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카모메 식당]으로 이름을 알린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10편의 장편 영화를 연출한 베테랑 감독이며 국제 영화제의 단골손님이다. 그의 작품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도심과 떨어진 한적한 배경과 주류에서 벗어난 인물들이 작품을 채운다는 것. 은둔형 외톨이, 낙오된 여행자, 트랜스젠더 등 덜 보편적인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힐링 무비를 만들어가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그의 시선은 대체로 일본 사회를 향해 있지만 그곳에 국한되지 않으며, 그렇기에 해외에서도 열렬히 환영받는다. 그의 최신작 [강변의 무코리타]의 국내 개봉을 맞아 오늘은 그의 작품 다섯 편을 소개해 본다.

카모메 식당(2006) – 핀란드에서 성공한 식당의 비결? 긍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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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세 번째 장편작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 헬싱키에서 조그만 일식당을 운영하는 사치에와 손님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도시 곳곳에 갈매기가 있는 헬싱키. 사치에는 그곳에 일본어로 갈매기를 뜻하는 ‘카모메’ 식당을 열지만, 한 달간 파리만 날려 마을 주민들의 우려를 산다. 그러던 중 대뜸 만화영화 주제가를 묻는 첫 손님 토미를 필두로, 눈 감고 지도를 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왔다는 일본인 관광객 미도리와 항공사의 실수로 짐을 잃은 마사코가 들이닥치며 어느덧 카모메 식당은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카모메 식당]은 조용한 힐링,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물질적인 성공보다 인간 관계와 내면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치에와 그에게 물드는 주변 인물들이 영화를 이끌어 간다. 이들의 관계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히 따스한 온기를 유지하며 보는 이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를 자아낸다. 사치에가 선보이는 음식 또한 커피와 시나몬롤, 주먹밥 같이 화려하지 않은 음식들이다. 사치에의 온화하면서 강단 있는 성격과 그가 빚어내는 소박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은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다면 이국적인 북유럽 풍경과 위로의 메시지가 가득한 [카모메 식당]으로 시작해 보자. 참고로 본 작품에 등장한 모타이 마사코와 고바야시 사토미는 후술할 영화 [안경]에 출연하며 감독과 연을 이어갔다.

안경(2007) – 나긋나긋 피어나는 섬마을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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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을 성공적으로 선보인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이후 1년 만에 [안경]으로 돌아온다. 베를린, 선댄스 등 유수의 영화제에 출품된 [안경]은 복잡한 도심을 떠나 남쪽 바닷가로 떠난 타에코가 그곳에서 만난 독특한 사람들과 보내는 일상을 그린다. 휴식을 위해 일부러 와이파이도 잘 터지지 않는 한적한 섬으로 여행을 온 타에코. 그러나 섬사람들은 쉬고 싶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처음엔 단호하게 거부하던 타에코도 그들의 호의에 마음을 열어간다. 그렇게 사람들과 빙수를 먹고 요상한 아침체조를 추며 특별한 라이프스타일에 동화된다.

앞선 [카모메 식당]과 마찬가지로 [안경] 역시 평화로운 일상과 공동체를 강조한다. 전작이 여성들의 우정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이번 작품은 남성들까지 포함한 것이 다르다. 등장인물 모두가 안경을 쓰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뚜렷한 개성과 주관은 여전하며, 이는 느린 호흡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작용한다. 나아가 [안경]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만프레드 살츠게버상을,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카모메 식당]에서 따스하고 인자한 식당 주인을 연기한 코바야시 사토미가 주인공 타에코로 등장해 반가움을 자아낸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 외로움에는 고양이가 특효약

이미지: (주)영화사 조제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이성운은 모자라도 고양이운은 넘치는 사요코가 고양이 대여 사업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어릴 때부터 고양이에게 둘러싸여 자란 사요코. 연애는 못해도 고양이 사이에서 늘 인기만점이라 덕분에 하루하루를 힘차게 살아간다. 고양이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단기로 빌려주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사요코는 오늘도 리어카에 고양이들을 싣고 돌아다니며 외친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본 글에 소개되는 다른 작품들과 차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일단 동물이 여럿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의 사연도 자세하게 묘사된다. 앞선 [안경]이 의도적으로 빈칸을 남겨두며 넘어갔다면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등장인물들의 전후 사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고양이를 학대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겠다는 명목으로 사요코가 집사 면접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는 고양이를 빌려 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지면서 공감과 감동을 자아낸다. 출가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할머니, 오랜 기러기 생활이 끝나 기대 반 걱정 반인 아버지 등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연들이 포진됐다. 특히 주인공의 밝고 씩씩한 태도와 고양이를 안아 든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2017) – 중요한 건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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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가미 나오코는 늘 소수자들에 시선을 맞춰왔는데,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그런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엄마가 그리운 12살 토모가 외삼촌 마키오, 그의 연인 린코와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언뜻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사실 린코는 남자에서 여자가 된 트랜스젠더다. 영화는 마키오와 린코가 토모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며 진정한 가족이 되는 과정을 조근조근 담아낸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토모의 성장 스토리를 그리며, 다른 작품 대비 뚜렷한 스토리라인을 지닌다. 여기에 연대와 공동체에 대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철학이 본 작품을 든든히 받혀준다. 토모의 삼촌 마키오는 사랑에 대해 알려주고, 린코는 엄마와의 이별에 슬퍼하는 토모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비록 이들은 보편적인 가족과 형태는 다를지 언정 누구보다 끈끈한 연을 보여주며 가족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강변의 무코리타 – 그럼에도 살아가는 그대에게 박수를

이미지: (주)디스테이션

올해 8월 국내 개봉한 [강변의 무코리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작은 어촌 마을 공장에 취직한 야마다가 낡고 오래된 연립주택에서 이웃들과 교류하며 마음의 벽을 허무는 이야기다. 대뜸 욕실을 쓸 수 있냐고 물어보는 옆집 남자 시마다부터 어린 아들과 방문판매를 하는 건너편 이웃 미조구치, 남편을 잃고 딸과 함께 사는 집주인 미나미까지. 이들은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던 야마다에게 점차 희망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어수선한 이웃들에게 겨우 적응해 가던 찰나, 야마다에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혼란이 찾아온다.

앞선 작품들도 소외계층과 소수자들에 초점을 뒀지만 [강변의 무코리타]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명백하다. 주인공 야마다는 전과자이고 시마다는 이혼과 사기를 겪고 몇 년째 경제활동을 거부하는 백수인 데다, 미조구치는 어린 아들을 방문판매에 동행시켜 마을에서 공공연한 비난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극복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 야마다와 이웃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서 연대를 쌓아간다. 평범과 주류에서 한참 비껴간 이들은 점차 유사 가족이 되고 끝내 자신을 옥죄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