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 시청자를 확보하고 순항 중인 [검은태양]은 MBC가 작심하고 선보인 드라마다. ‘믿고 보는 배우’로 불리는 남궁민과 안방극장에서 보기 드문 첩보 액션을 내세워 위기의 MBC를 구할 수 있을지 방영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캐릭터를 위해 야성미 넘치는 비주얼로 벌크업한 남궁민과 15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라는 것도 화젯거리였다. 신작들이 일제히 쏟아졌던 9월 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검은태양]은 화제성이 거품이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하며 단숨에 시청률 부진에 허덕이던 MBC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이미지: MBC

[검은태양]은 중국에서 비밀 작전을 진행하던 중 행방이 묘연해진 국정원 최고의 현장 요원이 기억을 잃은 채 1년 만에 조직에 복귀하고 내부의 배신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장르적인 색깔이 뚜렷한 이야기가 시청자를 사로잡으려면 다채로운 볼거리는 필수 요소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거침없는 액션과 긴박감이 넘치는 추격전을 선보이며 첩보 액션에 기대하는 장르적 쾌감을 한껏 전한다. 밀입국 선박에서 야수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화면을 압도하는 남궁민의 맨몸 액션을 시작으로, 마약 밀매 조직과 벌이는 속도감 넘치는 카 체이싱과 화려한 펜트하우스에서 펼쳐지는 핏빛 난투극 등으로 묵직한 장르물을 기대했던 시청자를 만족시키는 데 성공한다. 특히 19금 편성 전략으로 지상파 드라마임에도 수위 높은 폭력신을 배치해 놀라움을 안긴다. 시청률을 되찾겠다는 MBC의 (절박함이 묻어난) 각오로 읽힐 정도다.

작품에서 볼거리만큼이나 중요한 건 이야기일 것이다. [검은태양]은 이 역시 무리 없이 해낸다. 1년 전 한지혁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건의 배후에 대한 미스터리를 큰 줄기로 놓고, 조직에 복귀한 한지혁이 ‘내부 배신자’와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맞닥뜨리며 서서히 실체에 접근하는 구조를 취한다. 사건과 관련된 기억이 사라진 한지혁이 주인공이기에 궁금증이 풀리는 속도는 더디고 때로는 혼란이 가중되기도 한다. 그러나 허를 찌르는 전개로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1회 엔딩에서 내부 배신자를 찾기 위해 한지혁 스스로 기억을 삭제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비롯해, 매회 결말부가 되면 흐름을 뒤집을 만한 상황이 펼쳐져 향후 전개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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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이는 시청 유입이 더 이상 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매회 새로운 단서와 의문을 쌓아가는 전개 방식으로 몰입감을 높이긴 하지만, 사건을 일직선으로 펼치지 않고 움켜쥐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내는 것을 반복하고, 주변 상황을 충분하게 제시하지 않아 극에 대한 피로도로 이어진다. 쉽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의 드라마에 익숙해진 시청자에게 흥미롭지만 불친절한 작품으로 다가가는 요인이 된다.

최근 방송된 9, 10화는 전개상의 아쉬움이 단적으로 드러난 예다. 마침내 ‘피의 금요일’이라 불렸던 1년 전 사건의 진실이 폭풍처럼 밝혀졌지만,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쾌감보다는 이렇게까지 꽁꽁 숨겨야 할 필요가 있었냐는 의문이 먼저 앞선다. 국정원이란 조직의 특성상 이인환과 도진숙 같은 책임자들이 부하인 한지혁에게 친절하게 당시의 정황을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만, 한지혁 본인이 기억을 지울 만큼의 거대한 미스터리였는지 의구심이 든다. 방영 도중 사망으로 하차한 서수연 캐릭터에 대한 제작진의 입장은 어쩐지 변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은 회를 거듭할수록 수년 전 뉴스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국정원에 대한 각종 논란과 연결된 미스터리를 거창하게 포장해서 끌어온 것 같은 인상이 짙다. 국정원의 지원하에 이 같은 내용을 다룬 것은 흥미로우나 충격 요법에 매달려 곱씹을 지점이 부족하다. 반전에 덜 매달리고 극의 흐름을 더 건조하게 진행했다면 좋았을 뻔했다.

그럼에도 작품에 자신을 내던진듯한 남궁민을 비롯해 캐릭터들이 가진 카리스마나 이중성을 잘 보여준 배우들의 호연은 칭찬할 만하다. 국정원 내부에서 주도권을 놓고 견제의 끈을 놓지 않는 도진숙 역의 장영남, 짧은 분량에도 캐릭터의 사연을 궁금하게 만든 장천우 역의 정문성, 한지혁의 조력자라는 정체가 밝혀진 하동균 역의 김도현이 좋은 예다. 그중 한지혁의 동료 유제이를 연기한 김지은의 존재감이 반갑다. 정형화된 요원 캐릭터에서 벗어나 어두운 비밀이 있는 인물을 인간적으로 그려내 무겁게만 흐르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제 [검은태양]은 단 2회 만을 남겨두고 있다. 1년 전 한지혁과 동료들을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던 두 배후, 국정원을 뒤에서 쥐락펴락했던 상무회와 국정원에 대한 복수심으로 똘똘 뭉친 백모사의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매듭을 지을지, 그 과정에서 한지혁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