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퓨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입지를 가장 잘 다지고 있는 20대 배우 중 한 명이다. 능숙하고 능동적인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에 솔직하고 과감한 자기표현, 강인한 에너지, 폭 넓은 감정이 어우러져 독보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여성, 나아가 인간의 다채로운 면을 보여주는 플로렌스 퓨는 끊임없이 금기를 깨고 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뜨겁게 타오르는 욕망부터 서늘하고 처연한 감정들까지, 모든 것을 카메라에 쏟아내는 플로렌스 퓨의 대표작을 살펴본다.

[레이디 맥베스] (2017) / 캐서린 역

씨네룩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남편에게 종속돼 모든 자유를 빼앗긴 캐서린은 온종일 몸을 동여매는 코르셋을 착용한 채 가만히 앉아서 유령처럼 시간을 허비한다. 고요한 저택에 갇혀 권태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자신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하인 세바스찬에게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때부터, 그녀는 모든 금기를 깨고 자신의 욕망을 따르기로 한다.

모든 여성의 금기를 깨고 자신의 운명을 이어가는 영화 [레이디 맥베스]. 20대 초반 신예였던 플로렌스 퓨는 이 영화에서 겉으로는 한없이 차갑고 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 불같은 욕망을 숨기고 있는 캐서린을 연기했다. 금기된 욕망을 품은 눈빛으로 코르셋을 풀어던지는 장면은 성에 대한 금기를 넘어, 정치사회적 규제의 상징을 벗어던지려는 한 여자의 과감한 선택을 보여준다. 감독 윌리엄 올드로이드는 “오디션장에서 만난 그는 유머 감각, 결단력, 뜨거운 의지,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등 우리가 캐서린에게서 찾고자 한 모든 자질을 천성적으로 뿜어내고 있었다”고 칭찬했다. 이 영화로 박찬욱 감독마저 사로잡아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의 주연을 꿰차며 한국 관객에게도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다.

[미드 소마] (2019) / 대니 역

A24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는 90년에 한 번씩 9일 간 하지 축제  ‘미드소마’가 열린다.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큰 슬픔에 빠져 있던 대학생 대니는 스웨덴인 친구의 초대를 받고, 유일하게 의지하던 남자친구와 함께 그곳을 방문한다. 한여름, 낮이 가장 긴 날 열리는 축제 ‘미드소마’는 꽃길인 줄 알았으나, 축제가 끝나기 전까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길이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공포 영화 [미드소마]에서 플로렌스 퓨는 이전과 또 다른, 독특하고 기묘한 분위기의 연기를 선보였다. 그가 연기한 심리학과 대학생 ‘대니’는 영화 시작과 동시에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마주하여,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다. 플로렌스 퓨는 소외되고 기댈 곳 없는 대니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촬영 당시 캐릭터에 너무 깊이 몰입한 나머지 스스로를 학대하고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는데,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당시 연기는 만족스러웠다고 밝혔다.

[작은 아씨들] (2019) / 에이미 마치 역

컬럼비아 픽처스

여기,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자매들이 있다.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이웃집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는 네 자매를 우연히 알게 되고, 각기 다른 개성의 네 자매들과 인연을 쌓아간다. 그리고 7년 후, 어른이 된 그들에겐 각기 다른 숙제가 놓이게 된다.

2019년 하반기에는 플로렌스 퓨의 강력한 존재감이 담긴 영화 두 편이 연이어 개봉했다. [미드소마]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플로렌스 퓨는 이후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에서 ‘마치’ 가문의 막내 딸 ‘에이미 마치’로 분했다. 에이미는 예술가를 꿈꾸는 동시에 사랑도 놓칠 수 없는 야심가로, 플로렌스 퓨와도 꽤나 닮아 있는 인물이다. 플로렌스 퓨는 미워할 수 없는 철부지 에이미의 다양한 모습을 연기하여 캐릭터에 입체감을 한껏 불어넣었고, 만 24세 나이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블랙 위도우] (2021) / 옐레나 벨로바 역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벤져스의 히어로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 (스칼렛 요한슨)는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레드룸의 거대한 음모와 실체를 깨닫게 된다. 상대의 능력을 복제하는 빌런 ‘태스크마스터’와 새로운 위도우들의 위협에 맞서 목숨을 건 반격을 시작하는 ‘나타샤’는 스파이로 활약했던 자신의 과거뿐 아니라, 어벤져스가 되기 전 함께했던 동료들을 마주해야만 한다. 어벤져스의 운명을 바꾼 블랙 위도우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플로렌스 퓨의 [블랙 위도우] 캐스팅 소식은 그가 확실한 라이징 스타임을 입증해줬다. 2021년, 마침내 공개된 [블랙 위도우]에서 플로렌스 퓨는 옐레나 벨로바 역을 맡아 액션까지 훌륭하게 소화했고, 존재감 또한 메인 주인공만큼 강했다. 특히 스칼렛 요한슨과의 케미가 좋았다는 호평이 잇따랐는데, 진중한 성격의 나타샤(스칼렛 요한슨)와 능글맞고 유쾌한 성격의 옐레나 벨로바(플로렌스 퓨)가 의외의 케미를 선사한 덕분이다.

[오펜하이머] (2023) / 진 태트록 역

유니버설 픽처스

천재 과학자의 핵개발 프로젝트를 담은 [오펜하이머]에서 플로렌스 퓨는 오펜하이머의 전 연인 ‘진 태트록’으로 분했다. 반항적이면서 생각을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다. 실제로 오펜하이머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고, 1944년에 우울증으로 삶을 마감했다. 다만 그녀의 죽음이 정보 요원에 의한 타살이었다는 음모론도 존재하며, 영화에서도 이를 반영해 다소 모호한 죽음을 연출했다.

이 영화에서 플로렌스 퓨는 짧은 등장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캐스팅 당시, 분량이 적을 것이라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말에 “괜찮다. 카페의 커피 메이커라도 하겠다”며 강력한 출연 의지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특유의 과감하고 치명적인 연기가 잘 드러났고, 20분도 되지 않는 분량이지만 엄청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듄: 파트 2] (2024) / 이룰란 코리노 역

워너 브라더스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듄: 파트 2]에서 플로렌스 퓨는 코리노의 마지막 황제 샤담 4세의 장녀 ‘이룰란 코리노’로 분한다. 글과 역사에 능하며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로, 앞서 공개된 예고편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났다. 예고편에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전부 멸문되었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단번에 폴 아트레이데스가 생존해 있음을 눈치채고 이 사실을 아버지 샤담 4세에게 진언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플로렌스 퓨가 맡은 이룰란 공주 역할이 영화에서 중요한 존재로 등장한다고 밝히며 [듄] 시리즈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티모시 샬라메, 젠데이아 등이 출연하는 [듄: 파트 2]는 2024년 3월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