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다양한 형태가 있는 것처럼 불행의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최근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한 [지옥]은 정체불명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지옥행을 선고하면서 벌어지는 아비규환을 그렸다. 이처럼 상상력과 불안감이 만나면 비범한 서사를 만들어내곤 한다. 가상의 세계를 말하지만 현실을 기반으로 하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소개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핵 전쟁으로 멸망한 22세기, 물과 기름을 독점한 독재자 임모탄 조와 그에 대항하는 자들이 사막에서 펼치는 추격적을 그렸다. 영화의 주된 배경이자 임모탄이 구축한 왕국 시타델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빈민들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세뇌당한 청년들은 임모탄 조를 신으로 섬기면서 목숨을 바친다.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세계, 오직 주인공 ‘퓨리오사’만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임모탄의 다섯 여인을 데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분노의 도로’라는 부제에 걸맞게 영화는 스릴 넘치는 카 체이싱 액션으로 가득하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차량은 무기이자 작품의 아이덴티티다. 화염방사기를 부착해 불을 뿜어내거나 전장의 노래를 연주하는 등 각종 개조 차량이 모래 폭풍을 일으키며 끊임 없이 질주한다. ‘기억할게!’라는 잊지 못할 명대사를 남긴 워보이(임모탄의 병사)들의 광기에 휩싸인 모습 또한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로보캅

이미지: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1980년대 SF 영화에 한 획을 그은 [로보캅](1987)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폭발 사고로 불구가 된 전직 경찰 ‘알렉스 머피’는 거대 군수기업의 눈에 띄어 사이보그로 개조된다. 뇌와 얼굴, 심장 등 극소수의 장기를 제외하고 전부 기계로 대체된 알렉스.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를 이용하려는 자들로 인해 인간과 로봇의 구분은 모호해져 간다.

원작과 리메이크 작 모두 액션 히어로의 활약상을 그리면서도 정치적 풍자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반 인간, 반 로봇인 주인공이 겪는 정체성 혼란과 과학의 진보가 불러온 위협, 다국적기업의 횡포 등을 이야기에 녹여냈다. 원작과 다르게 가족 서사를 추가한 부분이 눈에 띈다. 원작에서 알렉스의 가족은 그의 불완전한 기억 속에 파편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하지만 리메이크 작에서는 가족이 알렉스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그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가족의 비중을 높여 차별화를 시도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느려진 전개 속도가 아쉬움을 남긴다.

브이 포 벤데타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동명 그래픽 노블이 원작인 [브이 포 벤데타]는 제3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전체주의 정부가 들어선 가상 미래의 영국을 그린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와 도청 장치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피부색, 성적 지향성, 정치적 성향이 다른 시민들은 정신집중캠프로 끌려간다. 모두가 숨죽여 살아갈 때, 가면을 쓴 ‘V’라는 의문의 남성이 나타나 ‘국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며 사람들을 결집한다. V에게 이끌려 혁명에 동참하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이야기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영화의 주요 인물이자 메시아인 V는 수용소에서 생체 실험을 겪고 비약적인 신체 능력을 얻었다. 덕분에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그는 대범하고 잔혹한 액션을 선보인다. 각종 전투 장면 때문에 [브이 포 벤데타]는 SF 액션 영화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작품의 주제의식은 오히려 정치 드라마에 가깝다. V는 끝내 혁명을 완수하는 순간에도 가면을 벗지 않는다. 그럼에도 배우 휴고 위빙은 목소리로 빈틈없는 연기력을 보여주며 카리스마 넘치는 비질란테 역할을 완벽히 소화했다.

설국열차

이미지: CJ ENM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설국열차]는 기상 이변으로 꽁꽁 얼어붙은 지구, 인류 마지막 생존 지역 ‘설국열차’에서 펼쳐지는 계급 갈등을 그렸다. 2031년,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기차 한 대가 쉼 없이 달린다. 탑승객 모두가 열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세지만, 부유층은 앞 칸에서 호위 호식하고 빈곤층은 꼬리 칸으로 밀려나 형편없는 음식을 먹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긴 세월 동안 배고픔과 불평등을 감내하던 꼬리 칸의 사람들은 결국 지배 체제에 반기를 들고 앞으로 돌격한다.

빙하기라는 재난을 겪고도 양극화가 줄어들기는커녕 심화됐다는 설정이 [설국열차]를 더욱 흥미롭게 한다. 특히 기차 문 사이로 배치된 극과 극의 세계는 믿기 힘들 정도다. 이 같은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꼬리 칸 사람들의 투쟁을 폭력적으로 그리지만, 커티스가 지배자의 심복들을 하나둘씩 무찌르고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후반부에 밝혀지는 열차의 비밀과 반전은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동력이다.

더 랍스터

이미지: (주)팝엔터테인먼트

정해진 기간 동안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세계. 솔로 데이비드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모아둔 호텔에서 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곳에서 냉혹한 성격의 여성을 만난 데이비드는 사이코패스인 척하지만 금새 들통난다. 결국 데이비드는 호텔을 탈출해 숲에 도착하지만 여기에는 오히려 연애를 금지하는 집단이 자리 잡고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데이비드의 상황. 과연 그는 동물로 변할 것인가?

[더 랍스터] 속 인물들은 상대방과 공통점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자해하고 감정이 없는 척을 한다. [더 랍스터]는 운명적 상대를 찾는 여정을 그리지만, 로맨스 영화라기엔 너무나 기이하다. 어느 한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 영화는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섬세한 연출과 독특한 분위기로 차근차근 그려나간다. 그러나 [더 랍스터]는 정해진 답 대신 열린 결말을 보여주면서 해석을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