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자들]의 반가운 얼굴들이 11년 만에 다시 모였다. 3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박신혜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온 박형식이 호흡을 맞춘 로맨틱 코미디 [닥터 슬럼프]다. [간 떨어지는 동거],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쓴 백선우 작가와 [역도요정 김복주], [그 남자의 기억법] 등을 연출한 오현종 PD가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이미지: JTBC

남하늘(박신혜)은 똑똑한 머리를 타고났고, 가진 시간을 쪼개어 모조리 공부하는 데 쓸 정도로 공부를 좋아한다. 전교 1등을 넘어 전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성적을 기록하는 하늘은 대학 진학을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을 가는데, 그곳에서 여정우(박형식)를 만난다. 공부 만능, 운동 만능으로 전교 1등을 여유롭게 기록하던 정우는 하늘의 등장으로 처음으로 2등으로 밀려나는 경험을 하면서 하늘을 라이벌로 점찍는다. 매일 티격태격하며 같은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던 두 사람은 서로 비슷한 듯 다른 길을 걷는다. 정우는 잘 나가는 성형외과 스타 의사, 하늘은 큰 병원의 마취과 의사가 된다. 그런데 제대로 휴식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열심히 달려온 하늘은 병원 안에서 이리저리 시달린 탓에 번아웃이 와서 일을 그만두고, 정우는 수술 도중 의문의 의료 사고로 환자가 사망하면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두 의사가 인생의 가장 큰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 정우가 하늘의 집 옥탑방으로 이사를 오면서 두 사람은 14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다.

드라마는 꾸준한 시청률 상승세를 기록하며, 넷플릭스에서도 한국을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서 순위권에 진입했다. 시청자의 시선을 끄는 매력 포인트 중 하나는 하늘과 정우가 만들어가는 로맨스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다. 하늘은 가세가 기울어진 데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까지 병으로 쓰러진 집에서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날마다 치열하게 살았고, 정우는 부족한 것 없는 의사 집안에서 무관심에 가깝게 방치된 채 성장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정반대에 가까운 환경에 놓여 있지만, 비슷한 구석도 많이 보인다. 슬럼프를 겪으면서 두 사람은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이 자신을 믿고 공감하며 선택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다가가 아무도 채워주지 않았던 그 여백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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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티격태격했던 과거를 지닌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눈에 띈다. 박형식은 능청스럽고 코믹한 표정부터 혼자 남겨져 외로움을 삭이는 모습을 능숙하게 그려내고, 박신혜는 반복되는 괴로운 일상에 지친 모습을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또한 둘이 함께 있을 때는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편안하고 통통 튀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곧이어 안정감이 느껴지는 다정한 분위기로 부드럽게 이어가면서 로맨틱한 케미스트리를 매력적으로 담아낸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드라마의 매력 포인트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갑갑해지는 상황들을 늘어놓은 뒤, 한 번에 극적으로 모든 상황을 깨부수는 소위 ‘사이다’ 식의 얕고 빠른 전개를 취하지 않는다. 하늘이 업무적으로 착취하면서 막 대하는 교수에게 발길질로 응수하며 병원을 관두고 나오고, 정우가 하늘을 깔보고 무례하게 구는 고모들에게 은근히 비꼬는 말로 받아치는 등 둘을 향해 모진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소소하게 응수하는 방식으로 약간의 통쾌함을 안기는 장면들이 등장하나,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분명하게 짚어낸다. 드라마는 하늘과 정우의 일상에서 엉켜버린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마주하며 천천히 풀어나가는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호흡으로 흘러가는 점이 인상 깊다.

10화를 지나면서 하늘과 정우는 잠깐의 이별을 거쳐 키스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관계가 더욱더 단단해졌다. 하늘은 더 이상 정우에게 짐이 될까 걱정하며 혼자서 고통을 버티지 않기로 했고, 정우는 하늘이 자신을 의지할 수 없을까 봐 괜찮은 척했던 PTSD 증상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남은 6화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지 기대하며,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을지라도 두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