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이 막을 내렸다. 재벌가의 비리를 처리하다 죽은 비서가 그 집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는 [재벌집 막내아들]은 회귀와 재벌, 복수라는 현재 가장 뜨거운 키워드를 녹여내면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러한 소재들이 계속해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리의 욕구를 반영하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은 필연적으로 더 높은 곳을 갈망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서사를 탄생시킨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들은 계급 차이에 대응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자세히 담았다.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저항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씁쓸함과 통쾌함을 함께 자아낼 것이다.

바텔 – 죽음으로도 깰 수 없는 계급의 벽

이미지: 미라맥스

왕권이 정점에 올랐던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집사 프랑소와 바텔이 3일간의 축제를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바텔]. 영화는 파산 위기에 몰린 콩데 왕자가 성대한 축제를 열어 국왕의 신임을 얻으려는 계획에서 시작한다. 집사 바텔은 축제에서 왕의 정부인 안느를 만나고 둘은 서로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그러나 다음 날 안느는 왕궁으로 돌아가고 바텔은 다시 축제를 지휘한다. 축제의 열기가 지나가고 안느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바텔]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세트 디자인으로 미국 아카데미 미술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영화는 유려한 겉모습 뒤에 귀족의 허영심, 그리고 이를 떠받치는 평민들이 있음을 꼬집는다. 바텔은 장기말처럼 취급되는 자신의 처지와 신분의 한계에 자괴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가 부조리에 저항하기 위해 선택한 죽음마저 권력에 의해 왜곡됐다는 점이 안타까움을 배가한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그의 편지는 유서이자 러브레터로, 덤덤한 어투로 쓰여 더욱 여운을 남긴다.

나넬 모차르트 – 가족을 위해 그림자로 남은 비운의 천재

이미지: (주)마운틴픽처스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이라도 익숙한 이름 ‘모차르트.’ [나넬 모차르트]는 세기의 음악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누이 나넬 모차르트의 삶을 조명한 영화다. 영화 속 나넬 모차르트는 남동생과 마찬가지로 일찍이 음악적 재능을 개화하지만 동생을 뒷바라지하길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그림자로 남는다. 영화는 나넬 모차르트가 어떤 식으로 한계를 마주하고 현실을 수용하는지를 그려낸다. 무미건조한 나넬의 삶은 뜨뜻미지근한 갈등을 거쳐 차분한 독주곡을 완성한다.

[나넬 모차르트]가 씁쓸함을 자아내는 이유는 나넬의 체념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일 것이다. 일차적으로 나넬의 날개를 꺾은 아버지는 딸을 사랑하면서도 나넬의 재능을 부정한다. 여자는 복잡한 음악의 규칙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대면서 넌지시 희생을 강요한다. 이에 믿었던 황태자마저 등을 돌리자 결국 나넬은 현실을 순응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꿈과 가족을 맞바꾼 천재는 과연 행복했을까? 명확한 답은 알 수 없지만 결말에 비친 나넬의 공허한 눈동자가 감독의 해석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느 하녀의 일기 – 가장 낮은 시선에서 관찰한 욕망과 타락

이미지: 씨네룩스

[어느 하녀의 일기]는 젊고 날씬하며 예쁘기까지 한 셀레스틴이 시골 마을의 하녀로 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셀레스틴은 여러 집을 전진하던 끝에 지방으로 내려가 랑레르 부부를 모시게 된다. 베테랑 하녀답게 셀레스틴은 조용히 부부의 요구에 맞추며 현실에 순응한다. 주변의 인정을 받으며 삶이 안정될 무렵 집사 조제프가 셀레스틴의 마음을 뒤흔든다.

소설 원작인 [어느 하녀의 일기]는 세 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각각 다른 결말을 맺는 점이 인상적이다. 2016년 작품에서는 고전적인 미모로 유명한 레아 세두가 셀레스틴으로 변신했다. 몽환적인 눈매와 한껏 치켜 올린 턱, 당당한 걸음걸이와 세련된 패션 감각은 오히려 셀레스틴이 지배 계급인 마님이라는 착각에 들게 한다.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셀레스틴은 더 불행해질 것을 알면서도 조제프를 따라간다. 이러한 셀레스틴의 결정은 이해를 너머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하녀의 본질을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셀레스틴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어 안정적인 삶을 살기 보다 조제프의 옆에서 동등하게 있기를 바란 것이다. 누군가는 답답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덕분에 영화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오래 기억될 결말을 건넨다.

위대한 개츠비 – 끝없이 올라가다 타버린 로맨티스트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문 소설 중 하나로 꼽히는 『위대한 개츠비』. 2013년에 개봉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는 바로 이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는 1920년대 밀수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제이 개츠비가 몰락하는 과정을 이웃 닉의 시선에서 그렸다. 제이 개츠비는 매일 호화스러운 파티를 열면서 사교계의 스타로 등극하지만, 그토록 그리워하던 옛사랑 데이지와 재회한 후 허망하게 추락한다.

제이 개츠비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비현실적이다. 헌신하면 헌신짝 되고 맹목적인 사랑을 보기 힘든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제이 개츠비의 사랑을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후 [위대한 개츠비]를 신화에 비유한 글을 읽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이상을 투영하고 신으로 바라보았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개츠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에 눈이 먼 남자가 아닌, 태양을 향해 날아간 이카로스가 겹쳐 보였다. 상류층의 일원이 되어 짓밟힌 자존감을 회복하고픈 절실한 욕망을 엿보았다. 이렇듯 신분 상승에 대한 갈증은 개츠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자 동시에 그를 무너뜨린 덫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빛나는 별에 빗대며 끝없이 올라가야 한다고 되새긴 제이 개츠비. 나 역시 필사적으로 전진해야 하는 바, 이제는 그의 갈증을 이해할 것도 같다.

자산어보 – 다른 이상을 품은 사대부와 어부

이미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사도], [동주]의 이준익 감독이 2019년에 선보인 흑백 사극 영화 [자산어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도감을 집필한 정약전과 청년 어부 창대의 이야기를 그린다. 흑산도로 유배를 온 정약전은 실리적인 책을 쓰기로 결심, 지식에 목마른 창대에게 접근한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스승이자 제자가 되어 지식을 교류한다. 그러나 이내 창대가 공부한 목적을 알게 된 정약전은 크게 실망하고, 이를 기점으로 둘은 엇갈리게 된다.

과거에 합격해 육지로 올라간 창대를 기다리는 것은 끝없는 부조리였다. 벼슬아치들은 백성들을 수탈했고 갓난아기와 죽은 사람마저 세금을 매겼다. 상놈이 아닌 ‘사람 대접을 받기 위해’ 학문을 좇았던 창대는 글자 너머 마주한 참담한 현실에 괴로워한다. 창대는 흑산도로 돌아와 비로소 정약전을 이해하게 되었다.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던 사대부 출신 정약전. 성리학을 신봉하던 서자 출신 창대. 평행선을 달리던 둘의 이상은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합쳐지며 긴 여운을 빚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