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칸의 선택이 오는 1월 31일 국내 관객과 만난다. 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추락의 해부]는 남편의 추락사를 둘러싼 아내와 시각장애 아들의 비밀을 담은 작품이다. 스릴러 영화에서 의문사는 단골메뉴다. 전혀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칸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 남다른 매력이 가득한 영화라는 뜻일 것이다. 과연 영화의 무엇이 칸의 콧대 높은 심사위원들을 빠져들게 했는지 세 가지 이유로 영화를 ‘해부’해본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그날의 진실’

그린나래미디어(주)

[추락의 해부]라는 제목 답게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가 굉장히 디테일하다. 사건 현장 감식부터 목격자의 진술, 용의자에 대한 탐문까지, 범죄 수사에 관한 모든 것이 이 작품 안에 다 들어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담담한 태도를 취한다. 비슷한 장르 영화의 과장된 설정이나 드라마틱한 서사보다 용의자로 몰린 아내 산드라(산드라 휠러)에 더 집중한다. 사건 하나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망가트리고, 집요하게 쫓는지를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오히려 이런 연출 때문에 더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관객들의 호기심은 더욱 커진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법정공방

그린나래미디어(주)

그렇게 수사가 끝난 뒤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간다. 이때부터 영화의 재미와 몰입감이 배가된다. 범죄 수사를 디테일하게 담은 작품은 범정에서도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한다. 각자의 입장에 선 검사와 변호인의 설전이 계속되는데, 특히 이들의 심문을 편집하지 않고 거의 모든 것을 담아낸 연출이 인상적이다. 작은 단서 하나까지 광적으로 파고드는 검사, 이를 반박하며 법정의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변호사, 정작 두 사람의 대결 뒤로 인생이 모두 벌거벗겨진 피고인의 처량한 모습까지, 영화는 법정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는다. 작품의 집중력이 대단해서 이들의 싸움을 보고 있으면 진짜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속에 효과적인 편집보다, 법정 날 것의 그대로를 담겠다는 영화의 야심이 보기 좋게 들어맞는 순간이다. 그 사이 유력한 용의자인 산드라의 진심이 더욱 궁금해진다. 정말 그는 남편을 살해한 것인가?

해부한 것은 추락만이 아니었다

그린나래미디어(주)

그렇게 첨예한 대립을 펼치던 법정의 공기는 뜻밖의 증거가 나와 한순간 달라진다. 남편이 죽기 전 아내와 대화를 녹음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부가 감추고 싶었던 잔혹한 진실이 펼쳐진다. 영화는 이 과정 역시 리얼하게 담아내며 추락 뿐 아니라 부부의 세계마저 해부한다. 그들이 싸운 이유, 이로 인한 갈등과 슬픔 등을 부각하며 많은 생각할 거리를 건넨다. 특히 이들의 비밀을 증인이자 사건의 목격자인 아들도 듣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충격이다. 아들은 어릴 때 사고로 앞을 보지 못하지만, 모든 것을 듣고 있다. 주인공 산드라의 유무죄의 공방은 물론, 재판이 거듭되면서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된 아들의 혼돈 역시 영화는 밀도 있게 들여다본다.

[추락의 해부]는 오묘한 영화다. 처음에는 남편 죽음에 대한 진실이 궁금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사건 때문에 조금씩 무너지는 가족이 더 안타까워 보인다. 더 나아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꼬투리 하나를 물어뜯으며 피고인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법정의 모습이 씁쓸함을 더한다. 사건을 해부할수록 사람의 영혼이 해체되는 과정을 영화는 의미 있게 담아낸다. 얼핏 스릴러 장르의 진부한 소재를 다룬 이 작품에 열광한 칸의 이유를 알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극중 사건에 천천히 빠져드는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몰입감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최종 결말로 향해가는 시점, 과연 남편의 죽음은 자실인가? 사고인가? 아니면 살인인가? 그 비밀은 스크린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