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넷플릭스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생애 첫 인도네시아 작품인 [시가렛 걸]을 접하게 되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5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 중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1~2화를 관람하고는 11월 OTT 공개 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시가렛 걸]은 정향 담배산업을 배경으로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두 세대에 걸친 가족의 비밀을 찾아나가는 로맨틱 서사 시대극이다. 이 작품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정향 담배를 만드는 이드루스 가문 장녀이자 뛰어난 조향능력을 가진 ‘다시야’(디안 사스트로와르도요)와 사업 수완이 뛰어난 ‘수라야’(아리오 바유), 두 사람이 서로 마주치고 사랑하고 헤어졌다가 그리워하고, 오해하여 미워하던 끝에 다시 서로에게 돌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드라마는 늙고 병들어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둔 수라야를 위해 막내아들 ‘르바스’(아리야 살로카)가 과거 아버지의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 상대였던 다시야를 찾아 나서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르바스는 아버지가 준 편지와 사진을 들고 찾은 담배 박물관에서 기증자 가족인 이드루스 가문의 손녀 ‘아룸’(푸트리 마리노)을 만나 과거 수라야와 다시야의 행적을 찾게 된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를 거쳐 독립전쟁을 겪은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혼란기에 싹튼 그들의 사랑은 1965년에 일어난 쿠데타로 야기된 ‘인도네시아 대학살’로 인해 파국을 맞게 된다. 수용소에 갇힌 다시야와 총을 맞은 수라야는 그렇게 엇갈린 운명으로 새로운 삶을 살며 서로를 그리워한다. 스포가 될 수 있어 이후에 드러나는 충격적인 비밀은 언급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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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통해 기존에 몰랐던 인도네시아의 격동의 역사를 엿볼 수 있어 조금 더 찾아보게 되었다. 300여 년에 걸친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 이후 일본의 지배에 있던 인도네시아는 1949년 마침내 독립을 하게 된다. 단일 국가 시대를 맞이한 군부의 지원을 받는 수카르노 대통령은 독재자로 군림하게 되고 1965년 일어난 쿠데타를 수하르토가 진압하며 실권을 장악하고 공산당에 대한 탄압 및 살육을 개시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일어난 20세기 최악의 대학살 중의 하나인 ‘인도네시아 학살’이 주인공인 다시야와 수라야의 운명을 갈라놓게 된 주요 사건이며, 1969년 인도네시아에 강제 편입된 파푸아의 무장반군의 투쟁이 수용소에서 나온 다시야와 결혼한 ‘세노’(입누 자밀)가 전사하게 된 배경이다.

이렇듯 격변의 시대를 겪은 비운의 여인 다시야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많이 닮아 있다. 미국 남북전쟁과 그 이후의 변화된 시대 속에서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의 격동의 삶을 조망하듯이 [시가렛 걸] 역시 인도네시아의 독립 이후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다시야’의 파란만장한 삶을 비춘다. 수라야와 다시아의 행적을 다음 세대인 르바스와 아룸이 편지를 통해 확인하는 액자식 구성은 남의 일이라 생각했던 역사적 사건들이 나와 어떻게 연계되고 이어져 오는지 두 세대 간의 관점과 시대 흐름에 따른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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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렛 걸]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인도네시아의 젊은 거장으로 알려진 ‘카밀라 안디니’, ‘이파 이스판샤’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인도네시아 영화계의 거장 ‘가린 누그호로’ 감독의 딸인 카밀라 안디니 감독은 여성문제를 심도 깊게 다룬 작품으로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고 이파 이스판샤 감독은 동서대학교 임권택 예술영화대학에서 공부한 영화 프로듀싱에서 두각을 보이는 감독이다. 이들 부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돈이 되는 산업이며,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정향 담배산업을 통해 두 세대를 걸쳐 흘러가는 역사의 연속성과 ‘증 야’라는 시대를 앞서간 여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한다. 

[시가렛 걸]은 정향 담배산업이 성장하던 1960년대 인도네시아를 배경으로 한 ‘잊을 수 없는 맛’의 담배 향을 만들고자 하는 꿈을 가진 다시야의 사랑과 비밀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려는 여주인공의 숨겨진 이야기가 퍼즐이 맞춰지듯 드러나는 스릴러 형식으로 관객들을 흡입력 있게 빨아들인다. 인도네시아 톱스타들의 설득력 있는 연기와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온 카밀라 안디니와 이파 이스판샤 부부 감독의 세심한 미장센과 연출은 드라마의 몰입감을 배가시켜 수준 높은 극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잘 만들어진 색다른 이야기의 인도네시아 작품 [시가렛 걸]을 통해 ‘다시야’와 함께 전통에 맞서 사랑과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