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낄 수 있었던 한 주였다. 더워지는 날씨를 피해 극장에서 보기 좋은 두 편의 ‘현실 탈출’ 영화가 개봉했다. 평범한 소녀로 살고 싶은 중학생의 성장기를 그린 [여중생A]와 버려진 개들의 쓰레기 섬 탈출기를 담은 [개들의 섬]이 그 주인공이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웹툰 원작의 [여중생A]와 웨스 앤더슨만의 독보적인 미장센과 연출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개들의 섬] 중 어느 작품이 관객들의 시선을 끌지 궁금하다. 주말 동안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 중이라면, 테일러콘텐츠 에디터들의 의견을 참고해보자.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에디터 Jacinta: 투박하고 설익은 연출이 영화의 선한 의도를 잠식했다. 주제의 무게감에 눌린 데다 상업영화에서 벗어난 영화적 시도는 신선하기보다 어설픔이 더 앞선다. 공감과 위로, 연대와 이해의 목소리가 나오기까지 준비 과정도 길고 느슨하다. 미래가 처한 불행한 현실은 단편적으로 열거될 뿐이고, 이후 랜선 친구 재희를 만나면서 점차 변화하는 모습과도 긴밀하게 이어지지 못한다. 전반적인 완성도는 아쉽지만, [곡성]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걷어낸 김환희란 배우의 성장은 놀랍다. 치기 어린 시도로 그친 영화지만, 한 배우의 잠재력을 봤다는 것으로 나름의 의미를 가져본다.

 

에디터 겨울달: 원작 웹툰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 영화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한 소녀의 성장기로 다가온다. 가정폭력과 왕따에 시달리지만 돌파구를 좀처럼 찾지 못하는 미래의 모습은 괴롭고 힘들었다.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점점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고, 용기를 내 부조리에 ‘나름대로’ 대항하는 과정을 봤을 땐 응원하는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상의 뭔가를 제시하지 못한다. 미래뿐 아니라 중학생들의 복잡한 생각과 마음을 깊이 그리길 바랐지만, 영화가 더 용감하게 나아가지 않아 다소 아쉽다. 청소년 배우들의 연기는 칭찬할 만하다. 특히 영화 내용과 감성 모두에 깊이를 더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김환희의 연기는 감동을 준다.

 

에디터 띵양: 원작을 감명 깊게 본 사람으로서, 원작 팬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여중생A]는 과일을 깎아서 관객에게 껍질을 대접했다. 여느 웹툰 소재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도 방대한 스토리를 압축시키다 보니 많은 것을 덜어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원작의 매력인 ‘무거운 톤’이나 ‘십대 청소년들의 섬세한 심리묘사’,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쳐내면서 그저 그런 학원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학원물의 중요 요소인 ‘주인공의 성장’을 잘 담아내지도 못했다. 특히 주인공이 시련을 극복하는 방법이랍시고 영화가 제시한 해법은 진부하다 못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모든 불행은 너의 마음가짐에 달려있어. 스스로 이겨내면 돼”라고 말하는 것은 해법이 아닌 책임전가다. 김환희가 보여준 퍼포먼스가 아니었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에디터 Jacinta: 웨스 앤더슨만의 독보적인 미장센과 탁월한 색채 감각, 거기에 개들의 감정과 쓰레기섬 구석구석 담아낸 디테일은 정말이지 환상적이다. 그가 추구하는 영화적 미학은 애니메이션조차 예술의 경지로 느끼게 할 만큼 집요하며 또 영민하다. 뿐만 아니다. 쓰레기섬으로 추방된 개들과 소년의 우정 어린 모험담은 편협하고 기만한 체제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익살스러움으로 가득하다. 분명 웨스 앤더슨이 선사하는 판타지는 충분히 즐겁지만, 마냥 즐기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있다. 일본이란 배경을 기능적으로 소비하는 것 같은 괴랄한 설정은 개들을 구하고자 앞장서는 미국인 유학생이 등장하면서 의구심이 폭발한다. 영화가 추구하는 볼거리를 만끽하다가도 일부 설정에서 오는 아쉬움을 쉬이 거둘 수 없다.

 

에디터 띵양: 웨스 앤더슨이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을 꾹꾹 눌러 담았다. 인간의 그릇된 이기심에 상처 입은 동물들이 자유를 되찾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이야기는 이미 우리가 수많은 영화에서 숱하게 접한 메시지다. 여기에 웨스 앤더슨만의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미장센이 더해지면서 “친숙하지만 새롭다”라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 아기자기함 때문에 영화가 가진 메시지가 더욱 날카롭고 서늘하게 다가온다.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풀어내는 방식과 연출, 그리고 미장센 측면에서는 찬사를 받을 영화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왠지 께름칙하다고 느낀 이유는 영화에 깊숙이 뿌리 박힌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 때문일 것이다. 듣기만 해도 특정 지역을 연상케 하는 지명이나 전체주의 정권을 지극히 서양인의 시선으로 표현하면서 누군가에게는 슬픔으로 기억될 역사의 흔적을 너무나도 가볍게 다루려 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아쉽다.

 

에디터 Amy: 처음에는 왜색이 짙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세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면서도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일본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일본어를 쓰고 개들은 영어를 사용하는데, 일본어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자막이 없으며 영화 내에서 동시통역사가 등장하거나 미국 교환학생 캐릭터가 영어를 사용한다. 인간과 개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지만, 여러 사건을 겪으며 점점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그린다. [판타스틱 Mr. 폭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웨스 앤더슨 감독답게 구도와 배치가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주며, 상징적인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 심장 박동을 연상시키는 배경음과 사운드트랙도 부드럽게 조화를 이룬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착한’ 영화이며, 개를 향한 감독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