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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삼각형]은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호화 크루즈에 탑승한 이들의 예측 불가 계급 전복 코미디로, 2022년 제75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화제작이다. 공개 당시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며 평단의 논쟁을 불러왔지만, 인간의 본성을 풍자한 밀도 높은 전개 덕분에, [더 스퀘어]에 이어  외스틀룬드 감독에게 두 번째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줬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스스로 함정에 빠진 주인공의 초상을 통해 시스템의 부조리와 위선을 파헤쳐 왔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더 스퀘어]에 이은 외스틀룬드의 일명 ‘남성 부조리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영화의 제목인 ‘슬픔의 삼각형’은 인상을 쓸 때 생기는 미간 사이의 주름을 말한다. 작품에서는 이야기의 주제와 맞물려 사회와 인간의 불균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영화는 이 같은 메시지를 어떻게 전할까? 젠더, 부, 정치, 계급, 인종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예리하게 꼬집는 영화의 만찬을 하나하나 즐겨보자.

3부로 나뉘어진 풍자의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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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3부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왜 3부로 나누어 구성했을까?’ 하는 의문점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각각의 주제들이 꼭짓점으로 연결되어 삼각형을 이룬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1부는 모델 커플인 ‘칼'(해리스 딕킨슨)과 ‘야야'(샬비 딘)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성 역할에 따른 권력구도를 지양하며 평등을 외치는 ‘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2부는 협찬으로 호화 크루즈에 승선하여 된 모델 커플의 눈을 통해 부와 권력을 가진 승객들과 계급의 맨 아래에 있는 승무원들을 조명한다. 마지막, 3부는 산산조각 난 크루즈를 버리고 외딴섬에 살아남은 8명의 생존자들의 새로운 상황 속에 재편되는 지배 구조를 이야기한다. 이처럼 영화는 3편의 시퀀스로 나누어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물 간의 갈등과 치부는 웃음과 함께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욕망의 대환장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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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압권은 2부 후반부 크루즈에서 열리는 ‘선장 주최 만찬’, 일명 대환장 파티에 있다. 만찬이 시작됨과 동시에 요트는 풍랑을 만나게 되고, 요동치는 요트에서 승객들은 하나 둘 뱃멀미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만찬은 계속되고, 만취한 선장과 늘어나는 승객들의 구토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만다.

영화 감상 후 많은 이들이 불쾌함을 피력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구토와 토사물, 화장실에서 역류하는 오물들, 그 속에 뒹구는 승객들의 적나라한 묘사는 관객들의 비위를 시험케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는 현재의 계급 피라미드가 붕괴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이후 펼쳐질 계급의 역전을 암시하는 장면으로도 다가와 관객들의 뇌리에 깊게 자리 잡는다.

모래성같은 계급과 권력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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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 인플루언서로 협찬받아 크루즈에 오른 칼과 야야, 이들과 함께 승선한 승객들은 각자 저마다의 부와 권력을 뽐낸다. 이 배에는 철저한 계급의 피라미드가 존재한다. 승객과 승무원들이 층별로 자리하고 있고 각자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움직인다. 심지어 승무원들조차 이 피라미드의 여러 계층을 형성하고, 맨 아래 계급에는 바닥을 닦고 엔진룸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자리한다. [설국열차]의 꼬리 칸을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승객들은 민원을 넣어 본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직원을 해고시키고 승무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등 스스럼없이 갑질을 해 댄다.

3부에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계급과 권력이 전복된 배와 함께 완전히 달라짐을 보여준다.  부와 권력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제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오로지 생존 경쟁이다. 이에 식량을 조달할 능력이 있는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드 레온)이 계급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선다. 하지만 이들 역시 허상에 가득 찬 이전 지배자들처럼 자신의 욕구에만 충족한다. 칼과 야야의 방을 지켜보던 청소부 애비게일이 권력을 쥐게 된 후, 칼에게 성적인 서비스를 요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상황의 역전을 통해 욕망의 민낯을 드러낸 의도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모순되고 쓸모없는 남성과 피라미드의 중심에 선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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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부조리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답게 모순된 남성의 허상은 주인공 ‘칼’을 통해 더욱 부각된다. 칼은 1부에서 톱모델이자 인플루언서인 연인 ‘야야’를 동경하면서 돈 때문에 실랑이하는 것을 성 역할에 얽매이지 않는 평등으로 포장한다. 이후 2부에서 야야의 협찬으로 크루즈에 함께 승선하게 된 칼은 승객들의 무용담을 듣고 재빠르게 권력의 속성에 편승하려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다. 급기야 3부에서는 성 역할의 파괴와 성 평등을 외치던 그가 권력자의 성 노리개로 전락하여 제 발로 걸어가는 모습은 부조리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는 모순된 남성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강한 여성의 모습을 그린다. 2부에서는 승무원 팀장 ‘폴라'(비키 베를린)가 선장을 대신해 요트를 통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섬에서 생존해야 하는 3부에서는 청소부 ‘애비게일’이 남자들도 못하는 사냥을 하여 생존자를 먹여(?) 살린다. 이는 배가 전복되는 순간에도 술에 취해 있던 선장과 러시아 승객과 대비하여 상황의 아이러니를 증폭시킨다.

역전된 계급 속에서도 우리 얼굴에 선명하게 남는 슬픔의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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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에서 가장 밑바닥 계급이었던 ‘애비게일’이 섬에서 최고 권력자의 위치에 오르고, 돈과 권력을 자랑하던 이들이 그의 지시에 따르는 모습은 묘한 쾌감을 전한다. 특히, 성 평등을 부르짖던 칼이 애비게일의 침실 파트너로 순응하는 모습은 아이러니의 극단을 보여주며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전체적으로 [슬픔의 삼각형]은 노골적이고 불편한 유머에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 웃게 만드는 사회 풍자극이다. 특히, 섬에서 최고 권력을 가진 애비게일에게 현재 상황이 바뀐 것을 알아챈 야야가 건넨 마지막 제안이 인상 깊다. 또 다른 계급 역전에 짜릿하지만, 바꿔 말하면 인간이란 결국 욕망과 권력에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말한다.  이 영화의 제목처럼, 각자 얼굴에 슬픔 가득한 삼각형이 선명하게 남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