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롭고 서늘한 매력의 뱀파이어가 가슴 뛰는 사랑을 꿈꾸는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됐다. KBS 월화드라마 [가슴이 뛴다]는 하루 차이로 인간이 되지 못한 뱀파이어와 인간 여자의 한집살이 로맨스를 그린다. 어디서 본듯한 조합이지만 가볍고 기분 좋게 시청하기에는 무난한 선택지로 보인다.

드라마는 뱀파이어와의 로맨스라는 친숙한 소재를 캐릭터의 변주로 차별화를 꾀한다. 그간 여러 작품에서 판타지 세계의 존재를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했던 것과 달리, 가슴이 뛴다에서는 어딘가 허술하고 인간적인 짠내를 풍기는 캐릭터로 그려낸다. 선우혈(옥택연)은 운명의 여인 해선을 만나기 위해 인간이 되기로 결심하고 100년의 긴 동면에 들어가지만 하루를 남기고 깨어나는 바람에 반인뱀파이어가 된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잠든 사이에 세상이 너무나 변해버렸고, 후일에 쓰고자 모아뒀던 금괴도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가슴 뛰는 사랑을 하기 전에 인간 세상에 적응하고 돈을 버는 게 시급해졌다.

이미지: KBS

그와 사랑에 빠질 여자 주인공의 성격도 남다르다. 본의 아니게 관 뚜껑을 열어 우혈의 잠을 깨운 주인해(원지안)는 자신을 지켜줄 건 오직 돈뿐이라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살아오느라 차가운 심장을 가진 뱀파이어보다 냉소적이고 무미건조하다. 다른 드라마였으면 우혈의 능력으로 생긴 로맨틱한(?) 순간에 두근거리는 설렘을 느꼈겠지만, 방어 본능이 뛰어난 인해는 그저 기막혀할 뿐이다. 피보다 사랑을 갈망하는 뱀파이어와 사랑보다 돈이 우선인 인간 여자의 만남이 뻔하게 흘러갈 수 있는 관계에 흥미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관계의 주도권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이 아닌 현실적인 돈에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옥택연과 원지안은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연기를 선보인다. 옥택연은 우혈이 급변한 세상에 적응해 가는 웃픈 생존기를 친근하게 그려내면서 캐릭터의 낭만적인 면모를 근사하게 보여준다. 흡사 무대 위의 모습과 무대 밖의 모습이 공존하는 것 같다. 인해는 아직 우혈의 매력을 다 알지 못하는 것 같지만, 시청자에게는 이미 충분하지 않나 싶다. 원지안은 기대 이상이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인물을 일상 연기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공감대를 입힌다.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 덕분에 연애가 사치인 고달픈 청춘인 인해가 한 번쯤은 사랑에 빠지는 걸 응원하게 된다.

이미지: KBS

드라마는 시트콤처럼 소소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캐릭터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그려내는데, 전개 속도가 느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즐거움이 약하다. 18일 8회를 방영하며 반환점을 돌았지만 둘의 관계는 답보 상태다. 대개의 로맨스 드라마들이 8회(16부작 기준)에 주인공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반해, 가슴이 뛴다의 우혈과 인해는 아직 상대에게 기우는 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과 사각관계를 형성하는 서브 캐릭터의 존재감도 미진하다. 인해를 짝사랑하는 신도식(박강현)은 중반까지 친절한 선배로 주변부에 머물기만 하고, 우혈이 그토록 찾았던 해선은 현재에서 나해원이란 나타났으나 등장 시점이 조금 더 빨랐으면 좋았을 것 같다. 8회에서 도식이 우혈의 남다른 정체를 알게 되고, 해선이 우혈에게 호감을 드러내며 정체된 이야기에 변화를 예고한 건 다행이다.

우혈과 인해의 관계를 쌓아 올리는데 치중해 러브라인의 서브 캐릭터뿐 아니라 극에 활력을 더하는 주변 인물들을 단조롭게 활용하는 것도 아쉽다. 우혈의 후배 뱀파이어인 이상해(윤병희)와 박동섭(고규필)은 너무 뻔한 감초 캐릭터에 그치고, 조력자인 고양남(김인권)은 캐릭터가 갖는 신비로운 정체성이 부족해 우혈과의 관계가 그리 흥미롭지 않다. 우혈과 대립각을 세우는 뱀파이어 리만휘(백서후)는 반환점을 돈 지금까지도 캐릭터의 악한 정체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가슴이 뛴다]는 이제야 캐릭터들 사이에 파장을 일으킬 사건이 시작되고 있다. 그동안 우혈과 인해의 관계를 성실히 구축하긴 했지만 장르적 재미가 부족했기에 남은 에피소드에서는 시청자들도 함께 두근거릴 수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