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 시각으로 3월 27일에 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 트로피의 향배가 결정된다. 트로피를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수상자들을 보면 뭉클하고 흐뭇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응원하는 작품이 받지 못해 아쉬울 때도 있다. 특히 몇몇 영화들은 ‘작품상’을 수상할 만큼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이 상당했지만 그 결과를 얻지 못해 때때로 논쟁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다가오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기다리며, 비록 ‘오스카’의 선택은 받지 못했지만 영화팬들의 ‘올-타임’ 지지를 이끌어낸 몇몇 작품들을 살펴본다.

쇼생크 탈출

이미지: 더픽쳐스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쇼생크 탈출]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은 레전드 작품이다. 누명을 쓰고 쇼생크 감옥에 갇힌 앤디와 그의 친구 레드의 우정을 그린 영화로, 팀 로빈슨과 모건 프리먼의 열연이 돋보인다. 감옥과 범죄자, 죄수라는 부정적인 요소가 가득함에도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와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많은 이들의 눈물을 훔쳤다. 특히 후반부 감옥을 탈출한 앤디의 모습은 짜릿한 쾌감과 함께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며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남았다. [쇼생크 탈출]은 1995년 6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을 비롯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하나도 수상하지 못했다. 당시 [포레스트 검프]의 열풍에 묻혀 여러 시상식에서 찬밥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작품의 진가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현재 IMDB 평점 1위를 수년째 지킬 정도로 탈옥 영화의 마스터피스로 인정받고 있는 중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처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영화의 바이블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완성도와 메시지를 가진 작품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라이언’ 병사를 구하기 위한 구출부대의 여정을 그린 영화로,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만나 큰 화제를 낳았다. 처참하고 강렬한 오프닝 전투 장면부터 마지막 라이언의 모습까지, 매 씬 마다 상당한 몰입감을 건네며 전쟁영화다운 스케일과 뭉클한 감동을 동시에 잡아낸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1999년 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11개 부문에 올라 많은 주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감독상(스티븐 스필버그)을 수상했지만, 기대했던 작품상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차지해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완성도도 훌륭하지만, 작품상만큼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탔어야 하는 의견이 아직도 많이 나오고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

이미지: 유니버설 픽쳐스

2005년 개봉작 [브로크백 마운틴] 역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작품의 애절한 감성으로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두 카우보이의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해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높은 지지를 끌어냈다. 특히 극중 주인공으로 출연한 제이크 질렌할과 히스 레저의 내면 연기는 설렘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자아내어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2006년 78회 오스카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조연상, 여우조연상 등 8개 부문에 오르며, 그 해 아카데미 최다 부문 후보작이 되었다. 특히 영국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서도 작품상을 수상해, 오스카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작품상 수상작은 [크래쉬]가 차지했다. 이에 대해 많은 평론가들은 “아카데미가 아직까지 동성애 소재를 주류 장르로서 인정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수상 결과를 비판했다.

소셜 네트워크

이미지: 워터홀컴퍼니(주)

데이빗 핀처의 역작 [소셜 네트워크]는 앞선 두 작품만큼 수상결과에 논란이 있진 않았지만, 너무나도 아깝다는 반응이 많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데이빗 핀처의 연출과 에런 소킨의 대본이 만나 제작 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다. 실제로도 작품은 두 아티스트의 훌륭한 시너지는 물론, 제시 아이젠버그, 앤드류 가필드, 아미 해머 등 당시 할리우드 신예 배우들의 치열한 연기까지 더해져 완성도를 높였다. [소셜 네트워크]는 평단의 호평과 관객들의 좋은 반응으로 2010년 83회 오스카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다수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번만큼은 데이빗 핀처가 생애 최초 감독상 혹은 작품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나, 같은 해 후보에 오른 [킹스 스피치]에 밀려 [소셜 네트워크]는 몇몇 기술 부문 수상에 그쳤다. 사실 시상식 전부터 아카데미 투표 성향상 [소셜 네트워크]보다 [킹스 스피치]에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럼에도 데이빗 핀처가 이 작품으로 트로피를 갖지 못한 건 그의 경력에서 너무나도 아깝다라는 반응이 많다.

라라랜드

이미지: 판씨네마(주)

[라라랜드]는 수상 결과보다 당시 시상식의 해프닝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낳은 작품이다. LA를 배경으로 재즈 피아니스트와 배우 지망생의 꿈과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유려한 연출과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의 러브 케미로 개봉 당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극에 등장한 노래, 춤, 패션 등이 세계적인 신드롬을 낳기도 했다. [라라랜드]는 2016년 89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주연상 등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는데, 이는 역대 오스카 시상식 최다 부문 노미네이트 기록이다. 당일 현장에서도 여우주연상, 감독상, 촬영상 등 주요 부문을 수상하며 마지막 작품상을 향한 순조로운 행진을 펼쳤고, 시상식 마지막에 작품의 이름이 마침내 나왔다. 하지만 이는 주최 측의 잘못된 발표였고, 1분 뒤 작품상 수상자는 [문라이트]로 정정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벌어진 최악의 사고 때문에 [라라랜드]와 [문라이트] 팀 모두가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놓여진 것. 그럼에도 [문라이트]의 작품상 수상은 변화에 보수적이었던 아카데미의 의미 있는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라라랜드] 역시 작품 탄생 6년이 지난 지금도 재개봉을 통해 관객과 만나며 많은 이들의 인생작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