 됐나?

1994년 봄이었다. 많은 동기들이 규모가 작거나 이름이 생소한 스튜디오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나는 기왕이면 익숙하고,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런 곳이라면 개 산책이나 세차, 수프와 커피 심부름을 기분 좋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많이 하기도 했고. 교내 게시판에서 두 사람이 인턴을 구한다는 공고를 봤을 때 두 눈을 의심했고, 곧바로 연락해서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때 썼던 이력서가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이력서였다”

THR: 둘 중 한 사람의 보조로 일할 기회가 생겼을 때 제작자인 로렌과 일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입사 첫날 이런 기회가 왔다면 고민도 안 하고 리처드를 택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더 친숙하게 느껴져서다. 그러나 몇 년 간 두 사람과 일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면, 리처드는 몇 년에 한 번 영화 연출을 맡았고 그 외에는 집에 있었다. 반면 로렌은 항상 제작과 기획에 참여했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결국 제작에 더 관여할 수 있는 직책으로 올라가더라.”

THR: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로렌과 [볼케이노], [유브 갓 메일], 그리고 대형 스튜디오에서 최초로 만든 마블 영화 [엑스맨]을 함께했다. 연출자가 아닌 제작자로도 할리우드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렇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다들 영화과에 입학할 때 감독이 되고 싶어했고, 감독으로서 창작적 권한을 원한다. 개인적으로 학창 시절 사운드 엔지니어처럼 특수한 분야의 전문가를 꿈꾸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 분야의 일인자로 거듭날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그런 친구들도 많다. 반면 연출자는 상당히 포괄적인 직책이다. 나도 한때 감독을 꿈꿨지만, 로렌과 일하며 생각이 변했다.”

케빈 파이기, 마블과 만나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 코리아(주)

THR: [엑스맨] 당시의 마블(마블 필름)은 캐릭터 판권 사업과 완구류로 수익을 창출했다. ‘스파이더맨’은 소니 픽쳐스에, ‘엑스맨’은 이십세기폭스, ‘블레이드’는 뉴라인에 판권을 넘기지 않았나. 그런데 아비 아라드가 “[엑스맨]을 시작으로 마블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라며 당신의 능력을 알아본 것인가?

아비 아라드는 전부터 캐릭터 자체의 가능성뿐 아니라 영화화에 대한 믿음도 대단했다. 그는 우리가 [엑스맨]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엑스맨]은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 첫 영화라 할 수 있다”

THR: 휴 잭맨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었던 걸로 안다. 이 사건(?) 때문에 입지가 조금 달라졌다고.

휴 잭맨이 처음 촬영장에 나타났을 때는 울버린 헤어스타일이 아니었다. 물론 결과적으론 상관없는 이슈였다. 지금은 휴 잭맨이 곧 울버린이니까. [토르]에서 크리스 헴스워스가 긴 장발을 유지하길 바랐지만 [토르: 라그나로크]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첫’ 영화였기 때문에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언론에 공개된 첫 [엑스맨] 스틸컷에선 휴 잭맨의 머리가 평범했다. 이걸 보고 ‘으악 다른 사진이잖아!’라며 경악했는데, 이게 아비 아라드의 눈에 들었던 모양이다. 사소한 것도 눈 여겨보는 것처럼 보이니까.”

이미지: 20th Century Fox / 이 사진으로 추정된다.

THR: 로렌은 당신이 이십세기폭스에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제안했다고 하던데.

“그땐 그런 용어도 없었다. 그러나 상당히 간단한 문제였다. 우리가 만드는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정확히 알았고, 예나 지금이나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어디까지 구현할 수 있는지도 명확했다. 오히려 이러한 한계가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캐릭터의 감정과 심리에 집중할 수 있었고, [엑스맨]이 훗날까지 호평받는 ‘다름’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심도 있게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현장에서 ‘훗날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라는 식의 대화를 자주 나눴는데, 이게 결국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초석을 다진 셈이다.”

2000년대 경제 불황과 마블 스튜디오, 그리고 [아이언맨]

이미지: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THR:  [엑스맨]을 계기로 마블에서 커리어가 시작된다. [아이언맨] 개봉까지 많은 일이 있었는데, 꼭 [아이언맨]이어야 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메릴 린치 계약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MCU를 볼 수 없게 됐을까? 2008년도 전 세계가 경제 불황을 겪고 있지 않았나.

좋은 질문이다. 메릴 린치의 투자를 받지 못했다면 마블 스튜디오도, MCU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마블 판권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들 중에 좋은 작품도 있지만 아쉬운 작품도 많다. 아비 아라드와 데이빗 메이젤이 직접 영화 제작에 가담하고 싶어서 투자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 누구도 이런 스튜디오를 세울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엑스맨]에 참여했던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워너브러더스와 월트 디즈니 컴퍼니를 제외한 대부분의 메이저 스튜디오의 업무 과정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이때 신뢰를 받는 인물이 되리라 마음을 먹었다. 단순히 내가 마블 스튜디오 소속이고 IP(지적 재산권)을 쥔 입장이라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영화와 스토리텔링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만일 내가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오른다면,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지 이 시기에 배웠다.”

THR: 당시 메릴 린치 투자는 어디까지 바라본 것인지 궁금하다. MCU라는 큰 세계관을 언제부터 구축하려 했나? 사무엘 잭슨이 등장하는 [아이언맨] 쿠키 영상을 보면 적어도 촬영 도중에는 이뤄졌어야 할 것 같은데.

5년 간 10편의 영화를 위한 계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우리에게 흥미로운 캐릭터들도 많았는데, 샹치도 있었다. 그러나 내 목표는 오로지 [아이언맨]이었다. 이 작품이 실패하면, 다른 작품도 전부 실패할 것이라 여겼다.”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THR: 다시 묻겠다. 왜 [아이언맨]이었는가?

“우선 캐릭터 판권이 뉴라인에서 막 넘어왔던 시기였다. 토니 스타크라는 캐릭터에 대한 믿음과 사람들이 지금껏 접하지 못한 히어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토니의 ‘참회’와 ‘실패와 극복’의 서사, 그의 능력이 ‘지식’과 ‘도구’였다는 점, 이 두 가지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THR: 첫 영화가 실패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왜 평판이 좋지 못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택했나?

“당시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를 동시에 제작 중이었다. 사람들에게 친숙한 [헐크]가 이른바 ‘안전자산’이었고, [아이언맨]은 도박수였다. [아이언맨]을 통해 우리는 ‘캐릭터가 곧 배우고 배우가 곧 캐릭터다’라는 우리의 믿음을 실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굳이 인지도가 높았던 배우를 섭외할 필요가 없었다. 울버린의 휴 잭맨이나 스파이더맨의 토비 맥과이어처럼 인지도는 낮을지언정 캐릭터에 딱 맞는 배우가 필요했다. 그 배우가 바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였다.”

THR: 크리스 헴스워스,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 프랫도 로버트와 비슷한 경우인 것 같다. 생각해보니 감독 선정도 비슷하다. 루소 형제, 타이카 와이티티, 라이언 쿠글러, 제임스 건은 블록버스터 경험이 없는 이들인데 왜 감독직을 권했는지?

“모두 잠재능력이 충분한 인물이었다. 감독을 예로 들자면, 조와 안소니 루소는 멋진 TV 에피소드를 연출한 경력이 있다. 타이카 와이티티의 작품도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인상적이었고, 제임스 건은 굉장히 독창적이었다.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이들을 찾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디즈니의 마블 스튜디오 인수, MCU를 실현시키다

이미지: Marvel Studios

THR: 2009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40억 달러를 들여 마블 스튜디오를 인수했다.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

“월트 디즈니에 인수된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최고의 축복이었다. 앞서 ‘메릴 린치가 없었다면 마블 스튜디오도 없었다’와 마찬가지로, 디즈니의 마블 스튜디오 인수가 없었다면 지금의 MCU도 없었을 것이다.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받았고, 보호받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 줄 집을 얻은 기분이었다.

THR: 마블의 모든 콘텐츠를 총괄하는 CCO 자리에 올랐다. 디즈니 인수와 CCO 임명 사이, 즉 페이즈 2와 3 사이에 다양성과 변화를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는데, 내부에서 반발이 있었던 걸로 안다.

“많은 일이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밥 아이거의 자서전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당시 우린 10편 이상의 작품을 만들었고,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를 줄 만한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앨런 혼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지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고, 우리에게 관심이 매우 많았다. 마블 콘텐츠와 친숙하지 않은 것도 의외로 도움이 됐다. 일반적인 대중의 시선을 가지고 있기에, 혹여나 우리가 마니아들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여지를 그가 줄여줬다. 언젠가부터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거치지 않고, 그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이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던 시기가 있었다.”

THR: 지난 18개월의 여정을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흥행과 사회적 메시지 전달 모두에 성공한 [블랙 팬서]는 히어로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캡틴 마블]이 있었으며, 한 시대를 마무리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있었다.

“기대에 부응하고 기대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는 과정이 어땠냐고 묻는 것이라면 아직도 적응하고 배우는 중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 5년 간의 목표는 모두가 예상치 못한 피날레를 선물하는 것이었다. 전 세계 관객이 지난 10년을 함께 했던 캐릭터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값진 감정적 경험이다. 지난 1년 반의 여정에서 가장 값진 것은 단연 함께 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MCU의 미래와 디즈니 플러스(Disney+)

이미지: Marvel Studios

THR: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이십세기폭스를 인수하면서 엑스맨과 데드풀 등의 판권이 디즈니에게 넘어갔다. 훗날 이들이 어벤져스와 만날 가능성이 아예 없는지? 앞으로 디즈니 플러스에 마블 TV 시리즈들이 대거 공개되는데, MCU와 드라마 세계관이 다른지 궁금하다.

“첫 질문의 답은 ‘당연히 가능하다’다. MCU는 하나의 큰 세계관이다. 극장과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모두가 이 세계관을 공유할 것이다. USC 재학 당시 영화과의 정식 명칭은 ‘School of Film and Television’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School of Cinematic Arts’로 변경됐다. 대형 스크린과 브라운관 모두에서 ‘영화적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블 플러스 시리즈들이 시청자들에게 멋진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 확신한다. [더 팔콘 앤드 윈터 솔져], [완다비전]처럼 캐릭터들이 영화와 드라마를 오갈 것이다. 쉬헐크와 문나이트, 미즈 마블은 드라마로 데뷔하지만, 추후 영화에도 등장할 계획이다.

마틴 스콜세지의 발언에 대하여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THR: 마틴 스콜세지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슈퍼 히어로 영화가 영화계에 해롭다는 의견을 가진 이들에게 할 말이 있는지?

“전혀 몰랐던 일이다. 스콜세지와 코폴라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굉장히 안타깝다. 나를 비롯해서 여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영화, 시네마, 극장, 그리고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을 사랑한다. ‘시네마’나 ‘예술’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의견은 존중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궁금하다. 그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것이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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