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돌아왔다. 황금 같은 연휴를 맞이해 맛있게 먹고, 풍성하게 즐기고, 여유롭게 늘어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인이라면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반갑지만 서먹한 친척들의 과도한 관심을 버텨야 하고, 감사하지만 피곤한 잔소리도 삼켜야 하며, 그보다 더한 밑바닥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독하고 끈끈하게 연결된 가족이기 때문이다. 우습고도 애달픈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현실성 잔뜩 녹인 K 가족 영화를 전한다.

[가족의 탄생] (2006)

롯데엔터테인먼트

세 가지 사랑, 그리고 제대로 얽혀 버린 여덟 가지 스캔들을 그린 영화 [가족의 탄생].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형철’(엄태웅)은 20살 연상의 연인 ‘무신’(고두심)을 누나 ‘미라’(문소리)에게 소개한다. ‘선경’(공효진)은 로맨티스트 엄마 ‘매자’(김혜옥) 때문에 피곤하고, 남자친구 ‘준호’(류승범)와의 애정전선에 낀 먹구름도 맑게 개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경석’(봉태규)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연인 ‘채현’(정유미) 때문에 속이 썩는다. 사랑에, 스캔들에, 바람 잘 날 없는 이들에게 과연 찬란한 행복이 탄생할 수 있을까?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은 ‘가족’이라고 보기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야릇한 관계를 포착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오직 사랑만으로 연결되고, 조화롭지 않은 이들은 서로가 달라서 더욱 애틋하다. 일반적인 가족의 탄생 과정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단단한 벽을 허물기 때문에 묘한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는 따뜻하고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매니아 관객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해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시나리오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좋지 아니한가] (2007)

시네마 서비스

한 집에 모여 살지만 공통점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심 씨네 가족 이야기를 그린 영화 [좋지 아니한가]. 허리띠 졸라 맨 억척스러운 엄마(문희경)와 그로 인해 고개를 숙여버린 아빠(천호진), 전생에 왕이었다고 믿는 아들 용태(유아인),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한 딸 용선(황보라),  무협작가랍시고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이모(김혜수)까지. 무관심하고도 무책임한 이들에게 어느 날 일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온다. 과연 심 씨네 가족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말아톤]을 연출한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는 새롭고 독특한 방식으로 이 시대의 가족상을 반영한다. 이들은 그저 핏줄이라는 이유로 한집에 모여 살지만,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함께 사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고를 치는, 개성 강한 가족 구성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집을 나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공동의 위기 앞에서는 똘똘 뭉치며, 어쩔 수 없이 끈끈한 식구임을 인증한다. 서로의 부족함을 가장 잘 알기에 ‘쪽팔려도 가족이다’라고 외치는 모습은 우습고 짠하게 다가온다.

[고령화 가족] (2013)

CJ 엔터테인먼트

평균 연령 47세, 극단적 프로필, 나이값 못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고령화 가족]. 자식 농사 대실패한 ‘엄마’(윤여정), 빈대 붙어 사는 철없는 백수 첫째 ‘한모’(윤제문), 인생까지 포기한 흥행참패 영화감독 둘째 ‘인모’(박해일), 결혼만 세 번째인 뻔뻔한 로맨티스트 셋째 ‘미연’(공효진), 미연을 쏙 빼닮아 되바라진 성격을 가진 개념 상실 여중생 ‘민경’(진지희)까지. 모이기만 하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들의 속사정이 공개된다.

베스트셀러 작가 천명관의 동명 소설을 재해석한 영화 [고령화 가족]은 누구나 하나쯤 있을 법한 가족의 말 못할 속사정을 풀어낸다. 다 큰 삼남매는 결국 엄마 품으로 돌아와서 자신을 충전하는 시간을 갖고, 엄마는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식구들에게 끊임없이 음식을 해 먹인다. 솔직함, 발칙함, 유쾌함 속에서 피어나는 소박한 일상과 연대는 진정한 식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막장으로 보여도 따뜻하고, 멀어지고 싶어도 이해되는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미나리] (2020)

A24, 판씨네마

하루하루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원더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미나리]. 어느 한국 가족이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다.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 할머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고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씨를 담은 할머니가 도착한다.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여느 그랜마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하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 있는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이민자 가족의 뭉클한 이야기를 그린다. 가장 낮고 작은 곳에서 삶을 일구는 이 가족은 마치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를 닮아서 응원할 수밖에 없어진다. 진심 어린 연기를 보여준 윤여정, 한예리, 스티븐 연은 아주 담백한 방식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와 여우조연상 수상을 비롯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관객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남매의 여름밤](2020)

그린나래미디어

여름 방학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남매의 여름밤]. 옥주와 동주 남매는 여름방학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가 사는 오래된 2층 양옥집에서 지내게 된다. 한동안 못 만났던 고모까지 집으로 들어오면서 가족은 각자의 사정을 숨긴 채 함께 여름을 보낸다.

윤단비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남매의 여름밤]은 우리 모두에게 있던 그리운 계절의 기억을 생생하게 옮겨놓는다. 아빠는 편한 친구처럼, 할아버지는 남매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고모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며. 어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어린 남매와 교감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다. 여름 햇볕 아래 오래된 양옥집에서 다양한 음식을 나눠 먹거나, 오래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장면들이 유년과 가족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