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현실 세계에서 멀어지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고 있는 요즘은 더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겨울 추위가 매섭기도 하지만, 한 번 크게 늘어난 확진자 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으니 답답함은 쌓이고 일상의 활기도 사그라드는 것 같다. 이런 때 현실에서 적당히 먼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줄 작품을 보는 것은 나름의 위안이 된다. 특히 기이하고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매혹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판타지는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는 이색적인 볼거리도 선사하니 잠시나마의 일상탈출로 제격이다. 그중 ‘마법의 힘’이 중심이 된 드라마 7편을 소개한다.

조나단 스트레인지와 마법사 노렐(Jonathan Strange & Mr Norrell, 2015)

이미지: BBC

전쟁으로 어수선한 19세기 초의 영국을 신비롭고 음산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판타지 시대극이다. 마법이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여기고 이론과 역사만 연구하는 시대, 책에 파묻혀 은둔하던 마법사 노렐은 마법의 위상을 되찾고자 런던으로 향하고, 이제 막 마법의 힘을 발견한 스트레인지를 만나 스승과 제자가 된다. 드라마는 마법이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됐지만 성격부터 마법에 대한 가치관까지 전혀 다른 두 인물의 갈등과 대립에 초점을 맞추고, 연약하고 오만하며 불완전한 인간 본성을 그려낸다. 사악한 요정이 등장하고, 전쟁에서 마법이 유용한 힘을 발휘하지만, 마법 세계의 경이로움보다 두 인물의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간다. 수잔나 클라크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아쉽게도 한 시즌으로 마무리됐다. (왓챠)

마법사 멀린(Merlin, 2008-2012)

이미지: 넷플릭스

‘아서왕의 전설’에 영감을 얻은 판타지 모험극이다. 아서왕의 든든한 조력자로 알려진 마법사 멀린을 동시대 인물로 설정하고, 젊은 멀린이 왕국의 후계자인 아서 왕자를 도와 카멜롯을 지키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비범한 능력을 가진 청년 멀린은 우서왕에 의해 마법이 엄격하게 금지된 카멜롯에 입성하고, 아서 왕자의 목숨을 구해준 사건을 계기로 시종이 되어 위대한 왕과 함께하는 운명을 따르며 각종 고난과 역경에 맞선다. 가족 친화적인 드라마에 포맷을 맞춰 시대극 특유의 묵직한 맛은 덜하지만, 가볍고 경쾌하게 흘러가 부담 없이 볼 수 있으며, 멀린과 아서의 티격태격 브로맨스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허무하고 충격적인 결말은 호불호가 갈린다. (넷플릭스)

더 매지션스(The Magicians, 2015-2020)

이미지: SyFy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어른들을 위한 작품이다. 레브 그로스먼의 3부작 소설을 원작으로, 우울하고 내향적인 쿠엔틴이 비밀스러운 마법 대학교 브레이크 빌스에 입학하고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어릴 적부터 판타지 소설 ‘필로리 앤 퍼더’를 동경해왔던 쿠엔틴은 어느 날 갑자기 소환된 마법 대학의 입학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후, 책 속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여겼던 마법이 실제 하며 상상했던 것보다 어둡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쿠엔틴이 마법 학교의 학생들과 복잡하고 까다로운 마법 세계에 빠져들면서 브레이크 빌스를 위협하는 야수에 맞설 때, 그와 함께 시험에 소환됐으나 탈락한 줄리아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 세계에서 마법을 연마하는 그룹에 합류한다. 어둡고 뒤틀린 유머 감각이 있는 다크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도전해보자.

잭 모턴과 언더월드(The Order, 2019-2020)

이미지: 넷플릭스

가볍고 무난하게 보기 좋은 판타지 시리즈다. 복수를 위해 벨그레이브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잭이 비밀스럽게 존재하는 마법 모임인 푸른 장미 비술 결사단에 들어가고, 동시에 그들과 앙숙 관계인 늑대 인간으로 변해버려 성 크리스토퍼 기사단에 합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마법사와 늑대 인간이 대학교의 지하세계에서 적대적으로 공존한다는 설정이 흥미롭고, 판타지와 청춘물이 적당하게 어우러져 빠르고 경쾌하게 흘러가 몰아보기 부담이 없다. 다만 짜임새가 헐겁고 개연성이 부족하며 무게감이 없어 깊이 있는 내용을 기대하면 아쉬울 수 있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마녀 집회 (American Horror Story: Coven, 2014)

이미지: FX

앤솔로지 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세 번째 시즌인 ‘마녀 집회’는 세일럼 마녀재판에서 살아남은 현대의 마녀 이야기를 다룬다. 마녀들을 인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순혈 마녀 후보생, 최고의 능력을 가졌으나 영생을 위해서는 인정사정없이 냉혹한 마녀 피오나와 애증 관계에 있는 딸이자 젊은 마녀들을 지키려고 하는 코델리아, 복수를 위해 영혼을 판 부두교 마녀 마리 라보 등이 등장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기존 출연진 제시카 랭, 사라 폴슨, 에반 피터스, 테이사 파미가 외에 케시 베이츠, 엠마 로버츠, 안젤라 바셋이 합류해 더욱 호화로운 캐스팅을 자랑하며, 다른 시즌들보다 오싹한 스릴은 덜하지만 잔혹하면서도 감각적인 영상미와 배우들의 비주얼이 매력적이다. (넷플릭스, 아마존)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Chilling Adventures of Sabrina, 2018-2020)

이미지: 넷플릭스

최근 마지막 파트 4가 공개된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은 마녀와 인간 세계의 경계에 선 사브리나의 이야기다. 열여섯 생일을 맞은 사브리나는 인간의 삶을 포기하고 영혼 마법 학교에 들어가 가문의 전통을 따라야 하지만, 운명에 순응하기보다 자신의 의지로 헤쳐나가려 한다. 원작 코믹스를 현시대에 맞게 진취적으로 해석하고, 오컬트와 판타지 호러, 하이틴 로맨스의 매력을 조화롭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트 4는 평화를 되찾았던 그린데일에 또다시 위험이 닥치자 세상이 어둠에 잠기는 것을 막으려는 이야기를 그리며, 공개 이후 OTT별 글로벌 순위 집계 사이트 Flixpatrol에서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넷플릭스)

마녀의 발견(A Discovery of Witches, 2018-)

이미지: Sky1

인간과 뱀파이어의 금기된 사랑을 그린 [트와일라잇]처럼 섹시하고 달콤한 로맨스가 있는 판타지 드라마다. 데버러 하크니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마녀의 힘을 거부하고 역사학자의 삶에 만족하는 다이애나가 연금술과 과학을 연구하던 중 신비로운 고서를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위험하고 비밀스러운 세계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다. 다이애나는 누구도 믿기 힘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을 강하게 갈망하는 생물학자 뱀파이어 매튜의 도움을 받고 함께하면서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뱀파이어의 생존과 관련된 고서의 비밀이 미스터리를 자아내지만, 드라마 최고의 관심사는 마녀와 뱀파이어 커플로 분한 테레사 팔머와 매튜 구드의 환상적인 케미스트리다. 시즌 1은 국내에서는 캐치온을 통해 공개됐는데, 1월 방영을 시작하는 두 번째 시즌도 국내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