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어디까지 가봤니?
세계의 독특한 영화제들

by. 겨울달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지난 13일 개막해 오는 23일까지 계속된다. 올해 총 58개국, 289편의 영화가 출품된 <BIFAN>은 과감한 시도와 다채로운 개성이 빛나는 영화를 선정, 공개하는 ‘독특한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특히 다른 영화제보다 SF, 공포, 스릴러 등 장르성 강한 영화가 많이 소개되어 장르 마니아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BIFAN>처럼 개성 강한 영화 선정과 활동으로 명성을 얻거나 ‘영화제’라는 시도에 반기를 든 색다른 시도가 인상적인 독특한 영화제들을 모아봤다. 인도의 작은 휴양 마을부터 미국 대도시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 다채로움을 빛내는 축제들을 소개한다.

 

<이미지: Kate Zamana / camerimage.pl>

영화 영상을 찬양하라 – 카메리미지 영화제 (Camerimage)

개최: 1993~
시기: 11월
장소: 폴란드 비드고슈치

영화가 종합예술의 산물인 만큼 영화 전체를 즐길 수도, 영화를 이루는 각각의 요소를 즐기는 등 하나의 작품을 두고 즐기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폴란드에서 열리는 <카메리미지 영화제>는 촬영 분야 전문 영화제로 세분화된 영화제 중 가장 권위 있는 축제다. 1993년부터 시작된 <카메리미지>는 2000년부터 폴란드 비드고슈치에서 열리고 있는데, 매년 11월 1주일간 도시의 여러 장소에서 ‘촬영’을 주제로 선정된 영화가 상영된다. 상영작 중 각 부문에서 훌륭한 작품을 뽑아 상을 수여하는데 그 이름은 트로피 형상에서 볼 수 있듯이 황금 개구리(Golden Frog) 상이다. 그 외에도 폴란드의 유서 깊은 영화교육의 전통을 이어받은 마스터 클래스가 열려 전문 촬영감독과 학생, 영화계 관계자들이 참여해 교류를 나눈다고 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이라면 관심이 생길 만하다.

 

<이미지: 인스타그램 시네테카 볼로냐 @cinetecabologna>

고전을 찾아서 – 복원영화제 (Il Cinema Ritrovato)

개최: 1986~
시기: 6월 말(2017년)
장소: 이탈리아 볼로냐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복원영화제>는 각국의 영화 복원 기관이 발굴하고 복원한 영화를 상영하는 자리다. 초창기 영화와 무성 영화뿐 아니라 각국의 고전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볼로냐 시네테카가 개최하며 복원 기술을 갖춘 유럽의 시네마테크와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필름 복원 및 기록 기관들이 대거 참여한다. 이 자리에서는 그동안 괴작이나 졸작으로 저평가된 작품들이 감독의 의도대로 복원되고 재상영되어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 지난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열린 2017년 영화제는 1977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복원된 감독판을 상영해 화제를 모았다. 한국영상자료원도 <복원영화제>에 작품을 여러 번 출품했으며, 50년 만에 복원한 고(故) 이만기 감독 대표작 <검은머리>가 상영돼 호평을 받았다.

 

<이미지: 올덴부르크 국제 영화제 페이스북>

독특한 상영관 – 올덴부르크 국제 영화제 (Internationales Filmfest Oldenburg)

개최: 1994~
시기: 9월
장소: 독일 올덴부르크

중세의 낭만을 간직한 독일 소도시 올덴부르크에서 열리는 <올덴부르크 국제영화제>는 ‘독일의 선댄스 영화제’라는 별명이 있다. 독일 뿐 아니라 유럽 각국의 독립영화들을 모아서 상영하며 스티브 소더버그, 대런 아로노프스키 등 할리우드 유명 감독들이 자신의 작품을 독일에 처음 선보이는 자리로 이곳을 택하기도 했다. 각국의 영화를 상영한 후 최고상인 관객상과 함께 독일 독립영화와 단편영화에 상을 수여한다. 여기까지는 크게 특별한 것이 없어서 자국 독립영화 축제 정도라 생각할 수 있다. 이 영화제가 특별한 것은 바로 상영관이다. <올덴부르크 영화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정 시설, 즉 교도소에서 작품을 상영하는데 특별 상영관이 아니라 매년 상영하는 정규 극장 중 하나로 등록되어 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곳의 재소자들은 같은 자리에서 영화를 본다. 이 시기에 맞춰 탈출을 꾀한 재소자는 아직까지 없었다고 한다.

 

<이미지: Bring Your Own Film Festival 페이스북>

내맘대로 튼다 – Bring Your Own Film Festival (BYOFF)

개최: 2004년~
시기: 매년 2월
장소: 인도 푸리
홈페이지: https://www.facebook.com/BYOFFPURI

2004년 시작된 <BYOFF>는 말 그대로 내 영화를 직접 들고 와서 상영하는 영화제다. 인도의 사원 도시이자 관광도시인 퓨리에서 매년 2월 개최되는데 다른 영화제와 달리 상영작을 선별하는 사람이나 심사위원이 없다. 정식 상영도 없고, 자격 요건 심사도 없다. 누구나 들어와서 등록해 자신의 영화를 상영할 수 있어 독립 영화인들의 포럼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영화제가 유명해지면서 인도 영화산업 공동체의 관심을 받으면서 참가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다른 영화제에서 작품을 선택하기 위해 이 영화제를 방문하기도 한다. 영화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음악, 연극, 그림, 조각, 춤, 문학, 사진 등 다양한 예술 분야 작품의 참여와 전시도 반긴다고 하니, 매년 2월 이 도시에선 다양한 예술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이미지: 국제 랜덤 영화제 페이스북>

정해진 게 없어서 더 특별한 – 국제 랜덤 영화제 (International Random Film Festival)

개최: 2009~
시기: 매해 변경
장소: 유럽 내 도시, 매해 변경
홈페이지: http://randomfilmfest.com

국제 랜덤 영화제>는 ‘영화의 임의성(randomness)’를 기념하는 첫 영화제다. 매년 출품된 영화 중 25편을 선정해 경쟁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특이한 점은 이것을 제외하고는 영화제의 모든 것이 랜덤이라는 것이다. 개최 장소, 개최 시기, 심지어 경쟁 부문 수상자를 결정하는 과정 또한 임의로 이루어진다. 어느 정도냐고? 올해 5월 개최된 6번째 <랜덤 영화제>에서는 고양이의 힘을 빌려 그랑프리 수상자를 결정했다.

<랜덤 영화제>를 개최한 영화감독 하넬리나 하우루와 미디어 아티스트 시네스 엘리스카는 <국제 단편 영화제>에서 비평가로 일하며 만났는데, 두 사람은 홈페이지에 영화제의 의도와 의미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모든 필름메이커들에 자신들의 영화를 전 세계에 공개하는 기회를 동등하게 주자는 취지로 이 영화제를 기획했으며,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냐 아니냐는 컨셉 자체를 파괴하기 위함을 이론적 기저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를 해외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지만 영화제의 까다로운 선정 과정을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필름메이커들에게 과감하게 추천해 본다.

 

<이미지: 보르시치 영화제 페이스북>

보르시치 영화제 (Borscht Film Festival)

개최: 2004~
시기: 2월 (매해 변경)
장소: 미국 마이애미

미국 독립영화 매체 인디와이어가 ‘세상에서 가장 괴상한 영화제’라고 평가한 <보르시치 영화제>는 2004년 마이애미의 뉴 월드 예술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개최하며 마이애미 플로리다에서 2년마다 열리는데 2년마다 마이애미 지역 예술 신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영화 상영과 더불어 공연과 순수미술 전시회, 심지어 보디빌딩 대회까지 여는 독특한 축제다. 수많은 사람과 영화를 즐기고 난 후 새벽 2시까지 마이애미 바닷가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보르시치 영화제는 ‘환각 버섯 먹은 선댄스’, ‘마이애미 문화의 정수를 담은 축제’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기점으로 ‘진짜 재능을 알아보는 영화제’라는 평가를 추가했다. <보르시치 영화제>의 공동 창설자인 앤드류 헤비아와 루카스 레이바는 베리 젠킨스의 첫 영화 <메디신 포 멜랑콜리>를 본 후 그에게 단편 영화 제작을 의뢰했고, 희곡 <달빛 아래 흑인 소년은 파랗다>를 집필한 터렐 앨빈 맥크리어리를 소개했다. 그 만남의 결과가 바로 2017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문라이트>이니, 떡잎을 포착하는 솜씨가 정말 보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