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고전음악을 일컫는 ‘클래식 음악’은 굉장히 정교하고 학문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길다’, ‘어렵다’, ‘지루하다’라는 오해에 갇히기 쉽지만, 클래식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각종 영화와 광고, BTS나 블랙핑크를 비롯한 케이팝 속에도 클래식은 녹아 있다. 이처럼 고전의 향유를 넘어선 현대적인 재해석은 클래식의 새로운 감동과 전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 또한 새로운 감동과 전율을 선사한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클래식의 세계를 흥미롭게 보여주며, 클래식에 사로잡힌 삶은 어떤 풍경인지까지 그려낸다. 당대 음악의 혁명가였던 모차르트와 베토벤부터 전설적인 무대를 남긴 천재 피아니스트, 무대를 장악하는 현대의 지휘자들까지. 아래 5편의 영화를 통해, 파고들수록 매력적인 클래식의 세계를 만나본다.

[아마데우스] (1984)

오라이언 픽처스

천재를 시기한 평범한 궁정음악가의 질투와 광기에 찬 파멸의 서곡을 그린 [아마데우스]. 비엔나 왕실의 궁정음악가 살리에리는 새롭게 떠오르는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소문을 듣고 그의 천재성을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방탕하고 오만한 모차르트의 모습에 상처와 충격을 받은 후 그의 천재성을 시기하게 되고, 자신에게 재능을 주지 않은 신에게 분노한다. 급기야 살리에리는 자유분방한 모차르트를 파멸시킬 음모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아마데우스]는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그의 천재성을 평생 시기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로, 피터 쉐퍼가 쓴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했다. 음악 영화계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당시 미술상,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8세기 오페라 무대를 충실히 재현한 화려한 세트와 의상이 인상적이며, 그 속에서 우아하고 자유분방한 클래식 음악이 적재적소에 흐른다. 삶이 곧 음악이었기에, 누구보다 치열하고 파괴적이었던 천재 작곡가들의 내막까지 엿볼 수 있다.

[불멸의 연인] (1994)

(주)엔케이컨텐츠

베토벤이 열렬히 사랑한 여인을 찾아나서는 [불멸의 연인]. 1827년, 베토벤(게리 올드만)이 사망한다. 깊은 애도와 동시에 그의 유산에도 이목이 집중됐는데, 유언장에는 말년에 그를 돌봤던 요한이 아닌 ‘영원한 연인’에게 모든 것을 남긴다고 쓰여있었다. 베토벤의 비서 쉰들러(제로엔 크래브)는 베토벤이 생전에 사귄 적이 있던 여인들을 하나씩 찾아가지만 모두 아니라고 한다. 베토벤이 열렬히 사랑한 불멸의 연인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

[불멸의 연인]은 전설적인 작곡가 베토벤의 실패한 연애담을 그린 흥미로운 작품이다. ‘음악 바보’였던 베토벤은 사랑을 할 때에도 바보였던 모양이다. 순애보였던 그는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숨겨야만 했던 여인에게 절절하고 낭만적인 편지를 남겼다. 애절한 러브레터 위로 슬픔이 짙은 클래식 음악이 깔리는 장면은 심금을 울린다.

[샤인] (1996)

로닌 필름즈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감동적인 실화를 그린 [샤인]. 1969년,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은 미치지 않고서야 칠 수 없다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전설적인 무대를 남긴다. 그 후, 온전치 않은 정신으로 10년 동안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온 그는 빗속을 헤매다 우연히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운명적으로 피아노 연주를 다시 하게 된다. 그가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순간, 레스토랑의 손님들은 단숨에 그의 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의 인생이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샤인]은 엄격한 음악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정작 행복하지 않았던 피아니스트의 실화를 담아낸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데이빗 헬프갓은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와 불안증 때문에 연주를 멈출 수밖에 없었고,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피아노 앞에 앉기까지 외롭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데이빗 헬프갓의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한 배우 제프리 러쉬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글로브 등 다수의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타르] (2022)

이미지: 포커스 피처스

무대를 장악하는 마에스트로이자 욕망을 불태우는 괴물이었던 지휘자의 이야기를 그린 [타르].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여성 최초 수석 지휘자로 선출된 저명한 지휘자이자 작곡가이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클래식 업계와 더불어 혼란스러운 사생활과 창작의 고통 등으로 그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타르]는 정점에 올랐지만 내면은 더욱 복잡해져가는 클래식 지휘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 리디아 타르는 재능 있는 지휘자인 동시에 자기파괴적인 인물로, 매우 복잡한 내면 세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복잡한 내면의 그것을 표출할 수 있는 방식은 음악뿐이다. 주연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은 지휘자로서, 여자로서, 연인으로서 혼란을 겪는 타르의 심리를 다채롭게 연기했고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다수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마에스트로] (2022)

아폴로 필름

꿈의 무대를 두고 마주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마에스트로]. 차세대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지휘자 ‘드니 뒤마르’는 같은 지휘자이자 음악계의 거장인 아버지 ‘프랑수아 뒤마르’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아버지 프랑수아는 정상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아들에게 묘한 경쟁심을 품게 된다. 어느 날, 아들 드니는 자신에게 왔어야 할 지휘자 자리 제안이 아버지에게 잘못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인생 최대의 고민에 빠진다.

프랑스 영화 [마에스트로]는 클래식 음악과 가족 드라마를 절묘하게 엮은 작품이다. 아버지와 아들, 선배와 후배, 그리고 라이벌 관계로까지 이어지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아버지는 정상에서 밀려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아들은 아버지라는 큰 산을 넘고 싶지만 동시에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팽팽한 대결과 함께 애틋한 가족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클래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감상한다면 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