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추리 소설의 대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핼러윈 파티」를 원작으로 한 정통 추리극이 우리 곁에 왔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일 강의 죽음]에 이은 ‘에르큘 포와로’의 3번째 시리즈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이 극장 개봉을 마치고 최근 OTT 서비스에 공개되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영화는 용의자가 유령인, 목격자 없는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과 주인공 ‘포와로’ 역을 맡아서, 영매, 유령 등 초자연 스릴러의 색채를 더한 추리극으로 재탄생시켰다. 케네스 브래너 이외에도 제95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양자경’이 심령술사 ‘조이스 레이놀즈’ 역을 맡아 새로운 연기 변신에 나선다. 명탐정 포와로는 이번에도 미궁에 빠진 사건의 진실과 진범을 찾을 수 있을까?

호러로 무장한 색다른 추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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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생활을 은퇴하고 베니스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포와로’에게 베스트셀러 작가인 ‘올리버’(티나 페이)가 찾아와 심령술사의 실체를 밝혀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방문한 저택에서 살인사건이 갑자기 발생하고, 포와로는 탐정 본능이 깨어나며 진실을 파헤친다.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고립된 공간과 그 안에 있는 다채로운 인물 군상을 통해 인간의 욕망 때문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그리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달리는 열차와 유람 중인 크루즈에 이어 이번에는 폭우로 인해 고립된 옛 저택이라는 공간이 사건의 용의자를 한정시키는 중요한 열쇠이자 배경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기존 추리극에 초자연적인 요소를 추가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킨다. 그러나 ‘유령’이 주는 긴장감을 빌드업 하기 위해 인물의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풀어낸 드라마는 극의 속도감을 처지게 한 점은 옥에 티. 그럼에도 호러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공포와 추리가 결합된 색다른 이번 작품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인물들의 사연 뒤에 숨겨진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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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밤, 1년 전 사랑하는 딸을 잃고 깊은 상실에 빠진 ‘로웨나 드레이크’(켈리 라일리)의 초대로 저택의 교령회에 참석한 이들은 미스터리한 심령술사 ‘조이스 레이놀즈’가 죽은 영혼의 목소리를 전하는 광경을 보며 혼란에 빠진다. 그날 밤, 레이놀즈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실체 없는 용의자를 쫓던 포와로는 충격적인 진실을 밝혀낸다.

영화 도입부 ‘레이놀즈’ 역의 양자경은 독특한 비주얼과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며, 극 초반 강력한 흡입력으로 극을 이끈다. 적은 비중과 분량에도 미스터리한 동양 심령술사의 존재감을 어필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폐쇄된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소설가인 아리아드네, 교령회를 연 저택의 주인 로웨나, 의사인 레슬리 페리에(제이미 도넌), 페리에의 아들 리오폴드(주드 힐), 로웨나의 죽은 딸 알리시아의 전 약혼남 맥심(카일 앨런), 레이놀즈의 두 조수 남매, 가정부 올가, 포와로의 경호원까지 모두가 용의자다. 포와로는 이들과 차례로 면담하며 그들의 숨겨진 사연을 듣는다.

세련된 미장센과 긴장을 더하는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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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영화 시작과 함께 저택에 얽힌 괴담을 소개하며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고아원에 갇혀 죽은 아이들이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간 의사와 간호사에게 유령이 되어 복수한다는 내용은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유령이 벌인 짓으로 보이게 하여 공포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여기에 베니스의 이국적인 풍경, 할로윈 데이의 분위기와 가면으로 미스터리한 느낌을 더하고, 심령술사의 죽음은 호러의 절정을 맞이한다. 흑백으로 처리된 과거와 명암 대비가 강렬한 인상을 빚어내며 소재와 장면이 주는 느낌을 영리하게 살린다.

호러로 포장된 추리극답게 청각적인 요소로 관객의 감각을 일깨우는 부분도 훌륭하다. 바람 소리, 새의 날갯짓 소리, 컵이 깨지는 소리 등은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분위기 전환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이렇듯 눈길을 사로잡는 미장센과 청각의 민감도를 끌어올린 사운드는 관객에게 영화의 재미를 배가한다.

하지만 고전의 익숙한 공식, 한정된 공간이 주는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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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와 추리의 재미를 동시에 전하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도 아쉬운 점은 있다. 우선 50년 전 원작 소설의 익숙한 스토리는 추리극의 가장 중요한 충격과 반전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 추리 과정과 범인으로 밝혀지는 인물 역시 예상 가능한 수준인데, 도입부의 충격적 미장센으로 붙잡은 관객의 눈길을 익숙한 공식만 되풀이해 집중력을 흩트린다. 물론, 자칫 지루할 뻔한 스토리에 공포 요소가 적절히 가미되어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한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기에, 한정적 공간의 축소된 스케일과 그로 인해 떨어지는 역동성은 전작을 보고 한껏 기대감을 높인 관객에게 만족할 만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인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포와로와 레이놀즈를 제외한 캐릭터들의 무채색 매력과 부족한 존재감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각 인물의 서사를 좀 더 흥미롭게 풀어냈으면 속도감 있는 전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인물의 개성이 드러나고 성향이 파악되었다면 관객들도 몰입해서 볼 수 있고, 마지막에 포와로의 원 맨 쇼가 아닌 관객들도 추리에 참여할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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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아쉬움에도 포와로의 명석한 추리력과 각자의 이해관계로 모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집착과 욕망의 파멸은 마지막까지 극에 집중하게 만든다. 정통 추리극이 전무한 요즘, 케네스 브래너의 포와로 시리즈는 여전히 매력적인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이 시리즈에 진심 어린 애정이 느껴지는 케네스 브래너의 열정은 여전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고전의 향기 속에 관람자의 허를 찌르는 트릭과 반전은 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이후 또 어떤 포와로 작품이 나올까? 세상 모든 사람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며 당당히 추리의 자신감을 말하는 포와로의 다음 난제를 이른 시일 내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