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는 한여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후덥지근하다. 추운 날씨에 겹겹이 쌓인 코트를 입은 게 엊그제 같은데, 2022년도 벌써 반 가까이 지나갔다. 그만큼의 시간 동안 여러 OTT에선 자사의 상반기 화제작을 내놓으며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무엇을 볼까’라는 고민이 작품 관람 시간보다 더 길어진 대 OTT 기대작 홍수(?)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몇몇 작품은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건네며 에디터의 마음에 뿌듯함을 안겼다. 과연 어떤 작품들이 있었을까? 이대로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2022년 상반기 추천 드라마 5편을 정리해본다.

드롭 아웃 (The Dropout)

이미지: 디즈니+

[드롭아웃]은 ABC 뉴스 팟캐스트 ‘드롭아웃’을 바탕으로 제작된 디즈니플러스 8부작 시리즈물이다. 2003년, 유니콘 기업 ‘테라노스’의 CEO이자 제 2의 스티브 잡스라 불린 희대의 사기꾼 엘라자베스 홈즈는 피 한 방울로 240개 이상의 질병을 판별할 수 있다는 기발한 아이템을 발명, 실리콘 밸리 역사상 가장 큰 스캔들을 일으킨다. 그의 아이디어는 스티븐 잡스처럼 혁신적이었으나, 딱 그뿐이었다. 실제로 구현해낼 기술은 불가능했을 뿐더러, 억지로 만들어낸 시제품 ‘에디슨’은 형편없었다. 투자 받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화려한 언변과 점철된 거짓으로 투자자들을 현혹시키는 것뿐이었다.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실존 인물인 엘리자베스의 외형을 닮았을 뿐 아니라 혼란스러운 내면 연기와 섬세한 심리 묘사로도 큰 호평을 받았다. 어딘가 공허하면서도 광기 어린 눈빛과 의도적인 중저음의 목소리와 말투까지, 완벽하게 캐릭터를 제 것으로 만들어낸다. [드롭 아웃]은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89%를 기록할 만큼 흥미로운 실화 소재를 바탕으로, 스피디한 전개와 실존 인물 싱크로율 200%의 뛰어난 연기력이 더해져 보는 이들을 순식간에 끌어당긴다. (디즈니+)

파친코 (PACHINKO)

이미지: 애플tv+

[파친코]는 해외자본으로 만들어진 재일한국인을 그린 비영어권 시리즈이다.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조합의 드라마로,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드라마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주인공 ‘순자‘와 주변 인물을 통해 자이니치(재일한국인)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고발하며,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가기 위한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이야기한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선자의 과거 역사와 손자인 솔로몬의 시선으로 본 현대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교차되어 작품의 몰입감을 더한다. 여기에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작품의 완성도를 탄탄하게 다지기에 충분하다. 4대에 걸친 80년간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작품에 등장하는 위안부 문제, 관동대학살 등 무게감을 지닌 역사적 내용들이 깊이 있게 묘사되지 않아 아쉬움도 있지만, 지금의 한국인들에게도 낯선 ‘자이니치’와 이들이 견뎌온 역사의 무게를 생각하게 한 드라마이다. 시즌 2도 계획되어 있다고 하니, 시즌 1의 방대한 서사로 인해 부족했던 몇몇 부분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애플TV+)

그레이스 앤 프랭키 시즌 7 (Grace and Frankie Season 7)

이미지: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최다 에피소드, 최장수 시리즈의 자리를 유지해 온 [그레이스 앤 프랭키]가 시즌 7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남편이 게이임을 선언하고 이혼해 혼자가 된 두 아내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그레이스와 프랭키가 동거하며 파란만장한 노년 시절을 보내는 이 작품은, 마지막 시즌에서 죽음을 마주하게 된 그레이스와 프랭키의 운명을 수용하는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화려한 인생의 전성기가 아닌 두 노인의 삶을 중심으로 한 시트콤이지만, 그레이스와 프랭키가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 황당무계한 모험을 떠나는 모습을 통해 인생 2막의 진취적인 삶을 의미 있게 그린다. 실제로 주연을 맡은 제인 폰다와 릴리 톰린은 사회 문제에 대해 꾸준히 소리 내고 있는데, 각본까지 참여해 이 같은 이슈를 이야기에 적절하게 녹여낸다. 여타 미디어에서 보여준 ‘결혼해서 행복했습니다’ 이후의 삶을 웃음과 감동으로 그려낸 이 작품의 가치는 시즌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될 것이다. (넷플릭스)

문나이트 (Moon Knight)

이미지: 디즈니+

말 그대로 눈을 뗄 수 없는 마블 시리즈가 탄생했다. 디즈니+ 오리지널 [문나이트]는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스티븐’이 또다른 자아인 무자비한 용병 ‘마크 스펙터’의 존재를 깨닫고, 히어로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다면적인 캐릭터, 치열한 결투 씬,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애절한 로맨스 등 시리즈의 매력이 차고 넘치지만, 그중 전개 속도를 뺄 수 없다. 제작진은 주인공의 다중인격을 이용해 극을 영리하게 밀고 나간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또 다른 인격이 적들을 무참히 쓰러트렸다는 식이다. 또한 드라마는 극적인 장면들 사이에 유머러스한 장면을 집어넣어 분위기를 전환한다.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와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오가는 마블 특유의 장점이 여과 없이 발휘됐다. 허투루 낭비하는 장면이 드문 탓에 평소처럼 ‘빨리 감기’를 눌렀다가는 뒤바뀐 주인공의 성격과 극의 분위기에 혼란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아가 오스카 아이삭의 연기력이 극의 완성도에 마침표를 찍었다. 주인공이 여러 인격을 오가는 탓에 자칫하면 드라마가 산만해질 수 있으나, 오스카 아이삭은 인격들을 철저히 구분해낸다. 게다가 오스카 아이삭의 연기력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진화해 시청자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문나이트]는 주인공의 세 번째 인격 ‘제이크 로클리’를 암시하며 끝을 맺었다. 과연 제이크 모클리에 숨겨진 서사는 무엇일지, 또 오스카 아이삭은 어떤 연기를 선보일지 시즌 2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커진다. (디즈니+)

신문기자 (The Journalist)

이미지: 넷플릭스

‘넷플릭스 일본 드라마는 뭔가 아쉽다’는 편견을 한 방에 날려준 작품이다. [신문기자]는 일본 총리의 사학 비리 사건을 쫓던 언론인이 거대한 음모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양한 인물의 시선을 통해 풀어낸다. 2017년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참고로 영화/드라마 모두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이 연출), 그만큼 영화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에 살과 에피소드를 더하며 작품의 주제의식은 더 강하게, 인물의 매력은 탄탄하게 끌어올린다. 특히 영화에는 없고 드라마에만 등장한 한 취업준비생 캐릭터는 마치 이 사건을 보는 시청자의 모습을 대변하며,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하는지를 힘주어 말하는 듯하다. 여기에 영화와 드라마에서 같은 역할로 출연하는 배우와 데자뷰가 느껴지는 장면도 배치해 원작 팬을 위한 서비스도 준비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전하는 비판 정신과 언론의 지향점은 일본 사회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더라도 정의와 진실을 파헤치고 지키려는 극중 인물의 분투는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도 다음을 향한 작은 희망과 함께 보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