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부조리에 맞서며 통쾌함을 선사하는 히어로 캐릭터들이 시청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빈센조], [모범택시], [악마판사], [원 더 우먼]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뽐내며 악을 응징,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지난 12월 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tvN [배드 앤 크레이지]는 K-드라마 트렌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히어로물에 출사표를 던진 드라마다. 로맨스뿐 아니라 장르물에도 능한 이동욱과 [오징어 게임]으로 주가 상승한 위하준, 그리고 한국형 판타지 히어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은[경이로운 소문]의 제작진이 만나 ‘인성회복 히어로’라는 콘셉트를 선보이고 있다.

이미지: tvN

[배드 앤 크레이지]는 출세만 쫓는 부패 형사 류수열 (이동욱)이 어느 날 불쑥 나타나 폭력으로 그를 계도하려는 정의로운 미친놈 K (위하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간의 드라마 속 히어로들이 사적 복수든 정의구현이든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움직였다면, 류수열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형사의 본분을 외면하나 그때마다 튀어나오는 K에 등 떠밀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의를 실현한다.

바로 그 지점이 [배드 앤 크레이지]만의 매력인데, 류수열의 변화를 이끄는 K의 존재가 상당히 흥미롭다. K가 류수열의 숨은 양심이 만들어낸 또 다른 인격이라는 사실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너무도 유명한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거꾸로 대입해 색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선한 인간이 내면 깊숙이 잠재된 악한 본성에 끌리는 게 아니라, 속물적인 인간이 애써 외면해왔던 선한 본성을 마주하고 개과천선한다는 전개가 드라마에 신선한 매력을 부여한다.

액션과 코미디를 적절히 오가며 이 같은 설정에 만화적인 재미를 더한 연출도 돋보인다. 류수열이 난데없이 등장한 K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회의원 도유곤에게 발차기를 날리는 2회 엔딩이 대표적이다. 빠른 화면 전환으로 그동안 류수열이 K에게 당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실제로는 류수열 본인이 한 행동이며 K가 그의 인격체란 사실을 드러내면서, K의 인격이 된 류수열의 희열에 찬 모습으로 센스 있게 마무리한다. 기존 범죄물에서 무겁게 묘사됐던 이중인격을 B급 감성으로 풀어낸 점이 재치 있다.

성격이 다른 두 인격의 공조를 감칠맛 나게 그려내는 이동욱과 위하준의 브로맨스도 관전 포인트다.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서늘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로맨틱한 면모가 강한 이동욱은 능구렁이 같으면서도 짠내 나는 캑릭터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해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속물적인 모습과, K를 만나 수모를 겪고 억울해하는 모습을 능청스럽게 오간다. 특히 짜증 섞인 모습이 리얼해서 이선균-박정민으로 이어진 ‘짜증 연기’ 계보에 이름을 올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선과 악이 묘하게 공존하는 마스크로 양극단의 캐릭터를 오갔던 위하준의 골 때리는(?) 변신도 흥미롭다. 정의로운 광기를 가진 K를 카리스마 있고 멋지게 표현하기보다는 적당히 유치한 면모가 있는 익살스러운 캐릭터로 그려내 극에 활력을 더한다.

다만 주변 캐릭터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제 앞가림만 했던 류수열이 K를 만나 좋은 사람인 척하는 나쁜 사람들을 타도하는 게 중심 서사이긴 하지만, 두 캐릭터에만 치중하니 흐름이 단조롭게 느껴진다. 원칙주의자 순경 오경태 (차학연)는 해맑은 얼굴의 독한 놈이라는 설정은 재밌지만 류수열이 각성하는 계기로만 머물고, 류수열의 전 연인이자 같은 경찰인 이희겸 (한지은)은 마약반 형사로서 가진 능력보다는 류수열과의 관계만 더 부각되는듯하다.

[배드 앤 크레이지]는 용사장이 운영하는 마약조직과 결탁한 국회의원 도유곤과 마약반 형사 김계식이 저지른 범죄를 해결하고, 류수열의 과거와 연결된 살인사건으로 마지막 장을 열었다. 아마도 이 사건의 진실로 향하는 길은 K가 나타난 이유와 이어졌을 것이며, 사건 해결이 아웅다웅하며 동거동락했던 류수열과 K의 이별을 의미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