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춤과 친해지고 있다. [댄스가수 유랑단]이 잊고 살던 추억과 흥을 깨웠고, 댄서들의 노력과 열정을 알린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시즌 2를 통해 다시 한번 여름을 책임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숏폼 콘텐츠가 유행함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춤을 추고 공유할 수도 있게 되었다. 프로가 아닌 누구라도 즐길 수 있을 만큼 춤은 대중화되고 있다. 사실 달밤에 손을 맞잡고 춤을 추던 문화를 생각하면 춤은 원래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문화였으니, 우리는 잠시 멀어졌던 흥과 다시 친해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전세계 또한 오래전부터 춤에 열광해 왔다. 춤의 도시 ‘뉴욕’을 무대로 뮤지컬과 댄스를 결합한 [페임], 청춘 댄스의 교과서 같은 [플래시댄스], 발레에 도전하는 11세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빌리 엘리어트], 식상한 댄스를 거부하는 [더티 댄싱], 비보이와 발레리나의 사랑을 그린 [스텝업], 스윙댄스의 매력을 녹여낸 [라라랜드] 등 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줄곧 사랑받아 왔다. 무엇보다 뜨거운 열정과 흥겨운 에너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춤 영화의 강점일 것이다.

​2003년 개봉한 [허니] 역시 춤을 향한 댄서의 순수한 열망을 그린 영화이다. 프로 안무가를 꿈꾸며 뉴욕 브롱스 헌츠포인트의 청소년 센터에서 아이들에게 힙합을 가르치는 ‘허니 다니엘즈’(제시카 알바)가 그 주인공이다. 출중한 안무 실력에도 불구하고 매니저도, 연줄도 없는 허니는 오디션에서 매번 낙방의 고배를 마신다. 그러던 중, 허니를 눈여겨본 유명 뮤직비디오 감독의 후원을 받아 스타급 안무가로 떠오르게 된다. 이후 허니는 불우한 환경에서 꿈을 잃고 사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뮤직비디오에 자신의 학생들을 출연시키기로 한다. 그러나 감독은 허니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고,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자 허니를 해고한다. 아이들에게 마음껏 춤을 출 수 있는 연습실을 마련해 주려 했던 허니는 좌절에 빠진다. 하지만 꿈이 수포로 돌아간 상황에서도 허니는 시련을 극복하고, 아이들과 함께 자선 댄스 공연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2000년대 핫함의 아이콘이었던 제시카 알바와 함께 뜨겁고도 달콤한 춤의 세계에 빠져보자.

타오르는 열정과 자유로움

이미지: 유니버설 픽처스

[허니]는 수많은 댄스 장르 중 스트릿댄스를 소재로 한다. 스트릿댄스란 각 문화의 전통 무용이나 발레, 현대무용 등의 이른바 순수무용으로부터 유래하지 않은 다양한 대중문화 기반의 춤을 일컫는 용어이다. 힙합 문화의 융성과 더불어 젊음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문화 중 하나이며, 정해진 안무를 소화하는 스튜디오 댄서보다 즉흥적인 요소를 중요시 여긴다. 그렇기에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 탁월한 몸짓이나 훌륭한 안무가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툭툭 튀어나오는 본능적인 움직임과 타오르는 열정은 누구나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춤알못’인 우리가 춤 예능을 즐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자유로움에도 양면성은 있다. 스트릿댄스의 본거지인 미국에서조차 스트릿댄서들은 딴따라 혹은 비행청소년이라 불렸고,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허니]의 주인공 ‘허니’ 또한 그런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사람들은 허니의 겉모습만 보고 ‘클럽에서 놀기 좋아하는 바텐더’ 정도로 취급한다. 춤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발레 전공자 혹은 빈민가 아이들에게 무료로 춤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의 모습은 외면에 가려져 있다. 허니가 조금 더 안전한 길로 가길 바라는 어머니는 ‘힙합으로는 발레처럼 성공할 수 없다’며 염려하시지만, 허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금의 일을 기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모두의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대형 뮤직비디오에 출연해야만 한다.

그리고 마침내 허니에게도 자신을 증명할 기회가 찾아온다. 새로운 것을 찾던 유명 뮤직비디오 감독은 허니에게 ‘여기가 클럽이라 생각하고 춤을 추라’는 당황스러운 디렉팅을 주고, 허니는 대담하고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춤을 선보인다. 이때 감독은 허니의 즉흥적이고 본능적인 움직임에 신선함을 느낀다. 안무가는 춤이 제대로 짜여지지 않았다며 불만을 표하지만, 감독은 그 자리에서 바로 허니의 춤을 안무로 채택한다. 곧 뮤직비디오 속 허니의 모습이 전세계에 전파를 타고, 허니는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와 조금씩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오직 길거리를 무대로, 아이들과 함께 놀이처럼 즐겨왔던 날것 그대로의 춤이 세상에게 제대로 통한 것이다.

춤을 보여주고, 꿈을 이야기하다

이미지: 유니버설 픽처스

톱 댄서가 된 허니가 이제는 편히 부와 명예를 누릴 줄 알았는데, 그는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도 빈민가 아이들을 잊지 않는다. 흑심을 품은 감독의 부당한 처사와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갱의 협박, 여전한 부모님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허니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의 정식 공연을 열어주기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나쁜 일에 휘말려 교도소에 갇힌 아이에게 ‘올바르게 사는 게 좋은 거야’라고도 말해 준다. 그렇게 다시 한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잊고 있던 길 위에서의 자유로움과 기쁨을 되찾는다.

허니에게 ‘꿈을 포기한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처음부터 허니의 꿈은 톱 댄서나 셀러브리티가 아닌, 춤을 통해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골목에서 방황하던 아이들이 한데 모여 춤을 추고, 사람들이 그 아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순간에 허니는 가장 행복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었다. 이타적이고 다정한 허니를 보며, 이기적이기 않게 꿈을 꾸는 법을 배우게 된다.

[허니]는 뜨겁게 춤을 보여주고, 빛나는 꿈을 이야기하며, 행복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까지 전한다. 활기차고 스윗한 에너지로 가득 찬 작품이다. 어느 직업 세계보다 치열하며 냉혹한 댄서들의 세계에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이상적이고 따뜻한 인물 ‘허니’ 덕분이다. 또한 ‘제시카 알바’라는 당시 핫함의 아이콘을 내세우며, 배우의 매력으로 승부를 본 영화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지지 않은 승부였다. 화려한 무대에서 분주하게 춤을 추던 영화가 끝나면, 싱그럽고 풋풋한 제시카 알바의 에너지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