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초차연적 현상의 탐구를 뜻하는 ‘오컬트’는 인간의 원초적 공포를 건든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악귀], [경이로운 소문]은 대표적인 한국형 오컬트이다. 오싹하고 섬뜩한 악귀와의 전쟁은 한여름 무더위를 날리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리부트가 시급한 고전부터 현대적인 감각을 입힌 작품들까지, 다양한 오컬트 영화들과 함께 더위를 식혀보자.

[엑소시스트] 시리즈

이미지: 워너 브라더스

악령을 쫓으려는 신부의 처절한 사투를 다룬 고전 오컬트 시리즈 [엑소시스트]. 1편은 악마에 부마된 소녀와 악마를 내쫓으려는 신부들 간의 긴장과 싸움을 그렸으며, 2편은 악령의 재림을 막기 위한 여정에 중점을 두었고, 3편은 보다 자세한 심리 묘사와 서스펜스를 보여준다. 인기에 힘입어 4편과 5편도 소소하게 제작되었다. 이중에서도 놀라운 특수효과와 섬뜩한 분위기로 초자연적인 주제를 능숙하게 다룬 1편은 공포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꼽힌다.

오컬트 장르의 시초라고 불리는 [엑소시스트]는 ‘엑소시즘’이라는 소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작품이다. 360도 회전하는 머리, 빙의된 채 계단을 내려오는 소녀 등 특유의 음산하고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세세한 CG 효과 없이도 극강의 공포를 선사한다. 또한 [엑소시스트] 시리즈는 현재 진행형이다. 2023년 10월, 엑소시스트 5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리부트 시리즈 [엑소시스트: 믿는 자]가 공개될 예정이다.

[오멘] 시리즈

이미지: 20세기 스튜디오

6월 6일 새벽 6시 로마에서 태어난 ‘데미안’의 이야기를 다룬 [오멘] 시리즈는 성서의 요한묵시록 내용과 적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1편은 악마의 사주를 받고 태어난 ‘데미안’의 탄생을 그렸으며, 2편은 데미안의 악마적 재능의 분출, 3편은 성인이 된 데미안의 더욱 거대해지는 악행, 4편은 데미안의 숨겨진 딸을 내세운 ‘여자아이판 데미안’을 그린다.

[오멘] 시리즈의 주인공이자 사탄의 아들인 데미안은 언제나 해맑게 웃는 어린아이로 보인다. 하지만 모든 기묘한 사고는 언제나 그의 주변에서만 일어나며, 태어난 시간 ‘666’은 악마를 상징한다. 흉측한 괴물이 등장하거나 직접적인 살인을 보여주지 않지만 계속해서 불길한 징조를 유지하는 것이 영화의 특징이다. 특히 1편의 사운드트랙이 인상적인데, 가톨릭 전통 성가인 그레고리오 성가를 악마 숭배 내용으로 바꾸어 부르며 음산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서스페리아] (1977)

이미지: ㈜더쿱

미스터리한 무용 학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서스페리아]. 미국인 발레 수재 ‘수지’는 독일의 유명한 발레 학교로 유학을 온다. 도착 첫날 밤, 겁에 질려 학교에서 도망쳐 나오는 학생을 목격하고 이후 도망치던 학생이 끔찍하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럼에도 발레 학교에 적응하려고 애쓰지만 이상한 선생과 학생들, 밤마다 기숙사에 울려퍼지는 기이한 소리들 때문에 고통에 휩싸인다. 그 지방 전설로 내려오는 마녀 이야기와 살인 사건이 관련있으리라 추측하던 수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흑마술의 표적이 되어버린다.

‘마녀’에 관한 흥미로운 전설을 다룬 [서스페리아]는 이탈리아 공포 영화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대표작이다. 실제로 외딴 학교에서 흑마술을 가르쳤다던 구전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여기에 고전 동화에서 차용한 장면들을 더해 암흑 동화를 완성했다. 시각적으로 화려한 영상과 살을 파먹는 구더기떼, 수백년 된 좀비, 목을 매단 시체 등 수위 높은 장면으로 호러 마니아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곡성] (2016)

이미지: 20세기 폭스 코리아

의문의 사건과 기이한 소문 속 미스터리하게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곡성]. 낯선 외지인이 나타난 후, 의문의 연쇄 사건들이 발생하며 마을이 발칵 뒤집힌다. 모든 사건의 원인이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과 의심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고, 경찰 ‘종구’(곽도원)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여인 ‘무명’(천우희)을 만나며 소문을 확신하게 된다. 이내 종구의 딸은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하고, 종구는 딸을 잃을 위기와 혼돈 앞에서 다급해진다. 최후의 수단으로, 굿을 하기 위해 무속인 ‘일광’(황정민)을 마을로 불러들인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한국 토속신앙과 기독교적 모티프를 동시에 다룬다. 절대 현혹되지 말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모든 게 우연이라며 ‘혼돈’을 말하는 일광과 모든 게 업보라며 ‘질서’를 말하는 무명 사이에서 관객은 현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오컬트는 왜 다시 유행을 타지 못하고 고꾸라질까?’를 고민하던 감독의 고민에서 출발하였고, 결과적으로 한국형 오컬트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이후 감독은 태국 오컬트 영화 [랑종]을 제작하며 [곡성]의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유전] (2018)

이미지: A24

가족이기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그린 영화 [유전]. ‘애니’의 비밀이 많던 엄마는 기묘한 유언장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애니는 남은 가족들과 함께 의아함 속에서 장례식을 마쳤지만, 돌아가신 엄마의 유령이 집에 나타나는 것을 느낀다. 애니가 엄마와 닮았다며 접근한 수상한 이웃 ‘조안’을 통해 엄마의 비밀을 발견하고, 자신이 엄마와 똑같은 일을 저질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애니의 엄마로부터 시작돼 아들 ‘피터’와 딸 ’찰리’에게까지 이어진 저주의 실체가 정체를 드러낸다. 과연 가족들은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유전], [미드소마]를 통해 신선한 가족 괴담을 그려가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작품으로, 감독 자신의 어두운 유년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애스터 감독은 ‘가족’과 ‘사이비 종교’를 주로 소재로 하며, 불쾌하고 불친절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악마에게 사로잡힌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유전]에는 특히 수많은 상징이 등장한다. 서늘한 저택에서 펼쳐지는 가족들의 기이한 행동, 어린아이의 몽유병 증상, 동물들의 머리를 모으는 행위, 방안 곳곳에 그려진 알 수 없는 문양 등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는 공포를 잘 이용한다. 결말부까지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다소 모호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방심하면 길을 잃게 된다. 영화의 느릿한 속도에 적응한다면 신선하고 생생한 공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