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명가 ‘지브리’를 대표하는 인물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을 넘어, 일본 영화계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흥행에 성공한 감독이다. 철학적이고 환상적인 세계관에 ‘애니메이션은 손으로 직접 그려야 한다’는 아날로그 감성을 녹여낸 것이 연출 특징이다. 이 굳건한 철학은 애니메이션을 새로운 경지로 올려놓았고, 그가 구현한 빛바랜 감성은 어느 세대에게 꼭 맞는 취향으로 정립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복귀작이자 진짜 은퇴작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7월 일본에서 개봉했다. 배우 산토키 소마, 시바사키 코우, 스다 마사키, 아이묭, 기무라 타쿠야 목소리에 음악감독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어우러진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다. 개봉 전까지 그 흔한 예고편이나 스틸샷 하나 없이, 아무런 홍보를 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손자에게 남겨줄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은퇴를 번복한 그는 ‘만들다 죽어도 좋다’는 투혼으로 신작을 작업했다고. 올해로 82세를 맞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진짜 마지막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년에서 할아버지가 되기까지, 일생의 반을 애니메이션과 함께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 중 인상 깊게 본 영화들 중심으로 설명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이미지: 스튜디오 지브리

하늘에 떠 있는 성 ‘라퓨타’를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린 [천공의 성 라퓨타]. 빛이 나는 목걸이를 한 채 하늘에서 떨어진 시타와 그를 구해준 기계 견습공 파즈는 천공의 성 ‘라퓨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모험을 떠난다. 기계가 아직 기계의 즐거움을 가진 시대, 과학이 반드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여기지 않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비행기 오타쿠’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어릴 적 읽고 자란 모험 활극에 담긴 것을 후대에 전해주고 싶어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구름 너머 전설의 성과 무자비한 군대를 동시에 묘사하였으며,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관의 중요한 배경인 ‘전쟁과 자연의 대비’를 표현한다.

[이웃집 토토로] (1988)

이미지: 스튜디오 지브리

시골로 이사 온 사츠키와 메이 자매, 그리고 숲속의 신비로운 생명체 ‘토토로’의 마법 같은 모험을 그린 [이웃집 토토로]. 지브리 팬들의 인생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개봉 당시 일본 내 모든 영화상을 석권하는 등 신드롬을 일으켰다. 따뜻한 스토리텔링과 지브리 특유의 감성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특히 여러 색을 조합하여 명명할 수 없는 색채인 ’지브리 색’을 완성했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를 ‘인간에게 더욱 상냥한 색’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에 지브리의 마스코트가 된 토토로, 토토로들이 타고 다니는 고양이 버스 등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또한, 동시에 개봉한 지브리의 또 다른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를 함께 언급할 수 있겠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반딧불의 묘]는 너무나도 판타지적인 [이웃집 토토로와]를 역전시킨 작품으로 불린다. 동심을 심어주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시니컬한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각자의 색이 분명하게 드러난 작품들이다. 이로써 서로를 비판하는 동시에 서로의 주제의식을 더욱 명확히 만드는 역할을 했다. 모든 요소가 대립되는 두 작품을 연달아 본다면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노노케 히메] (1997)

이미지: 스튜디오 지브리

필사적으로 숲을 지키려는 대자연의 신들과 인간들과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을 그린 [모노노케 히메]. 자신이 인간임을 부정하는 원령공주 ‘산’과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된 에미시족의 후계자 ‘아시타가’의 운명적인 만남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처절한 대전쟁이 펼쳐진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이야기를 16년 동안 구상하고, 완성 후에는 은퇴를 결심했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사상과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녹여냈다. 웅장하고 무거운 분위기 탓에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졌지만 애니메이션계의 명작으로 꼽힌다. 시대극은 흥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당시 예측도 뒤엎으며 약 190억 엔을 벌어들이고, 총 1450만 명을 동원하여 일본 박스오피스 사상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다. 일본 문화 개방 이전에도 작품의 명성이 자자했는데, 당시엔 ‘모노노케 히메’를 번역한 원령공주라는 제목으로 유명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이미지: 스튜디오 지브리

금지된 세계로 들어간 소녀 치히로와 그를 돕는 정체불명의 소년 하쿠의 경이로운 모험을 그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낯선 세계로 들어와 자신의 이름을 잃고 ‘센’(千)이 된 ‘치히로’(千尋)는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님을 되찾기 위해 요괴들이 방문하는 요괴 여관에서 일하게 된다. 그 속에서 인간처럼 보이지만 팔다리가 8개인 가마 할아범, 욕망에 사로잡힌 가오나시, 오물을 뒤집어쓴 강의 신 등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마주한다. 자신과 타인의 존재를 알아가기 시작하는 10세의 아이들에게 바치는 작품으로(미야자키 하야오가 10살이 된 친구 딸을 보고 구상한 작품이라 밝혔다), 동화적이고 판타지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과거 걸작들까지 입소문을 타게 되었다. 2020년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개봉하기 전까지, 일본 흥행수입 1위를 10년 넘게 지켰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이미지: 스튜디오 지브리

마법과 로맨스가 만난 최고의 감성 판타지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녀의 저주로 인해 할머니가 된 ‘소피’는 우연히 거대한 마법의 성에 들어간다. 불꽃 악마 ‘캘시퍼’로부터 자신과 마법사 하울의 계약을 깨주면 저주를 풀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청소부가 되어 ‘움직이는 성’에 머물게 된다. 영화의 배경은 파스텔 톤 건물, 알록달록한 집들이 늘어선 16세기 유럽이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부터 스위스의 거리, 파리의 궁궐, 19세기 영국의 의상까지 디테일하게 묘사하며 독특한 분위기의 시대를 재현해냈다. 여기에 사랑스러운 90세 소녀와 여심을 사로잡는 꽃미남 마법사의 케미가 마음을 간지럽힌다. 제작 도중 감독이 교체되고 개봉일을 연기하는 등 다사다난했고, 평가도 기존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박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그리고 하울의 훌륭한 미모(!) 등으로 지금까지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벼랑 위의 포뇨] (2007)

이미지: 스튜디오 지브리

호기심 많은 물고기 소녀 ‘포뇨’의 사랑을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린 [벼랑 위의 포뇨]. 아빠 몰래 육지로 가출을 한 포뇨가 바닷가 소년 ‘소스케’를 만나 즐거운 육지 생활을 하던 중,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헤어질 위기에 처한다. 수작업을 고집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특히나 영상미에 공을 들인 작품으로, 초심으로 돌아가 기본에 충실하자는 그의 신념이 담겨 있다. 폭우와 해일로 도시가 가라앉는다는 비극 속에서도 역동적인 파도와 수채화 같은 풍경 묘사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사람과 물고기의 형태를 띤 신비스러운 존재 포뇨는 너무도 사랑스럽고 앙증맞아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작품은 안 봤어도, 작품의 귀여운 매력을 한껏 담아낸 ‘포~뇨 포~뇨’ 하는 주제곡은 한 번쯤 들어봤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