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엣나인필름

학창 시절 진로희망 설문지에 매년 수많은 직업을 적었지만 실제로 그 꿈을 이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것을 질타하는 이는 없다. 꿈과 희망은 청소년의 양분이자 원동력이니깐. 이중 유독 과학자를 꿈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하던 90년대에 우주비행사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오늘 소개할 [가가린] 속 주인공도 그렇다. 

영화는 우주를 꿈꾸고 ‘가가린’을 사랑하는 프랑스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인 [가가린]은 프랑스 파리 근교의 주택단지 이름이다. 철거를 앞둔 가가린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년의 이름은 유리(알세니 바틸리). 둘을 합치면 유리 가가린, 공교롭게 러시아 최초의 우주비행사 이름이다. 우주를 동경하고 가가린을 선망하는 유리는 평생을 살아온 집이 가진 전부이다. 가족은 그를 버렸지만 이웃사촌과 집은 그에게 가족보다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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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며 사랑과 우정을 동시에 키워간다. 엄마의 금붙이를 팔아 철물점에서 수리 물품을 구매한다. 아파트를 수리하고 이웃과 어울리는 것은 유리에게 그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동네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해 트러블이 있고 엄마는 새로운 남자와 가정을 꾸려 늘 혼자지만, 가가린은 유리의 우주이다. 정부에서 석면수치와 노후로 철거해야 한다고 결정한 가가린의 모습은 유리의 눈에는 아름답기만 하다.

[가가린]은 한 마디로 유리의 성장 드라마다. 가가린에서 첫사랑을 만나 행복한 한 때를 보내지만 그에게는 곧 시련이 들이닥친다. 모든 이웃들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유리에게 가가린은 그만의 우주가 된다. 악역조차도 선역이 되는 장소 가가린. 그곳에서 그는 마지막 남은 잎새를 잡아보려 몸부림친다. 장르가 뮤지컬 리얼리즘 드라마라고 하는 부분이 눈길을 끄는데, SF까지는 아닐지라도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한 장면은 관객들의 순수한 동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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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역을 맡은 알세니 바틸리는 [가가린]이 데뷔작이다. 처음에 제작진이 그린 유리의 이미지와 알세니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새로운 유리의 캐릭터를 그리게 됐을 정도로, 알세니는 영화에서 깊은 인상을 건넨다. 다이아나 역을 맡은 리나 쿠드라는 프랑스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이다. 19년에 데뷔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적이 있을 정도다. 영화에서도 안정된 연기를 선보이며 다음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연말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몇 년째 하고 있다. 올해는 구세군이 종을 흔들고 크리스마스트리와 캔디 케인, 진저브래드맨이 장식된 설레는 따뜻한 연말을 기대한다. 그런 분위기에 이 영화는 안성맞춤이 될 듯하다.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유리의 순수함에 동화되어, 남들은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기쁨을 꼭 느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