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에는 작년 새로운 프로그램이 신설되었다.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가 그 주인공이다. 이 섹션은 극장 개봉이나 OTT 공개 예정인 작품 중 많은 대중들이 주목하는 기대작을 특별히 소개하는 부문이다. 작년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와 오는 11월 개봉을 앞둔 [소년들]이 부산에서 먼저 선을 보이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올해는 3편의 한국영화 기대작이 관객과 만났다. [콜] 이충현 감독과 전종서가 다시 호흡을 맞춘 액션영화 [발레리나], 많은 분들이 기대하는 속편 [독전 2], 색다른 느와르 [화란]이 부산에서 상영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예매 시작부터 전회차 매진과 현장에서 표구하기 정말 어려웠던 이 작품, 그 만큼 극장에서 열기도 뜨거웠다. 과연 이 작품의 어떤 점들이 ‘스페셜 프리미어’로 소개될 만큼 이목을 끌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독전 2 – 마지막 총성의 비밀이 드디어 밝혀진다

이미지: 넷플릭스

1편 마지막 산장에서 벌어진 총소리의 진실이 [독전 2]에서 밝혀진다. 2018년 개봉된 전작에 이어 5년 만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된 속편은 ‘미드퀄’ (전작에서 다루지 않은 중간 시간대의 이야기를 다룬 구성) 이라는 특이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용산역에서 벌어지는 혈투 이후, 여전히 이선생 조직을 쫓는 원호(조진웅)와 락(오승훈), 그리고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난 브라이언(차승원), 여기에 새로운 인물 큰칼(한효주)까지 합세해 [독전] 유니버스는 더욱 확장한다.

전편과 전체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여러가지가 바뀌었다. 우선 [뷰티 인사이드]의 백종열 감독이 새롭게 메가폰을 잡았고, 락 역의 류준열 대신 오승훈 배우가 합류했다. [무빙]에서 인생 연기를 펼친 한효주가 파격적인 변신을 예고하며 이번 작품 메인 빌런 큰칼 역을 맡았다. 태국과 노르웨이 로케이션을 진행하며 더 큰 무대를 보여준 점도 눈에 띈다.

1편이 “과연 누가 이선생인가?”를 주로 다뤘다면 이번 편은 “우리는 왜 이선생을 쫓는가?”로 분위기를 바꾼다. 저 마다 이선생과 남다른 인연을 가진 인물들이 여러가지 사건으로 얽히면서 서로를 쫓고 쫓기는 관계로 역전된다.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혈투와 액션들은 [독전 2]의 다양한 재미를 자아낸다.

일단 액션이 전작보다 많아졌다. 갈등과 대립을 반복하던 인물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상대에게 칼과 총을 들이댄다. 입식 타격부터, 총격전 등 액션의 비중을 높이며 보는 이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한다. 특히 중반부 태국 밀림에서 펼쳐지는 카체이싱은 [독전 2]의 하이라이트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 속에 많은 것이 터지고, 뒤집히는 연출이 재미를 배가한다. 이이제이 전법부터,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되는 복잡한 관계 요소들은 드라마에 힘을 보태기도 한다.

조진웅, 차승원 등 주역들의 안정적인 연기 속에 새로 합류한 배우의 존재감도 돋보인다. 락 역을 맡은 오승훈은 류준열의 잔상이 강했기에 초반에는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차차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하며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든다. 특히 후반부 중요한 대목에서 드러낸 묵직한 연기는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압축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효주의 파격 변신은 그 자체로 [독전 2]의 놀라운 반전이다. [무빙]에 이어 자신의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낸 모습으로 극 전체를 지배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다만 [독전 2]도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못하다. 미드퀄이라는 독특한 구성이 처음에는 흥미롭지만, 이미 전편에서 대부분 밝혀진 이야기를 억지로 풀어낸 듯한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작품의 핵심 카드로 내놓은 이선생의 정체도 1-2편 동안 공들인 빌드업에 비하면 약하다. [독전 1]의 치열하고 끝까지 갔던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호불호가 나눠질 마지막도 그렇다. 그럼에도 속편의 의도는 곱씹을만하다. 전편과 비슷하게 출발하면서도 숨은 이야기를 통해 색다른 감성과 생각할 거리를 건네겠다는 영화의 의도와 큰 그림은 돋보인다. 이 부분이 시청자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화란 –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택한 또다른 지옥

이미지: 플러스엠

[화란]은 이미 지난 제76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공식 초청되어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다. 김창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배우 송중기의 새로운 도전, 여기에 신예 홍사 빈의 혼신의 연기로 관객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표 구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가정 폭력과 가난으로 피폐해진 삶을 살고 있는 고등학생 ‘연규’(홍사빈)가 조직폭력배의 중간 보스인 ‘치건'(송중기)을 만나 예상치 못한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김창훈 감독은 GV에서 웅덩이에 떨어진 피 묻은 돌멩이로 흙탕물이 변하는 오프닝은 영화의 전체 스토리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이미지라고 밝혔다. 이는 치건이 들어와 흙탕물처럼 변해가는 연규의 삶의 모습을 암시한다.

끊임없이 내적 딜레마를 겪는 연규 역을 맡은 홍사빈 배우는 신예답지 않은 훌륭한 연기를 내비쳤고, 김형서(바비)는 연규의 이복동생 하얀 역을 맡아서 넘치는 끼와 재능을 보여준다. 여기에 배우 송중기는 시나리오를 보고 노 개런티로 출연을 결정할 만큼 이 영화를 통해 연기 변신을 선보이며, 대체불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히, 영화 속 치건을 연기하기 위해 왼쪽 뺨에 있는 실제 흉터를 돋보이게 하고, 피부의 잡티를 부각시키는 분장으로 기존의 꽃미남 외모를 버리고 거친 남자로 변신했다고 GV에서 소감을 밝혔다.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현실에 희망이 무참히 짓밟힌 청춘의 모습과,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세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불편함과 불쾌감을 준다.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는 감정이다. 감독은 연규와 치건을 통해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처절하게 그려내며 영화적 경험을 극대화시킨다.

전체적으로 [화란]은 다크한 매력이 가득한 작품이다. 한국형 누아르의 신선한 충격도 함께 전달할 예정이다. 영화의 소재나 서사 방식이 호불호를 나누겠지만, 신인 감독 답지 않은 뚝심 넘치는연출력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분명 이전 한국영화에서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충격을 건넬 것이다.

발레리나 – 통쾌하면서 몽환적인 복수극

이미지: 넷플릭스

독보적인 실력을 지닌 경호원 출신의 ‘옥주‘(전종서)는 촉망받는 발레리나였던 ‘민희‘(박유림)를 죽음으로 몰고 간 ‘최프로‘(김지훈)라는 악당의 존재를 찾아 나선다. 어둡고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던 옥주는 순수하고 맹목적인 행복을 안겨준 친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행하려는 것이다. 극악무도한 악당을 극악무도한 방식으로 처형하는 [발레리나]는 이충현 감독의 말대로 간단하고 명확한 복수극이다. 그 대상은 감독의 전작 [몸값]에서보다 훨씬 악랄한 성범죄자이며, 그래서 옥주는 그들에게 가장 냉혹하고 가혹하게 복수한다. 어쩌면 옥주는 가해자들이 스스로 만든 지옥의 문을 이제야 열어줬을 뿐이다.

이충현 감독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풀어내며, 통쾌하면서 몽환적인 복수극을 완성했다. 무자비한 복수가 아름답고 처연한 발레 무대처럼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무대 위 발레리나처럼 장황한 대사보다는 거칠고 강렬한 이미지로 말하고, 배우들 또한 온몸으로 감정을 표출한다. 그것조차 액션보다는 춤에 가깝게 느껴진다. 여기에 박찬욱, 왕가위가 떠오르는 감각적인 연출, 흔한 영화 음악을 빗겨간 트렌디한 음악, 탐미적인 미술, 저돌적이고 도발적인 캐릭터까지 더해졌다. 이충현 감독의 장점인 간결한 서사와 브레이크 없는 템포도 돋보인다.

이렇게 유니크하고 스타일리시한 영화 [발레리나]는 배우들의 말대로, 젊은 에너지로 꽉 차 있는 작품이 맞다. 그러나 멋으로 무장한 알록달록한 연출은 화려하지만, 주인공의 복수 자체는 공허하고 허망하다. 쿨하다 못해 비어 버린 스토리는 ‘아름답고 무자비한 복수’를 제대로 보여줬지만, 그 끝에 어떠한 여운을 남기지는 못했다. 또한 클래식함과 키치함을 섞으려는 시도는 반갑지만, 그 탓에 90분 짜리 뮤직비디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히려 화면에 가득 담기는 전종서 배우의 광기, 독기, 한기가 그 어떤 미장센보다 인상적이다. 전작들이 훌륭한 감독이기에 [발레리나]는 흥미로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남는 작품이다. [발레리나]로 자신의 멋과 스타일을 보여줬으니, 다음 작품에서는 감독으로서의 깊이를 증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