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

그린 애로우는 누구인가?

활을 쏘는 슈퍼히어로라고 하면 마블의 호크아이를 떠올리기 쉽지만 1941년에 [모어 펀 코믹스]로 데뷔한 DC의 그린 애로우가 선배격이긴 하다. (호크아이는 1964년). 올리버 퀸이라는 본명을 가진 그린 애로우는 사고로 인해 한 무인도에 갇혀 있는 동안 생존을 위해 활쏘기를 익히고 겨우 돌아와 범죄와 싸운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겉모습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로빈 후드 캐릭터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으며, 이 외에도 보험 조사관 스파이크 홀랜드의 위험한 수사를 다룬 에드거 월리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그린 아처]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마블의 호크아이와 활을 쏜다는 특기 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가진 특수 화살들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린 애로우는 유사성이 짙을 정도로 배트맨의 많은 요소를 따라 하기도 했는데, 퀸 인더스트리라는 대기업을 소유한 부유한 바람둥이 사업가이자, 애로우카를 타고 애로우케이브라는 동굴 기지를 사용하며, 스피디라는 어린 사이드킥을 데리고 범죄와 싸운다는 점 등이 꽤 흡사하다. 지금은 저스티스 리그의 중요 멤버 중 하나이자 ‘팀 애로우’라는 자신의 일가를 이룬 메이저급 히어로가 되었지만, 활동 기간에 비해 오랫동안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스피디의 인기가 더 높았다고 하며, 그린 랜턴과 콤비를 이루어 활동하거나 블랙 카나리와 연인 관계가 되는 등 다른 히어로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더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그린 애로우 영화화 시도

DC

그린 애로우는 아직 영화까지 진출하지 못했다. 인기가 적었던 탓도 분명히 있겠지만, 로빈 후드의 아류로 불릴 정도로 그 연관성을 의식한 덕분인지 아직까지 영화화된 적이 없다. 이미 로빈 후드의 영화화가 수 차례 이루어진데다가 마블 스튜디오의 호크아이와의 차별성 때문에 부담스러울 것으로 생각된다. 2000년대 초반에 누명을 쓴 그린 애로우가 최악의 범죄자들이 수용된 특수 보안 교도소에서 탈옥한다는 내용의 시나리오가 완성되기도 했지만 제작은 무산되었다. 이 설정은 규모를 축소하면서 [애로우] TV 시리즈에서 사용했다.  

TV 드라마 시리즈로는 큰 발자취를 남겼다. 드라마 속의 그린 애로우는 보다 더 현대화된 모습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2006년, 슈퍼맨이 되기 전의 어린 클라크 켄트의 모험담을 그린 드라마 [스몰빌] 시리즈의 시즌 6에서 첫 등장했다. 저스틴 하틀리가 연기한 이 그린 애로우는 활과 석궁과 다양한 기능을 갖춘 화살들을 사용하며 비밀리에 스타 시티에서 자경단원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처음엔 로이스 레인과 데이트를 하는 사이로 나타나 결국엔 클라크와 친구가 되며, 아쿠아맨, 바트 앨런, 사이보그 같이 클라크가 그동안 만났던 다른 히어로들과 함께 저스티스 리그를 구성한다. 이 올리버 퀸은 학창시절에 렉스 루터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기도 하다.

시리즈의 그린 애로우가 배트맨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꽤 멋지게 나왔기 때문에 별도의 그린 애로우 시리즈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린 애로우가 갈 곳이 없는 초능력자들을 훈련시켜 팀을 만드는 설정으로, DC의 여러 히어로들을 등장시키려 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저스틴 하틀리 본인도 [스몰빌]의 관심이 클라크가 아닌 다른 캐릭터에게 옮겨질 것을 우려해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애로우버스”의 그린 애로우

DC

그린 애로우를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는 [스몰빌]이 끝난 뒤에 준비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2012년이 되어서 코믹북 작가이기도 한 마크 구겐하임이 참여한 [애로우: 어둠의 기사] 시리즈가 방영되었다. 새로운 세계관을 도입한 이 시리즈에서는 스티븐 아멜이 그린 애로우가 되었다. 원작보다 더 어두운 캐릭터가 된 이 그린 애로우는 무인도에서의 생활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어서 범죄자를 죽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 내에서 “그린 애로우”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가 어떤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언론과 대중들에 의해 “후드”나 “자경단원”이라고 불릴 뿐이다. 그러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스스로 살인을 중단하기로 마음먹고부터 자신을 “애로우”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올리버 퀸이 자경단원에서 히어로로 진화하는 순간이다. 결국 ‘그린 애로우’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는 것은 더 나중의 일이다.   

그가 자신의 모험을 하는 동안 만나게 되는 플래시, 화이트 카나리 같은 캐릭터들이 각각 스핀오프 시리즈로 개발되면서, [플래시],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 [슈퍼걸], [블랙 라이트닝], [배트우먼] 등의 드라마들을 거느린 “애로우버스”라는 세계관을 구성하게 된다. 이 애로우버스에서 그린 애로우는 리더의 위치에 있으며 실질적으로 배트맨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까지 장기 방영하면서 큰 인기를 얻은 스티븐 아멜은 이 역할 하나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 스티븐 아멜은 DCEU와의 연계를 원한다고 밝혔지만 스튜디오의 높으신 분들은 서로 다른 별개의 세계관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이후 [피스메이커] 드라마를 통해 DCEU 내에도 그린 애로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표현했다.

애니메이션화된 그린 애로우

DC

애니메이션에서는 아직까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960년대에 한 번 제작 시도가 있었으나 배트맨에게 밀리는 바람에 취소되었고, 단편 [DC 쇼케이스: 그린 애로우]에서는 블랙 카나리에게 청혼하려는 내용으로 등장했다. 주로 조연이나 까메오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 시리즈에서는 주로 소규모 범죄를 막는 데 집중하는 히어로로 그려졌다. 그러나, 스피디와 함께 세븐 솔저스 오브 빅토리를 구성하는 에피소드에 나오고, 그의 좌익 사상 덕분에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로 선택받는다. [배트맨: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에서는 배트맨과의 유사점을 적극 활용해서 그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인물로 나온다. 매사에 배트맨과 경쟁을 벌이며 함께 협력하는 독특한 캐릭터다. [영 저스티스] 시리즈에서는 사이드킥이었던 스피디와 대립각을 세우는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