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부동산 사기, 주식 사기, 결혼 사기 등 우리는 각종 사기에 쉽게 노출되어 버렸다. 쉽게 돈을 벌고, 욕망에 눈이 멀고, 거짓 자체가 인생이 된 사기꾼들의 행동은 생각보다 더 교묘하고 교활하다. 나쁜 의미의 ‘영화 같은 현실’이 뉴스에서 보도되고 있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범죄 행각들이 얼마나 더 많을지 알 수 없다. 범죄 오락 영화에서도 ‘사기’라는 소재는 흔히 쓰인다. 아래 5편의 영화들은 기상천외한 사기극을 다루는데, 대부분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점은 씁쓸하다.

[리플리] (1999)

파라마운트 픽처스

리플리(맷 데이먼)는 밤에는 피아노 조율사, 낮에는 호텔 보이로 일하는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만 기회도 없고, 행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던 중, 선박 부호 그린리프는 믿음직해 보이는 리플리에게 계약금 천 달러를 주며 망나니 아들 디키(주드 로)를 이태리에서 찾아오라고 부탁한다. 리플리는 디키의 정보를 수집해 이태리에 도착하고, 디키와 그의 연인 마지(기네스 팰트로)와도 친해진다. 그렇게 점점 디키를 닮아가는 리플리는 마치 자신도 상류 사회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리플리]는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심리 스릴러 영화이다.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과감한 각색이 돋보이지만, [리플리]는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평생 써도 부족함 없는 재산과 아름다운 연인, 달콤한 인생, 자유와 쾌락까지. 리플리는 그토록 그토록 꿈꾸던 디키를 만나고, 아예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변해간다. 빛나는 태양이 언제까지 그를 비출지 바라보는 과정에서 행복과 불안이 동시에 고조된다.

[아메리칸 허슬] (2013)

컬럼비아 픽처스

희대의 범죄소탕 작전을 위해 최고의 사기꾼 커플 어빙(크리스찬 베일)과 시드니(에이미 아담스), FBI 요원 리치(브래들리 쿠퍼), 그리고 그들의 수작에 표적이 된 카마인 (제레미 레너)이 모였다. 딱 4명만 잡자던 그들의 계획은 정치인, 마피아까지 연루되고, 설상가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빙의 아내 ‘로잘린'(제니퍼 로렌스)까지 가세한다. 판은 점차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도달한다. 이제, 살아남기 위한 가장 치밀하고 완벽한 한 탕을 펼쳐야 한다.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아메리칸 허슬]은 1970년대, 사기꾼 멜빈 와이버그가 FBI의 함정수사에 협력해 범죄의 진상을 밝히려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희대의 뇌물 스캔들’로 불리는 이 사건은 1970년대 미국에서 가장 소란스럽고 특별했던 스캔들이다. 당시 시대상까지 실감나게 옮긴 영화는 실체와 진심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기꾼들의 혼란과 파국을 디테일하게 담아낸다.

[필립 모리스] (2009)

로드사이드 어트랙션스

자상한 남편이자 좋은 아빠, 성실한 경찰이었던 스티븐 러셀(짐 캐리)은 교통사고로 죽다 살아난다. 그후 갖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럭셔리한 삶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바로 돈이었다. 결국 천재적인 두뇌로 보험사기, 카드사기, 식품사기 등 기상천외한 사기행각을 벌이고 감옥에 들어간다. 거기서 운명적인 사랑(?) 필립 모리스(이완 맥그리거)를 만나게 되고, 이번엔 그와 함께 하기 위해 7전8기 탈옥사기에 도전한다.

믿을 수 없는 초대형 사기극을 그린 [필립 모리스]는 놀랍게도 실화다. 전미를 들썩인 세기의 사기꾼이자 탈옥의 천재 ‘스티븐 러셀’은 법을 교묘히 피해 다니며 사기 행각을 저질렀고, ‘모두 사랑 때문이었다’는 말을 내뱉었다. 비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 연인과 함께 있고자 목숨을 걸고 모든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희대의 스캔들이다. 짐 캐리와 이완 맥그리거는 이 기상천외한 커플을 연기하며 뜻밖의 케미를 선보인다.

[범죄의 재구성] (2004)

㈜쇼박스

완벽한 시놉시스 개발자 ‘최창혁’(박신양), 사기꾼들의 대부 ‘김선생’(백윤식), 최고의 떠벌이 ‘얼매’(이문식), 타고난 킬러 ‘제비’(박원상), 환상적인 위조기술자 ‘휘발류’(김상호)는 최고의 ‘꾼’들이다. 이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한국은행 사기극을 계획하고 50억을 인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돈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누구의 소행인지 추적하는 과정에서 예상 못한 음모가 드러난다.

[타짜], [도둑들]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으로 본격 범죄 오락 영화의 초석을 다졌다. 영화는 1996년 발생한 한국은행 구미 사무소 현금 사기 인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3인조 범인들이 9억 원의 현금을 사기 인출했지만 범인 검거에 실패해 미제로 남은 사건이다. 영화에서는 다섯 명의 사기꾼이 팀플레이를 펼치지만, 사실 모두 다른 속셈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마저 믿지 못한다. 사기꾼들의 권모술수와 계략이 부딪히며 끊임없이 덫에 빠지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영화는 정교한 이야기, 뛰어난 연기 앙상블과 섬세한 촬영이 찬사를 얻었고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기생충] (2019)

CJ엔터테인먼트

가족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 가족은 살 길이 막막하지만 사이는 좋다. 드디어 이들에게도 고정 수입의 희망이 생기는데, 부잣집 박사장네에 단체로 위장 취업을 하게 된 것이다.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 남매는 대학생으로 위장해 과외 선생으로, 기택은 30년 경력으로 위장해 운전기사로 취업한다. 유능한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과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조여정)은 기택 가족에게 그대로 속고야 만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 뒤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엉뚱하고도 절박한 가족 사기단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들의 사기는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과 그림판으로도 가능한 허위 자격증 한 장이면 충분했다. 치밀하지도 않은 범죄에 부유층 부부는 그대로 속게 되는데, 그들은 정말 ‘진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기우와 기정 남매는 진짜 대학생만큼 실력이 모자라지 않고, 아버지 기택은 진짜 30년 경력의 운전기사처럼 주행 능력을 갖추었다. 이 아이러니는 실력이 실력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 시대를 잘 설명한다. 실제로 지난 2022년에는 학위 위조와 부정 취업으로 사기 행각을 벌인 ‘현실판 기생충’ 사건이 알려지기도 했다. 국내외를 통틀어 250개 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씁쓸한 현실을 잘 반영하며 비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