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atta, 유로픽쳐스

2017년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데스티네이션 웨딩]은 키아누 리브스와 위노나 라이더의 케미스트리가 빛을 발한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큐라](1993), [스캐너 다클리](2006), [피파 리의 로맨스](2011)에 이은 두 배우의 네 번째 호흡이었기 때문이다. 30년 넘는 연기 경력과 30년 넘게 이어온 우정을 바탕으로, 두 배우는 자연스럽고 유쾌한 케미스트리를 선사한다.

두 배우 모두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 소극적인 남자 주인공은 키아누 리브스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인데, 그래서인지 친숙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거침없고 위협적인 존 윅이 아닌, 사랑의 쓴맛을 맛본 평범한 사내 한 명을 목격하게 된다. 위노나 라이더 또한 성숙하고 친근한 매력을 선보인다. 아름다운 리즈 시절을 뒤로하고 중년을 맞이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신비주의를 걷어낸 배우로서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데스티네이션 웨딩] 촬영 당시, 키아누 리브스는 [존 윅] 시리즈도 함께 촬영하고 있었기에 존 윅의 외모를 그대로 유지했어야 했다. 장발과 수염 때문에 존 윅이 자꾸만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두고 ‘존 윅의 은퇴 생활 이야기’, ‘존 윅 프리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시리즈에서 죽을 고생은 다 하는 그를 보면 진짜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존 윅 프리퀄’로 남겨두기에는 꽤 아까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데스티네이션 웨딩]은 무엇보다 웃음을 보장한다. ‘주둥아리 로맨스’라는 장르 키워드가 따라올 만큼 폭소 만발의 위트와 풍자를 선보인다.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는 없었던 매운맛의 고농축 유머를 만끽할 수 있다. 키아누 리브스와 위노나 라이더는 아삭아삭하고, 가끔은 쌉싸름하며, 방대하기까지 한 대사량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두 베테랑 배우의 안정적인 연기와 현대인들의 공감을 100% 끌어낼 수 있는 결혼, 연애와 사랑에 대한 재치 있는 대사들이 영화 전반을 이끌어간다. 그러니까 [데스티네이션 웨딩]은 ‘세상에 아름다운 사랑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생활 밀착형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준다.

서로에게 끌리는 최악의 남녀

Regatta, 유로픽쳐스

영화의 제목인 ‘데스티네이션 웨딩’은 특별한 웨딩 방식이다. 하객들이 휴가 겸 참석할 수 있도록 특별한 장소를 빌려 며칠간 진행하는 결혼식을 지칭한다. 배우 원빈과 이나영 커플, 이영애, 조지 클루니가 선택해 화제가 된 방식이기도 하다. 고착화된 결혼식장을 떠나 가장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비공식적으로 식을 거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썸’이 시작되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화려하고 특별한 결혼식에 ‘프랭크’(키아누 리브스)와 ‘린제이’(위노나 라이더)가 초대받는다. 서로를 초면이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은 사실 오래전부터 악연으로 얽힌 사이였고, 이 끈질긴 인연은 결혼식 내내 이어진다. 공항부터 시작해서 비행기도 옆자리, 숙소까지 옆방이다. 서로를 못마땅해하던 두 사람은 앙숙이 되는 듯하더니, 티격태격하다가 어느새 미운 정이 들어버린다. 짚신도 짝이 있다고,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썸’과 ‘쌈’의 관계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사랑을 이야기하기에 두 인물은 너무나도 ‘최악’들이다. 프랭크는 ‘사랑은 재앙이며 스스로를 고통으로 물들이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염세적인 겁쟁이다. ‘만남이 끝나면 어차피 원점으로 돌아오잖아요’라는 대사가 그의 염세적인 자세를 가장 잘 보여준다. 사랑에 속지 않겠노라 다짐이라도 한 사람처럼, 프랭크는 린제이와의 만남을 지속하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자칭 나르시시스트로서 연애와 사랑, 결혼과 같은 우리에 속박되지 않으려는 마음까지 보인다.

린제이는 다소 낙관적이고 개방적으로 보이지만, 프랭크와 다른 결로 최악일 뿐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전 약혼자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것부터 심상치 않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는 소심한 복수보다는 여전히 어딘가에 ‘사랑의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는 쪽에 가깝다. 어쩌면 운명일지 모를 프랭크에게 ‘우리가 사랑에 빠지면 어떨까요?’, ‘기적을 무시하는 건 직무유기’라는 로맨틱한 말들을 건네기도 한다. 술만 마시면 우울하고 무기력한 대화를 시작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커플

Regatta, 유로픽쳐스

주인공들이 감정을 숨겨서 답답함을 유발하는 로맨스 영화들과 달리, 이들은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며 서로의 생각과 순간의 감정들을 정확히 확인하려 한다. 마치 낭만적인 사랑의 실체를 파고들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프랭크와 함께 로맨틱한 미래를 나누고 싶어 하는 린제이의 화법이 그렇다. 그러나 이 만남을 ‘기적’이라고 여기는 여자와 ‘대재앙’이라고 여기는 남자의 간극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특히 호텔 방안부터 비행기 안에서의 대화는 전형적인 T와 F의 충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다면 ‘세상에 쿨한 연애는 없고 아름다운 사랑은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은 과연 어떤 모양의 사랑을 원하는 것일까? 확실히, 단순한 호기심과 설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들에게는 짧은 스파크보다 동질감이 더욱 중요했고, 동질감은 곧 애틋한 연민으로까지 이어졌다. 정반대의 사람에게서 자신을 보게 되는, 그래서 품고 싶어지는 마음만큼 깊은 사랑도 없을 텐데 말이다. 줄곧 린제이와의 운명을 부정하던 프랭크가 다시 린제이를 찾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연출을 맡은 빅터 레빈 감독은 이들의 사랑을 “어딘가에는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초반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데스티네이션 웨딩’과 극도로 모난 성격을 가진 주인공들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영화가 끝나면 히스테릭하고 염세적인 ‘최악’의 주인공들에게로 마음이 기운다.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서 설렘보다 더 큰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분명한 것은, 이 언밸런스한 로맨스가 사실은 가장 평범하고 보편적인 연애의 초상이다. [데스티네이션 웨딩]은 그 낭만적인 사랑의 실체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