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중국이 세계 2위 규모의 영화 시장이라지만, 기본적으로 북미 성적이 뒷받침이 되어야 영화가 흥행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인식을 깨고 해외 성적 덕분에 성공한 작품들이 점차 많아지고,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지면서 북미보다 해외 시장에 집중한 할리우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추세다. 북미에선 아쉬운 성적을 거두더라도, 중국을 필두로 한 해외 극장가에서 선전하면서 큰돈을 벌어들인 혹은 해외 시장 덕에 피해를 최소화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퍼시픽 림 (2013)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북미최종: $101,802,906
전세계최종: $411,002,906
제작비: $190,000,000

기예르모 델 토로의 ‘덕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거대로봇 & 괴수 영화. 2013년작 [퍼시픽 림]은 제작비 1억 9,000만 달러의 절반을 조금 넘는 1억 달러로 북미 흥행을 마무리했다. 단순한 스토리도 지적받았지만, 아무래도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속도감 있는 액션과 달리 묵직하고 현실감 넘치는 전투신에서 호불호가 갈린 게 성적에 영향을 준 모양이다. 이 작품을 나락에서 꺼낸 건 중국과 러시아, 한국, 일본이었는데, 네 국가가 해외 성적의 절반 이상인 1억 6,000만 달러를 책임지면서 전 세계 4억 1,100만 달러로 흥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여담으로 제작사 레전더리 픽쳐스가 완다 그룹에 인수된 이후 공개된 속편은 전작의 매력이 사라지고 중국 시장을 지나치게 의식한 듯한 전개 때문에 아쉬움을 샀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2015)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북미최종: $89,760,956
전세계최종: $440,603,537
제작비: $155,000,000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1984년작 [터미네이터] 이전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일종의 리부트 작품이다. 1, 2편에 대한 오마주나 오랜만에 프랜차이즈에 복귀한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퍼포먼스는 좋았으나, 이후 속편들과 마찬가지로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와 함께 북미에서 8,97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이는 제작비의 약 60% 수준이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 일본 등에서 선전하며 전 세계 박스오피스 성적을 4억 4,060만 달러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는데, 그럼에도 손익분기 달성 여부는 매체마다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간신히 달성하거나 약간 못 미치는 차이). 여담이지만 전작들에 이어 이 작품까지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속편 제작까지 무산된 이후 제임스 카메론이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제작에 직접 참여하며 ‘2편을 잇는 진정한 속편’이라 했으나…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나우 유 씨 미 2 (2016)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북미최종: $65,075,540
전세계최종: $334,897,606
제작비: $90,000,000

평가가 어떻든 간에, [나우 유 씨 미 2]는 몇몇 대형 프랜차이즈를 제외하면 중국에서 흥행한 몇 안 되는 할리우드 영화다. 시리즈 전체로는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스토리’로 전 세계적인 성공을 이룬 흔치 않은 경우이기도 하다. 마술 사기단의 한탕을 그린 이 작품은 북미에서 전작의 절반 수준인 6,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지만, 중국에서만 9,400만 달러 수익을 올리며 전 세계 3억 3,480만 달러로 흥행을 매듭지었다. 이는 전작과 맞먹는 수준인데, 메가폰을 잡은 존 M. 추와 영화에서 꽤나 비중 있게 나온 주걸륜 덕에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지난 4월 속편 제작이 확정됐으며, 주걸륜의 캐릭터를 필두로 한 스핀오프도 기획 중이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2016)

이미지: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북미최종: $47,365,290
전세계최종: $439,048,914
제작비: $160,000,000

게임 원작 영화 흥행 1위를 지키고 있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도 북미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제2의 반지의 제왕’을 꿈꾸며 1억 6,000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된 이 작품의 북미 수익은 고작 4,730만 달러, 소위 ‘망했다’ 해도 되는 수준이다. 하마터면 희대의 망작이 될 뻔한 이 영화를 살린 것은 해외 관객, 특히 중국의 ‘와우저’들이었다. 북미보다 이틀 빨리 개봉해 닷새만에 순 제작비에 가까운 금액인 1억 5,6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 물론 불친절한 배경 설명과 지나치게 많은 ‘주연급’ 캐릭터로 인한 산만한 전개 등 북미 관객의 등을 돌리게 한 단점들이 중국에서도 혹평을 면치 못하며 2주차 성적은 75% 가까이 하락했지만, 그럼에도 중국 누적 2억 1,800만 달러로 영화의 전체 성적 중 절반을 책임진 덕에 적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약 3,000~4,000만 달러의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 (2017)

이미지: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북미최종: $26,830,068
전세계최종: $312,242,626
제작비: $40,000,000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은 T-바이러스 해독제를 얻기 위해 엄브렐라사(社)의 본거지로 향한 앨리스의 여정을 그린 시리즈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던) 작품이다. 전작에 이어 북미에서 제작비조차 회수하지 못한 데 이어 2,680만 달러라는 시리즈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는 건 현지에서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리즈임을 의미했는데, 해외의 생각은 사뭇 달랐다. 영화는 중국에서만 전체 성적의 50%가 넘는 1억 5,95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전 세계 최종 3억 1,220만 달러를 기록, 역대 게임 영화 중 제작비대비 수익 1위를 차지했다(7.5배). 앞서 소개했다시피 이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의 [레지던트 이블] 영화는 없다고 폴 W.S. 앤더슨 감독이 밝혔으나, 놀랍게도(?) 리부트를 준비 중이라고.

미이라 (2017)

이미지: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북미최종: $80,227,895
전세계최종: $409,231,607
제작비: $125,000,000

톰 크루즈 주연 [미이라]는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등으로 이루어진 유니버설 픽쳐스의 고전 괴물 시리즈 ‘다크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릴 중요한 작품이었다(본래 2014년작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이었지만,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한 차례 연기된 것). 그러나 제작비 1억 2,000만 달러가 투입된 이 작품은 8,020만 달러로 북미 흥행을 마무리하며 프랜차이즈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알리고 말았다. 다른 단점도 많지만, 무엇보다 단독 영화로서의 재미와 가치보다 세계관 구축에 더 많은 힘을 쏟은 게 문제가 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중국(9,100만 달러)과 한국(2,700만 달러) 등에서 3억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전체 수익을 4억 1,000만 달러까지 끌어올렸지만, 해외에서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약 9,5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2017)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북미최종: $172,558,876
전세계최종: $794,861,794
제작비: $230,000,000

해외는 몰라도, 확실히 북미에선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인기는 이전만 못하다. 1억 7,250만 달러라는 성적만 보면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가 북미에서 준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작품의 제작비가 2억 3,000만 달러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시리즈 중 유일하게 북미 2억 달러를 넘기지 못하고 ‘기존의 캐릭터와 세계관이 붕괴됐다’며 평가마저 최악을 달렸지만, 해외 팬들이 열심히 극장을 찾아준 덕에 전 세계 7억 9,480만 달러로 흥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시리즈 첫 작품을 제외하고 2편부터 4편까지 전 세계 10억 달러 이상, 혹은 살짝 밑도는 금액을 벌어들인 걸 생각하면 분명 아쉬운 결과다. 지난 5월, 조니 뎁 주연의 속편 대신 여성 주인공을 필두로 한 리부트 영화가 기획 중에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트리플 엑스 리턴즈 (2017)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북미최종: $44,898,413
전세계최종: $346,118,277
제작비: $85,000,000

[트리플 엑스] 프랜차이즈의 세 번째 작품. [트리플 엑스 리턴즈]는 1편의 주인공 샌더 케이지(빈 디젤 분)가 돌아왔음에도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와 함께 북미에서 약 4,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았다. 그러나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팬덤을 거느린 빈 디젤의 복귀와 견자단의 합류 덕에 중국에서 1억 6,400만 달러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최종 성적 3억 4,600만 달러로 제작비 4배 이상을 벌어들이며 결과적으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난 2018년 속편 제작 소식과 함께 주걸륜, 장람심이 캐스팅됐다고 알려졌는데, 무엇을 노린 캐스팅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2017)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북미최종: $130,168,683
전세계최종: $605,425,157
제작비: $217,000,000

“욕해도 [트랜스포머]니까 결국 다 보러 올 것”이라던 마이클 베이의 예언이 틀렸다. 물론 북미 1억 3,000만 달러와 전 세계 6억 달러라는 성적표를 보면 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참고로 중국에 이어 해외 흥행 2위를 차지한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1,920만 달러)이다. 그러나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이전에 개봉한 두 작품이 전 세계 11억 달러를 벌어들인 걸 감안하면 ‘로봇들의 시원시원한 액션’을 즐기고 싶었던 북미와 해외 관객들이 시도때도 없는 설정 붕괴와 과도한 PPL에 지친 듯하다. 이 작품의 부진으로 결국 마이클 베이가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에서 손을 떼고, [범블비]를 시작으로 리부트 작업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