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작품에서 퀴어 캐릭터들은 주로 극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사이드킥에 머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점차 다양성을 포용하는 시대로 변화하면서 획일화되고 괴짜 역할에 그쳤던 인물들에게 친밀한 서사가 주어지고 있다.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퀴어 캐릭터들을 예전보다 입체적으로 묘사하며 극의 중심에 불러들인다. 차별과 혐오의 벽이 허물어지길 바라며 퀴어 캐릭터가 중심인 드라마 7편을 소개한다.

잇츠 어 신(It’s a Sin)

이미지: 왓챠

에이즈가 확산되던 1980년대 런던, 성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편견에도 치열하게 살아가던 다섯 친구들의 꿈과 사랑, 우정을 담은 5부작 미니시리즈다. [닥터 후], [이어즈&이어즈]의 러셀 T. 데이비스가 자전적 경험을 반영해 만든 작품이며, 올해 초 공개된 이후 평단과 시청자로부터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뜨겁고 열정적인 청춘의 에너지와 에이즈에 대한 무지와 공포, 차별의 현실이 맞물려 벅찬 감정을 선사한다. 자유롭고 낙관적인 분위기에 들뜨다가도 안타까운 사연이 더해지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면의 두려움을 감추고 꿈을 좇아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리치를 연기한 올리 알렉산더의 존재감이 마지막까지 인상적이다. 지난 3월 24일 왓챠에 독점 공개됐다.

포즈(Pose)

이미지: 넷플릭스

라이언 머피가 총괄 제작을 맡은 [포즈]는 아프리카 및 라틴계 LGBTQ 커뮤니티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다. 1980~90년대의 뉴욕을 배경으로, 당시 유행했던 볼 문화를 화려하게 재현하며 트로피 경쟁을 벌이는 하우스와 구성원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다. 친구와 동료의 목숨을 앗아가는 에이즈의 공포, 성 소수자를 혐오하면서도 쾌락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의 이중적인 태도, 커뮤니티 내의 보이지 않는 차별 등을 고르게 담아낸다. 실제 트랜스젠더 배우들이 다수 출연하며, 빌리 포터는 커밍아웃한 흑인 배우 중 처음으로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오는 5월 마지막 세 번째 시즌이 방영되며, 시즌 1~2는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필 굿(Feel Good)

이미지: 넷플릭스

대조적인 두 여성의 사랑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다. 마약중독의 과거에서 벗어나 스탠드업 코미디에 도전한 메이가 공연장에서 유일하게 웃어준 조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필 굿]은 달콤한 로맨스보다 두 사람이 마주할 법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메이는 방황했던 과거를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조지는 주변 사람에게 새 연인을 쉽게 소개하지 못한다. 사랑할수록 깊어지는 불안과 집착 등의 감정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그려내 몰입감을 높인다. 작년 12월에 마지막이 될 시즌 2가 확정됐으며, 올해 넷플릭스에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에이제이&퀸(AJ and the Queen)

이미지: 넷플릭스

드래그 퀸의 대모격인 루폴이 드라마 주인공과 제작자로 나섰다. [섹스 앤 더 시티]의 감독, 각본가, 제작자로 유명한 마이클 패트릭 킹과 함께, 드래그 퀸 루비 레드와 11살 꼬마 에이제이가 미국 전역을 떠돌면서 벌어지는 우여곡절 여정을 펼쳐 보인다. 남자친구에게 사기당해 전 재산 10만 달러를 날린 루비 레드(로버트)는 클럽을 오픈하겠다는 꿈을 잠시 접고 오래된 밴을 몰고 전국 투어에 나서고, 엄마에게 버림받은 에이제이가 할아버지가 있는 텍사스에 가기 위해 이 고달픈 여정에 무단 승차한다. 서로 접점이 없던 두 사람은 가슴 아픈 현실을 헤쳐나가면서 점차 가족이 되어간다. 루폴의 멋진 퍼포먼스를 만날 수 있으며, 아쉽게도 한 시즌으로 종영했다. 넷플릭스 서비스.

테일 오브 시티(Tales of the City)

이미지: 넷플릭스

1993년, 1999년, 2001년 세 시즌으로 선보였던 [테일 오브 시티]가 전편과 연속성을 가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컴백했다. 바버리 레인을 떠났던 메리 앤이 그곳의 주인 애나 매드리걸의 90번째 생일을 축하하고자 20년 만에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메리 앤과 입양 딸 쇼나의 복잡한 관계, 애나의 과거를 폭로하겠다는 협박편지, 그리고 바버리 레인에서 살아가는 커플들의 사연을 통해 인종, 성별, 연령을 아우르는 퀴어의 삶을 편안하게 풀어낸다.

어제 뭐 먹었어?(What Did you Eat Yesterday?)

이미지: 도라마코리아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중년 동성 커플의 소박한 일상을 옴니버스식으로 담은 드라마다. 편견에 갇히는 게 싫어서 가족에게만 커밍아웃한 변호사 시로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지만 여린 구석이 있는 미용사 켄지가 동거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담백한 화법으로 전개한다.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우치노 세이요가 서로 닮은 구석이 없는 커플로 출연,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가족과 주변 관계에서 오는 동성애자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포착하고, 여기에 먹음직스러운 일본 가정식을 양념처럼 더해 소소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기에 힘입어 스페셜 방송도 공개됐다. 도라마코리아, 왓챠, 웨이브에서 서비스 중이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Someone Has to Die)

이미지: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누군가 죽어야 한다]는 동성애를 죄악이자 교정 대상으로 여겼던 1950년대 스페인을 무대로 삼는다. 10년 전 스페인을 떠나 자유롭게 살아왔던 가비노가 멕시코인 발레리노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서 핏빛 파국이 시작된다. 가비노는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성 정체성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그와 함께 온 발레리노 라사로는 처음부터 불온한 시선에서 철저히 재단당한다. 동성애 혐오뿐 아니라 외국인을 배척하고 정치적인 탄압이 빈번했던 시대의 어두운 공기를 한껏 투영해, 인물들 사이의 엇갈린 욕망이 빚어낸 비극으로 향한다. [꽃들의 집]의 마놀로 카로가 제작했으며, [엘리트들]의 스타 에스테르 엑스포시토가 주요 배역으로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