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라그나로크]의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토르]의 이전 두 작품과는 다르게 유머 코드를 극에 적절히 녹여내어 큰 흥행을 끌어냈다. 이번 [토르: 러브 앤 썬더]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어떤 볼 거리나 스케일 보다 유머러스한 스토리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작품은 그 기대에 걸맞게 작품은 토르의 자아와 삶의 방향을 찾는 여정을 유쾌하게 그린다.
블립 이후로 5년간 술독에 빠져 지냈던 토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 멤버로 합류해 우주의 바이킹 역할을 해왔다. 그는 훈련으로 살도 빼고 예전의 몸으로 돌아왔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슬퍼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건 모두 떠난다며 한탄하는 토르의 모습은 자신감 넘치던 예전과는 다르다. 나의 역할이 무엇일지 고민하던 그는 결국 결론을 내리며,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고르다. 라프 신의 마지막 신도였던 그는 딸이 죽고 찾아간 오아시스에서 이기적인 신의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그를 부른 네크로소드의 주인이 된 고르는 모든 신을 죽이려 하면서 토르와 갈등을 빚는다. 크리스찬 베일은 이 배역을 맡아 감량뿐만 아니라 삭발까지 감행했다. 연기 역시 캐릭터에 걸 맞는 냉정함과 비애를 잘 그려낸다. 특정 장면에선 공포영화 [더 넌]의 수녀 귀신이 떠오를 정도로 밝은 분위기로 가득한 작품에 섬뜩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 같은 열연 때문일까? [토르] 시리즈의 빌런 중 고르가 가장 좋은 반응을 받았다는 테스트 시사의 후문이 자자하다.
MCU에서 영원히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나탈리 포트만이 돌아왔다. 마이티 토르로 컴백한 그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묠니르를 들고 히어로가 되어 토르와 함께 이야기는 물론, 액션에서도 맹활약을 펼친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와 아직 끝나지 않은 러브스토리가 유머 코드와 맞물려 많은 웃음을 건넨다.
이 밖에 비중은 작지만 그에 걸맞지 않은(?) 대배우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맷 데이먼은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연극 속 로키로 출연해 웃음을 더하고, 특히 신들의 왕 제우스를 연기한 러셀 크로우가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즐거움을 선사한다. 제우스는 시리즈의 흐름 상 이번만 등장하고 끝이 아닐 듯한데, 벌써부터 그의 다음 쇼가 기대된다.

캐릭터들의 케미와 코믹 코드가 가득함에도 몇몇 부분은 단점으로 다가온다. 일단 스케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전작들이 보여준 대 우주 시대의 휘황찬란한 배경 없이 작은 공간에서만 액션이 펼쳐진다. 마블의 전작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보여준 시공간을 넘는 스케일에 만족했다면 상대적으로 이번 작품의 볼 거리는 빈약하다. 토르의 고뇌도 사족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의 방황이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진 않지만, 영화의 리듬을 떨어뜨려서 지루하다. 스포일러 관계로 말할 수 없지만, 너무 토르에만 서사로 집중되어 기대했던 주변 캐릭터가 빛을 발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기자 간담회에서 ‘다음이 또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토르: 라그나로크]에 모든 것을 쏟아 넣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그의 열정에 못 미친 느낌이다. 그의 전작 [토르: 라그나로크]의 유머러스하고 캐릭터에 집중한 이야기가 오히려 단점으로 다가온다. 너무 과한 유머를 덜어내고 상대적으로 빈약한 액션과 스케일에 더 힘을 쏟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럼에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마블의 유혹은 계속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