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극적인 범죄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늘고 있다. 넷플릭스가 선두에 앞장서서 전 세계 곳곳에서 파문을 일으킨 사건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하고, 사람들은 관계자들의 인터뷰와 각종 자료를 통해 재구성된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본다. 미스터리로 가득한 범죄 다큐멘터리는 조금만 노력을 들이면 결말을 다 알 수 있지만 실화라는 점에서 매번 믿을 수 없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또 사건에서 한 발짝 물러서면 당시 여론을 들끓게 했던 사회의 풍경을 중립적인 시선에서 볼 수 있어 색다르다. 이런 여러 가지 쾌감이 맞물려 다음에는 또 어떤 문제적인 실화가 소개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건을 향한 지나친 관심과 답답한 대응에 보는 동안 괴로움과 씨름하면서도 호기심을 억누르기 힘든 범죄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매들린 매캔 실종 사건(The Disappearance of Madeleine McCann) 넷플릭스, 8부작

이미지: 넷플릭스

2007년 5월 3일, 가족과 함께 포르투갈의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던 어린 소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매들린 매캔은 부모가 리조트 근처 식당에 저녁 식사를 하러 외출한 사이 사라져 그 이후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작년 3월 공개된 [매들린 매캔 실종 사건]은 포르투갈과 영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으나 현재까지도 미궁으로 남은 실종 사건을 파헤친다. 새로운 증거나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지만, 사건 당일부터 상세하게 되짚으며 혼란스러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영화와 시리즈 모두 합쳐 2019년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 1위를 차지했다. 다만, 비극적인 사건과 과열된 취재 경쟁, 지지부진한 수사 과정을 보는 것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니 새겨두자.

누가 어린 그레고리를 죽였나?(Who Killed Little Gregory?) 넷플릭스, 5부작

이미지: 넷플릭스

사람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걸까? 1984년 10월 16일, 프랑스를 발칵 뒤집은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마당에서 놀던 4살 소년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날 밤 강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사건의 비극성은 이게 끝이 아니다. 악마적인 누군가가 소년을 살아있는 상태에서 강에 내던졌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다큐멘터리는 이 끔찍한 사건이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 속에 과열되면서 증오와 혐오를 조장하고 복수로 이어지는 과정을 5부작으로 담아낸다. 온 가족에게 번진 비극에도 그레고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묻혀 있다.

알카세르 살인사건(The Alcàsser Murders) 넷플릭스, 5부작

이미지: 넷플릭스

[알카세르 살인사건]은 1992년 스페인에서 발생한 10대 소녀 세 명을 잔혹하게 강간 살해한 사건을 다룬다. 범인은 잡히지 않고,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와 함께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사건이다. 미제로 남은 사건이 그렇듯 세 소녀의 죽음 역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유력했던 용의자는 풀려났고, 수사에 불만을 품은 한 아버지는 경쟁에 눈먼 미디어와 손잡았다. 실종 초기부터 지나치게 과열됐던 사건은 어느새 본질에서 멀어져 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스페인 전역을 들끓게 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그때 놓쳤던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시청률 살인(Killer Ratings) 넷플릭스, 7부작

이미지: 넷플릭스

가짜 뉴스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시대, [시청률 살인]은 방송인 겸 정치인 왈라시 소자의 논쟁적인 삶을 탐구한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문제적 행보를 거듭하는 왈라시 소자의 삶은 섣불리 예측할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카날 리브레]라는 범죄 프로그램에서 발 빠르게 현장에 출동하고 마약 범죄를 고발해 유명세를 얻는 그는 영웅적인 인기를 발판 삼아 정계로도 진출했다. 하지만 탄탄대로는 오래가지 않았다. 시청률을 위해 범죄를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왈라시 소자는 정치적 모략에 의한 희생이라고 주장했지만,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웬만한 스릴러 뺨치며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얼얼한 충격을 안긴다.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인터넷 킬러 사냥(Don’t F**k with Cats: Hunting an Internet Killer) 넷플릭스, 3부작

이미지: 넷플릭스

무엇이든 쉽게 번져나가는 소셜미디어는 최악의 경우 끔찍한 내용을 전방위적으로 공유하는 매개체가 된다.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인터넷 킬러 사냥]은 한 남자의 악마적인 노력을 저지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길고 자극적인 제목만큼이나 선정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으니 시청 전 크게 한 번 심호흡이 필요하다. 누군가 새끼 고양이를 살해하는 영상을 올리자 분노한 사람들이 추적에 나선다. 하지만 범인은 이를 비웃듯 잔혹한 영상으로 응수한다. 다큐멘터리는 유명세에 집착한 나머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선 살인자의 실화를 통해 익명성을 담보한 소셜미디어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죽음의 진통제(The Pharmacist) 넷플릭스, 4부작

이미지: 넷플릭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5년까지 오피오이드 중독으로 사망한 미국인은 18만 명이 넘는다. [죽음의 진통제]의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마약성 진통제의 위험성을 고발한다. 약사 댄 슈나이더는 1999년 마약 관련 총격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뒤 정의를 찾으려는 신념으로 범죄 세계에 뛰어들었다가 더 큰 문제를 발견했다. 중독과 죽음을 초래하는 마약성 진통제가 남용되는 현실이다. 탐욕에 눈먼 이들이 만들어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힘든 싸움을 시작한 그의 여정을 따라가는데, 마약성 진통제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의 이야기라는 게 놀랍다. 또한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섭외력도 대단해서 중반 이후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병들게 했던 문제의 인물이 인터뷰에 나선다.

누가 맬컴 X를 죽였나?(Who killed Malcolm X?) 넷플릭스, 6부작

이미지: 넷플릭스

1965년 2월 21일 흑인 인권 운동가 맬컴 X가 연설 도중 저격 당해 사망했다. 이후 세 명의 무슬림 지지자가 법정에 회부되어 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사건 당시의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된 건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맬컴 X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평범한 남자 압두르라흐만 무함마드가 진실을 밝히려는 과정을 통해 아주 강력하게 사건이 오랫동안 은폐되어 왔다고 말한다. 그 과정은 역사 교과서를 새롭게 써야 하나 생각이 들 만큼 설득력이 있다. 네이션 오브 이슬람과의 갈등, 인기가 오를수록 미국(FBI, NYPD)을 불편하게 했던 당시의 복잡한 정세가 맬컴 X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두 명의 무고한 사람이 지금까지도 암살자란 누명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프리 믹(Free Meek) 아마존, 5부작

이미지: 아마존

인종차별의 역사가 깊은 미국에서 사법제도는 제구실을 못할 때가 많다. [프리 믹]은 유명 래퍼 믹과 사법 시스템의 기나긴 악연을 따라가며 제도의 허점을 고발한다. 19살에 길거리 배틀 래퍼로 음악을 시작한 믹은 집을 나서던 도중 체포당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경찰은 흑인 10대에게 19개의 죄목을 물고, 판사는 선심을 쓰는 것처럼 징역과 보호관찰을 선고한다. 그런데 그 보호관찰 기간이 지나치게 길고 사소한 행위도 넘어가지 않는다. 주인공 믹은 자신을 마냥 억울한 희생자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가 사법제도에 맞서는 이유는 자신처럼 흑인 청소년들이 부당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삶을 도둑맞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피스토리우스(Pistorius) 아마존, 4부작

이미지: 아마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패럴림픽 육상 스타의 몰락을 다룬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의 영광은 짧았다. 선천적 장애로 양쪽 다리를 절단한 그는 의족을 착용하고 트랙 위에 올라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누군가의 롤 모델이자 영감이 되었겠지만, 2013년 발렌타인데이에 여자친구 리바를 살해한 혐의를 받으면서 그를 향한 시선이 달라졌다. 인종적 긴장과 여성 혐오 범죄가 만연한 남아공에서 리바 스틴캠프의 죽음은 사회적인 논쟁으로도 이어졌다. 다큐멘터리는 역경을 극복한 스포츠 스타의 인간 드라마로 시작해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던 재판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킬러 인사이드: 아론 에르난데스는 왜 괴물이 되었나?(Killer Inside: The Mind of Aaron Hernandez) 넷플릭스, 3부작

이미지: 넷플릭스

젊고 재능 있는 풋볼 선수 아론 에르난데스는 일찌감치 유망주로 인정받아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지만, 스스로 몰락을 자초했다. 다큐멘터리는 독점으로 공개하는 법정 영상과 통화 기록, 주변 인물과의 인터뷰를 취합해 비극을 초래한 스포츠 스타의 이중생활을 파헤친다. 아론 에르난데스는 20세의 나이로 NFL 지명을 받고,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4천만 달러에 달하는 5년 계약을 체결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살인 용의자가 됐다. 엄격한 성장 환경, 아버지의 이른 죽음, 어머니와의 갈등, 남성성이 강조되는 격렬한 스포츠, 실력 우선주의 등 폭력적인 행동 뒤에 숨은 혼란스러운 동기들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테드 번디: 살인자의 유혹(Ted Bundy: Falling for a Killer) 아마존, 5부작

이미지: 아마존

보통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작품은 희생자보다 범죄자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잔혹한 수법으로 살해했는지 말이다. 마치 업적을 다루듯 범죄자의 살인 행각에 집중하다 보면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삶이 파괴되었는지 놓칠 때가 많다. 최근 아마존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테드 번디: 살인자의 유혹]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호감 가는 외모의 살인자로 포장하는 대신 극악무도한 행동을 재조명하며, 희생자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오랜 여자친구 엘리자베스 켄달과 딸 몰리,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이 침묵을 깨고 그들의 입장에서 테드 번디의 기만하고 잔인한 범죄를 말한다.

로레나(Lorena) 아마존, 4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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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미국을 발칵 뒤집은 신체 훼손 사건이 발생했다. 로레나 보빗이라는 젊은 여성이 자고 있는 남편의 음경을 절단한 것이다. 평범한 여성이 저지른 극단적인 사건은 금세 폭발적인 관심을 얻지만, 그 누구도 ‘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이 향한 곳은 로레나의 분노가 아닌 성기를 잃을 뻔한 존이었다. 다큐멘터리는 재판 당시 수년간 행해진 가정폭력을 폭로했음에도 정신이상으로 몰렸던 로레나의 고통에 무게를 싣고 성과 인종 대결 양상으로 번졌던 사건을 재조명한다.

공포의 이반(The Devil Next Door) 넷플릭스, 5부작

이미지: 넷플릭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홀로코스트. [공포의 이반]은 1980년대 은퇴한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존 뎀얀유크가 전범으로 기소된 실화를 다룬다. 겉보기엔 평범한 노인이 유대인 수감자들을 고문하고 살해한 악명 높은 나치 수용소 경비 대원이었다는 것이다. ‘공포의 이반’으로 불릴 만큼 유대인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것으로 밝혀져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미국에서 추방당한 후 이스라엘 법정으로 송환됐다. 이 세기의 재판을 통해 평범한 이웃 노인으로 보였던 존을 두고 고발하는 자와 부정하는 자의 팽팽한 대립을 면밀히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