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할 말 없게 만든 영화를 만났다. 처음 이 영화가 제작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컨셉이 굉장히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제니퍼 로렌스가 붙고, 크리스 프랫이 붙었다. 감독은 <이미테이션 게임>을 만들었고, 작가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썼다고 한다. 이쯤 되면 기대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 하지만 로튼토마토 지수를 보며 모든 기대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30 언저리라니, 점수가 너무 낮으면 차라리 몇 개든 골라서 까는데, 이 정도로 애매한 점수를 받은 영화들은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식민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선 아발론 호. 그곳에는 120년 동안 여행할 승객과 승무원 몇천 명이 동면 상태로 탑승해 있다. 아발론 호는 소행성 지대를 통과하다가 충돌을 일으키고, 그 결과 기기가 오류를 일으키며 한 승객의 동면 포드의 작동이 중지된다. 그렇게 깨어난 승객, 짐. 식민 행성에 가려면 아직 90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혼자밖에 없다는 외로움 때문에 죽을 생각까지 한다.

하지만 짐은 죽음 대신, 동반자를 만드는 것을 택한다. 차마 우주로 뛰어들지 못했던 그의 눈에 들어온 여자. 짐은 포드 속 한 여자, 오로라에게 한눈에 반하고, 결국 기기 오작동을 일으켜 그녀를 깨운다. 오로라 역시 짐이 처음 깼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동면 상태로 돌아갈 방법을 찾지만, 방법은 없다. 드넓은 우주 한가운데, 겨우 두 사람.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한다.

둘의 관계가 파국을 만난 건, 오로라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짐의 변명 아닌 변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상황. 졸지에 자신의 모든 꿈이 날아가 버린 오로라는 몇날 며칠을 괴로워한다. 하지만 둘의 갈등은 결국 살아야 한다는 일념 앞에서 해소되고,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며 다시 사랑에 빠지고, 삶의 동반자로 인정한다.

 

영화는 딱 이만큼이다.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지도 않고, 실제로 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상상하며 정리된 내용을 읽는다면, 영화보다 더 풍부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중요한 대접을 받는 곳을 찾아 떠난 짐, 새로운 이야기와 모험을 위해서 아발론 호에 몸을 실은 오로라. 두 사람이 예기치 않은 사고로 예정보다 몇십 년이나 일찍 깨어나, 이 넓은 우주에 두 사람만이 사는 삶을 살게 된다. 그들은 과연 이 넓은 우주에서, 서로만 보게 되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낄까? 그리고 두 사람이 깨어난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는 이 두 사람의 심정이 더 궁금하다. 이들이 깨어난 이유, 서로에게 감춘 비밀, 이들을 깨어나게 만든 원인이 궁금한 게 아니다.

영화의 이야기도 점점 집중을 잃어간다. 영화 초반, 포드 오작동으로 깨어난 짐이 넓은 우주선에서 혼자 살아야 했을 때 했던 수많은 행동과 수많은 생각이 그려지는 방식이 좋았다. 위험한 선택까지 하려고 했던 순간, 겁에 질린 채로 독에서 우주선 안으로 뛰어들어왔을 때 짐이 느꼈을 공포를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로라가 깨어난 이후로 영화는 갑자기 로맨스로 바뀌었고, 사랑 이야기가 영화를 지배하면서 그 전까지 괜찮다고, 좋다고 느낀 감정은 사라졌다. 그리고 이들이 왜 깨어났는지 알게 된 후에는….

맞다. 이 영화의 정체는 재난영화다. 그 재난이 아주 천천히 다가오고, 그것이 눈에 보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우주선에 이상이 있다는 건 본격적인 증상이 있기 전부터 암시되었고, 심지어 승무원 한 명이 깨어나 위기를 확인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이런 영화가 언제나 늘 그렇듯이, 지금 당장 깨어있는 두 사람밖에 없다. 착한 두 사람은 수천 명이 잠들어 있는 우주선이 공중분해 되는 비극을 막고자 하고, 그사이에 사네 죽네 하면서 작별인사도 하고, 엉엉 울기도 한다. 어느 순간 그저 그런 재난영화가 되어버린 것이 너무 아쉬웠다. 이 배우들을 데리고, 이 돈을 들여서, 이게 무슨….

 

왜 요즘 가장 핫한 배우 두 사람이,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버린 <패신저스>를 선택했을지 의문이 든다. 궁예질을 좀 해보자면, 이들이 읽었던 시나리오는 좋았기 때문일 것 같다. 진짜 좋은 시나리오 그런 게 아니라, 글에서 사건을 묘사했을 때 각자가 맡을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을 상상하는 진폭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 붙고, 영화 규모가 점점 블록버스터급이 되자, 영화가 이들이 상상한 만큼의 감정을 담지 않게 되면서 범작이 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 연기 나름 하는 두 배우는 핫한 몸매만 남긴 채 그저 그런 영화에 출연했다는 필모만 가져가게 되었고.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다. 우주선에 로맨스에…. 조금만 잘 만들었으면 딱 내 취향이었을 텐데….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이 영화를 소설로 한번 읽어보고 싶다. 욕심 많은 비주얼에 압도되어서, 짐과 오로라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자세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런 여유를 만끽하고 싶어서, 작가가 소설로 쓴 <패신저스>가 나온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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