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최근 한 명품 브랜드 가방의 가격이 1500만 원을 돌파했다. 왠만한 경차 값과 맞먹는 셈인데, 자동차에 ‘드림카’가 있듯이 가방에도 ‘드림백’이 있는 모양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허세와 돈 낭비일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그 값을 지불한다. 여기에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는다(지금은 한풀 꺾이긴 했지만). 명품을 소유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는 디올 드레스를 사기 위해 전 재산을 들고 파리로 향한 해리스 부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1957년 런던, 청소부로 일하는 해리스 부인은 일하던 가정집에서 아름다운 보랏빛 드레스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이후 오랜 시간 기다려온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게 된 해리스 부인. 이제는 온전히 스스로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고 돈을 깡그리 모아 파리행 기차에 오른다. 500 파운드에 달하는 디올 하우스 드레스를 사기 위해.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180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있는 돈 없는 돈 ‘영끌’해 원정 쇼핑을 떠나는 이야기로 들린다. 시놉시스와 포스터를 봤을 때만 해도 사랑스럽지만 철딱서니 없는 부인의 모험이 그려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예상대로 해리스 부인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지만 영화는 갑질과 편견, 꿈과 로망, 변화와 도전이라는 보다 깊은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사치를 미화하는 원색적인 영화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꿈을 좇는 사람들의 도전과 고민을 담았다.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함께 제공하는 영화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의 매력 포인트를 살펴보자.

도와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오지랖을 부르는 해리스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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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코 해리스 부인(레슬리 맨빌)이다. 늘 웃는 얼굴에 한없이 긍정적이며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재치 있는 말로 주위에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파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도 해리스 부인과 말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빠져들고 기꺼이 도움을 주고자 한다. 파리에 도착한 해리스 부인은 부푼 마음을 안고 디올 하우스의 문을 두드리지만 구경도 못하고 문전박대 당할 위기에 처한다. 매장 관리자인 마담 콜베르(이자벨 위페르)가 그녀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옷을 살 여력이 없다고 판단해 내쫓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던 디올 하우스의 직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심지어 머물 곳이 없는 해리스 부인을 위해 회계 담당 직원인 앙드레 포벨(루카스 보리스)은 자신의 거처까지 제공한다. 착하게 살고, 웃으면 복이 온다는 진리를 다시금 일깨운다. 이러한 해리스 부인의 사랑스럽고 통통 튀는 매력은 극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과연 그녀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하고 궁금증을 갖고 끝까지 응원하게 만든다.

스크린에 펼쳐진 낭만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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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디올 하우스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는 눈을 즐겁게 하는 영화다. 해리스 부인이 머무는 아파트 뒤로 에펠탑과 오페라 하우스를 비추고 파리의 야경과 거리도 한 폭의 명화처럼 담았다. 극중 해리스 부인과 샤사뉴 후작이 관람하는 공연 역시 화려한 의상과 춤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물론 화룡점정을 찍는 건 형형색색의 드레스다. 후작의 도움으로 디올 하우스에 입성한 해리스 부인의 앞에 다양한 디자인의 드레스가 펼쳐진다. 마치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고 반한 피그말리온처럼, 드레스를 쫓는 해리스 부인의 눈에는 열정과 열망, 황홀함 등이 섞여 있다.

발랄한 주인공과 대비되는 묵직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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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가 마냥 가볍고 발랄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영화는 디올 드레스를 만들고, 입고, 구매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꿈과 존재 등에 대해 역설한다. 우선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메시지는 계급과 편견이다. 해리스 부인이 처음 디올 하우스에 입성할 때 그곳을 진두지휘하는 마담 콜베르는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요. 직원을 시켜서 안내해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다급히 직원 호출벨을 눌러 해리스 부인을 치워버리려 한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 무례하게 행동한 것이다.

여기에 단골 고객으로 표현되는 마담 아발롱은 상류층의 특권 의식을 더욱 드러낸다. 해리스 부인과 한 공간에 있는 사실을 불쾌히 여기며, VIP라는 점을 이용해 해리스 부인이 주문하려던 옷을 빼앗는다. 이때 디올 하우스의 직원들이 해리스 부인을 나서서 도와주는 데는 안쓰러움을 느낀 것도 있지만 마담 아발롱처럼 갑질을 일삼던 콧대 높은 부자 고객과 반대되는 해리스 부인에게 동질감을 느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사건 사고에도 드레스를 포기하지 않는 해리스 부인에게 마담 콜베르는 “댁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라고 말한다. 이후 해리스 부인이 포벨에게 건내는 대사에서 그가 드레스를 갈망하는 이유가 넌지시 드러난다. “우리에겐 꿈이 필요해요.” 아름답다는 심미적인 이유도 있지만 해리스 부인은 드레스에서 자신의 꿈을 엿보았다.

이어서 해리스 부인은 디올 하우스를 변화시키고 싶은 포벨의 마음을 눈치채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을 종용한다. 마치 자신이 드레스라는 꿈을 좇아 파리로 온 것처럼. 그는 모두가 안된다고 반대하는 터무니없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무모할지언정 명확하게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해리스 부인은 영화에서 여러 번 농담조로 언급되는 혁명가나 다름없다.

결국 포벨은 용기를 내고 디올 하우스에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다. 이에 마담 콜베르의 입지가 줄어들자 해리스 부인은 그를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우린 닮은 데가 많아요. 남의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매사를 세심하게 돌보죠. 꼭 필요한 존재인데 드러나질 않아요.” 영화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가 잘 드러나는 지점이다. 영화가 꿈을 대변하는 도구로 명품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과시의 대명사기 때문이다. 과시가 무엇인가? 자신을 드러내고 뽐내는 욕망과 행위다. ‘명품 드레스 구매’라는 과시적인 행위는 표면적인 장치에 불과하다. 영화는 해리스 부인을 필두로 회계 직원인 포벨과 모델 나타샤, 무명 배우 파멜라를 통해 억눌린 욕망과 꿈을 자각하고 펼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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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가봉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해리스 부인은 어렵사리 완성한 디올 드레스를 파멜라에게 선뜻 빌려준다. 배우로서 성공을 갈망하던 파멜라에게 드디어 유명해질 기회가 찾아왔기 떄문이다. 해리스 부인은 ‘세상에 날 드러낼 기회’라고 외치는 파멜라에게 드레스를 입혀주고 그녀의 꿈을 응원해 준다. 나아가 해리스 부인은 고용주에게 일침한다. (꿈의 도화선이 된 바로 그 드레스를 자랑하던 부인이다.) “사람을 막 대하면서 충성심을 요구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이다.

꿈을 향해 과감하게 도약하는 해리스 부인의 여정은 감동과 사이다를 선사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타인의 꿈을 자신의 일처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응원해주는 해리스 부인.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더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 주변에 미스 해리스, 미스터 해리스가 늘어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