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과 장르 마니아를 위한 이번 주 개봉작 리뷰

시동(START-UP) – 시동이 켜졌는데요, 꺼졌습니다

이미지: (주)NEW

에디터 원희: ★★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동네 불량 청소년 택일과 상필이 돈을 벌기 위해 서로 다른 길을 떠나며 일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담으려 했으나, 알맹이 없이 흘러가는 장면들이 많아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원작의 기승전결이 짧은 영화 러닝타임 속에서 적절하게 녹아들었다는 인상을 받기 힘들다. 박정민, 정해인, 염정아의 연기는 역할을 제대로 묘사하지만, 인물들의 서사를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잘려 나가 그 깊이가 얕아졌다. 특히 최성은이 연기한 경주 역이 돋보이는데 역시 서사가 부족해 그 매력이 반감되는 것이 아쉽다. 개연성도 부족해 마치 대부분의 상황이 우연에 기대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동석이 연기한 거석이형 역의 말장난 개그가 군데군데에서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데 영화에 끝까지 몰입하게 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백두산(ASHFALL) – 뛰어난 기술력도 이야기를 위해 존재한다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덱스터스튜디오

에디터 혜란: ★★★☆ 백두산이 폭발하면서 한반도에 위기가 닥치자 남북한 정예(?) 요원들이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 고군분투하는 재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자체가 덱스터 스튜디오의 기술력에 의존한 만큼 VFX의 완성도가 가장 궁금했는데, 결과물은 상당히 준수하다. 하지만 그보다 인상적인 건 비주얼이 아닌 캐릭터와 이야기다. 이병헌과 하정우가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면서 코미디, 스릴러, 액션, 드라마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줄 때 영화는 가장 빛난다. 두 사람에 초점을 맞춰서일까? 조연 캐릭터는 마동석, 전혜진, 배수지 등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까울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스토리는 캐릭터의 활약에 집중하며 곁가지 요소는 과감히 빼지만 적절한 때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장치를 활용한다. “재난” “블록버스터”답게 감정을 고조하거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구간은 있으나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건 자제한다. 액션 블록버스터의 장점은 취하면서 단점을 줄이려 노력한 점을 높게 사고 싶다.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 –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꿰뚫는 예리한 시선

이미지: 영화사 진진

에디터 현정: ★★★☆ 누구나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지만,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미안해요, 리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상을 따라가며 인간다운 삶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다큐멘터리를 보듯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신자유주의 복지시스템의 맹점을 통렬하게 꼬집었다면, 택배 기사 리키와 간병인 애비 부부의 일상을 담은 [미안해요, 리키]는 노동 환경의 불안정성을 초래하고 평범한 삶을 잠식하는 긱 이코노미 시스템의 착취적인 구조를 섬뜩하게 드러낸다. 리키 가족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도 전작과 달리 연대가 힘든 풍경과 누군가의 잘잘못으로 규정하기 힘든 모순적인 시스템에 마음이 한없이 착잡해진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뜨거운 공감과 울분을 자아냈다면, [미안해요, 리키]는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를 안타까운 분노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갈수록 경제논리만 앞세우는 사회에서 인간다운 권리를 앗아가는 시스템이 변화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고 마음이 무겁다.

호흡(Clean up) – 숨 쉬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낄 때, 그럼에도 숨은 쉬어야 할 때

이미지: (주)영화사 그램

에디터 영준: ★★★☆ 죄책감의 밑바닥까지 꿰뚫어보는 작품.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유괴에 가담했던 정주가 12년이 지나 성인이 된 피해 아동 민구와 마주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난다는 설정은 익숙한 소재다. 다만 같은 소재로 많은 작품들이 ‘복수’를 다룬 반면, [호흡]은 가해자의 시선으로 ‘용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불편한 접근일 수도 있으나, 싫지는 않다. 유괴 사건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인생의 바닥을 친 정주와 트라우마와 분노, 죄책감만 남은 피해자 민구 사이의 악연이 여전히 이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 침을 꿀꺽 삼키게 되는 긴장감과 몰입감이 느껴진다. 다만 두 사람이 가까워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끌었다는 점이나,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적이었다가 정작 결말은 작위적인 열린 결말이었다는 점은 아쉽다.

아이 엠 브리딩(I Am Breathing) – 죽음이 다가올수록 더욱 또렷한 생의 이야기

이미지: 독포레스트(DocForest)

에디터 홍선: ★★★☆ 루게릭 병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닐 플랫은 블로그에 투병일기를 올린다. ‘화나고 끔찍하지만 재미있고 즐거운 이야기’라는 문구에서부터 닐은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현 상황을 솔직하게 말한다. 슬픔을 계산하지 않은 영화의 진심에 마음이 끌린다. 닐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기에 영화 대부분은 블로그에 적은 글과 침대 위에서의 찍은 투박한 영상이 전부다. 하지만 농담처럼 적은 글들은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소형 카메라도 대충 찍은 듯한 영상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들과 행복한 시절이 있다. 영화에서 가장 뭉클했던 부분은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설명하는 장면인데, 삶에 대한 정리와 시작을 준비하는 아들에 대한 마음이 담겨 있어 슬픔과 따뜻함이 교차된다. [아이 엠 브리딩]은 이렇듯 죽음이 가까워진 한 사람의 모습을 담은 동시에 모든 순간이 소중한 생의 이야기다. 나중에 닐은 입술마저 굳어져 말도 제대로 못 하지만 제목처럼 거친 숨을 쉰다. 어쩌면 그의 죽음 뒤로도 살아갈 우리들을 향해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라고 외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