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악] 제작발표회에서 기존의 언더커버물과 다를 거라고 자신했던 지창욱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지난 9월 27일 첫 공개된 디즈니 플러스의 새 시리즈 [최악의 악]은 익숙한 누아르에 삼각 멜로를 접목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정체를 숨겨야 하는, 그리고 정체를 의심하는 긴장된 관계에 엇갈린 사랑의 감정이 더해지니 더욱 흥미진진한 몰입감이 발생한다.

[최악의 악]은 1990년대를 배경으로 경찰 박준모(지창욱)가 마약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잠입 수사를 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시놉시스만 놓고 보면 새로운 게 없다. 한국 작품에서 범죄조직은 너무 흔한 소재인 데다, 영화 무간도와 신세계처럼 잘 만든 언더커버물이 있기에 구미를 당길 만한 매력이 부족해 보인다. 한껏 허세만 부리는 그저 그런 범죄드라마가 아닐지 염려가 먼저 든다.

이미지: 디즈니 플러스

주인공 준모가 강남 일대를 아우르는 정기철(위하준)의 조직에 잠입하고, 기철이 자신의 세력을 키워 조직을 장악하는 과정이 그려지는 1화만 해도 기시감이 넘치고, 조폭 소재 범죄물 특유의 (이제는 오글거리는) 허세도 느껴진다. 하지만 실망은 이르다. 2회 후반부에 드라마는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기철의 조직이 습격을 받은 혼돈의 상황에서, 준모가 기철과 함께 나타난 아내 유의정(임세미)을 발견한 것이다. 의정이 기철의 첫사랑이라는 사실은 준모를 큰 충격에 빠뜨린다.

기존의 언버커버물은 범죄조직에 잠입한 주인공이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면서 위태위태한 긴장감을 형성했다. 잠입 과정이 길어질수록 주인공은 경찰 소속임에도 조직 사람들과 가까워지면서 내면의 갈등을 겪고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많았다. 그런데 [최악의 악]의 준모는 상황이 다르다. 기철은 그의 타깃이면서도 사랑의 연적인 것이다. 물론 5회까지 준모와 의정의 사랑은 굳건하고, 같은 경찰인 의정은 남편을 악몽 같은 상황에서 빼내기 위해 자신도 사건에 뛰어든다. 하지만 향후 전개에서 세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힘들다.

어쨌든 시청자의 입장에서 준모의 난처한 사정이 드러나자 아슬아슬한 재미가 상승한다. 준모의 정체도, 의정과의 관계도 아직은 알 리가 없고, 그저 두 사람을 단순한 지인으로 아는 기철이 속사정도 모른 채 준모에게 의정과 잘 되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고, 모친상을 치른 의정을 위로하는 등 준모를 답답하게 하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한다. 준모로서는 경찰이라는 신분뿐 아니라 의정을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고 기철의 감정까지 모른 척 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셈이다.

이미지: 디즈니 플러스

준모의 당혹스러운 감정은 지창욱의 노련한 연기를 만나 생생하게 드러난다. 지창욱의 눈빛이 애잔해질수록 덫에 걸린 것 마냥 준모의 요동치는 마음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마약중독자 아버지 때문에 진급하지 못해 지방을 전전하고, 경찰 집안인 아내의 가족들에게 멸시를 당했던 준모가 ‘잠입수사’라는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데는 캐릭터에 연민을 불어넣는 지창욱의 공이 크다.

그에 반해 조직의 리더로 분한 위하준의 카리스마는 다소 부족하다. 이런 장르에서 흔히 보이는 거친 모습을 덜어내려고 했기 때문일까, 조직의 간부를 밀어내고 치고 올라가는 패기나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약해 보인다. 그래서 기철의 조직 장악 스토리는 잔혹한 폭력이 더해져도 심심한 감이 있다. 그보다는 오랫동안 의정에 대한 마음을 간직한 순정남의 면모가 더 잘 보인다. 후에 기철이 진실을 어떤 식으로 알게 될지, 사랑과 신의 둘 중에서 무엇에 대한 배신감이 더 클지 궁금하다.

[최악의 악]의 시도는 현재까지 성공적이다. 잠입수사 과정은 뻔하다 해도 계속해서 새로운 사건과 음모가 이어지며 긴박하게 흘러가고, 여기에 진심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는 세 인물의 감정이 얽히면서 미묘한 긴장감이 발생한다. 과연 세 사람은 어떤 운명을 마주할까?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