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막을 내렸다. 놀라움으로 가득했던 수상 결과나 30년 만에 사회자 없이 진행된 점 등이 이슈가 되었던 가운데, 할리우드에서는 또 어떤 이야깃거리들이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을까? [그린 북]의 작품상 수상에 불만을 표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한 마디부터 영화 편집자 존 오트만이 톰 크루즈와 브라이언 싱어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사연까지! 자칫 놓칠 뻔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이번 주 ‘할리우드 말말말’에서 살펴보자.

 

 

“[그린 북] 작품상은 명백한 오심, 농구 경기장 온 줄 알았다”

– 스파이크 리 –

 

[그린 북]이 작품상을 거머쥐면서 올해 아카데미의 주인공이 됐다. 축하받아 마땅하지만 의외로 수상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린 북]이 ‘백색 구원자 서사(백인이 위기 상황에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는 전개)’ 논란 등으로 흑인 사회에서 비난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조던 필을 비롯한 몇몇 흑인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지 않았으며, 특히 KKK단에 잠입했던 흑인 형사의 실화를 그린 [블랙클랜스맨]으로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스파이크 리는 역정을 내고 식장을 떠나려다 제지를 당했다고(아이러니하게도 [블랙클랜스맨]도 70년대 강압적이었던 경찰 권력을 미화했다는 논란으로 잠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스파이크 리는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각색상으로 커리어 최초로 오스카를 거머쥔 그는 뱀에 물린 기분이라고 운을 뗀 뒤 “항상 누가 운전할 때마다 지는 것 같다. 이번에는 앉은자리가 바뀌었지만 말이다”라며 [똑바로 살아라]로 각본상 후보에 올랐던 1990년 아카데미 당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가 작품상을 수상했던 것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이후 한 기자가 자신의 리액션에 대한 질문을 하자 “다른 질문을 받겠다. 난 여기가 아카데미가 아니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코트사이드인 줄 알았다. 심판의 오심에 제스처를 취한 것뿐이다”라며 미소 지으면서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출처: Entertainment Weekly

 

 

“올해는 아카데미가 수상 후보 안 베껴서 다행이다”

– 오브리 플라자 –

 

케빈 하트의 하차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사회자 없이 진행된 가운데, 배우 오브리 플라자가 하루 전 진행된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 사회자가 얼마나 큰 임팩트를 남길 수 있는지 증명했다. 다양성 영화의 축제라 불렸던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가 다시금 정체성을 되찾은 것 같아 기쁘다고 밝힌 그녀는 “너무 중요해서 안 봐도 되는 영화들의 축제에 오신 걸 환영한다. 올해에는 사회자 없이 진행하려 했는데, 내일 시상식이 선수를 쳐서 내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올해는 아카데미가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의 작품상 후보를 그대로 안 베꼈다. 그리고 감독상 후보의 60%가 여성인데, 이 경우에는 3명이다. 60%라고 말한 이유는 아저씨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 날 선 비판과 풍자를 날려 참석자들의 환호를 이끌었다. 그녀의 다음 타깃은 넷플릭스였다.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라고 운을 뗀 오브리 플라자는 “사람들이 영화를 맞는 장소에서 봐야 한다고 믿는다. 극장에서 말이다! 여러분이 혼을 담아 만든 영화가 넷플릭스에서 ‘양말 예쁘게 접는 방법’을 찾는 수백만 명에게 관심을 끌 것이다. [로마]나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나 똑같이 누군가가 무언가를 치우는 내용이니 말이다”라고 외치자 카메라는 넷플릭스 콘텐츠 총괄 책임자 테드 사란도스의 멋쩍은 표정을 비추어 보였다.

 

출처: indieWire

 

 

“월경에 대한 영화가 오스카를 받다니!”

– 레이카 제흐타브치 –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주목할 정도로 권위 있는 영화계 행사다. 일각에서는 보수적이고 전통을 고수하기로 유명한 아카데미를 종종 비판하기도 했는데, 올해 아카데미는 30년 만에 사회자가 없는 시상식을 진행하고 슈퍼 히어로 영화인 [블랙 팬서]와 넷플릭스 [로마]가 작품상에 오르는 등 성향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자의 반 타의 반이기는 하지만). 앞선 이슈들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피리어드. 엔드 오브 센텐스.]가 단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점도 아카데미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레이카 제흐타비치의 [피리어드. 엔드 오브 센텐스.]는 인도 델리 외곽 지역에 사는 여성들이 ‘월경’을 터부시 하는 사회적 시선과 맞서 싸우는 내용을 그린 작품. 시상식을 앞두고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에 “나는 [피리어드. 엔드 오브 센텐스.]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 잘 만든 작품이지만, 단순하게 여성들이 월경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다른 남성 투표자들도 묘하게 기분 나쁜 이 작품 대신에 다른 작품에 한 표를 던질 것”이라며 익명의 아카데미 회원이 보낸 칼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는데, [피리어드. 엔드 오브 센텐스.]의 레이카 제흐타비치도 수상할 것을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시상대에 올라 “월경에 대한 영화가 오스카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라며 놀라움 섞인 농담을 던지며 모두와 기쁨을 나누었다.

 

출처: Elle

 

 

“[캡틴 마블] 악성 리뷰, [샤잠!]에 도움 안 돼!”

– 재커리 리바이 –

 

악성 팬들의 횡포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북미 개봉까지 열흘 정도 남은 [캡틴 마블]이 자칭 ‘DC 팬’들의 타깃이 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최근 SNS에 무섭게 퍼지고 있는 “[캡틴 마블]은 동성애를 혐오하고 전쟁 범죄와 민간인 학살, 성범죄를 옹호하는 끔찍한 영화. [캡틴 마블]을 볼 바에 [샤잠!]을 보겠다”라는 리뷰들이 바로 이들의 만행이다. 이에 [샤잠!] 감독 데이비드 F. 샌드버그는 “[캡틴 마블]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 대박을 쳐서 이 사람들의 입을 닥치게 했으면 좋겠다”라며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이들은 도무지 멈출 생각을 안 하고 있는 상황. 논란이 계속되자 주연배우 재커리 리바이까지 나섰다. “나를 위해, [샤잠!]을 위해, 혹은 워너브러더스를 위해 하는 일이랍시고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겠다. 착각하지 말라. 당신들이 하는 일은 그 누구도 돕는 게 아니다”라며 말문을 연 그는 “옛날 옛적에 ‘샤잠’이 ‘캡틴 마블’이라 불렸다고 해서 브리 라슨이나 [캡틴 마블]이 우리와 경쟁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쪽 편을 들어서 싸워야겠다는 생각은 부디 접어두길 바란다”라고 단호한 어조로 ‘팬’을 자칭하는 악성 팬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남겼다.

 

출처: The Playlist

 

 

“브라이언 싱어와 톰 크루즈 때문에 펑펑 울었다”

– 존 오트만 –

 

‘편집’은 영화 제작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혹평을 면치 못했던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이 감독판을 통해 재평가를 받았던 경우나 DC 팬들이 [저스티스 리그] ‘잭 스나이더 감독판’을 요구한 사례를 보면 편집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까닭에 많은 관계자들이 편집 작업에 관심을 쏟기 마련인데, 영화 편집자 존 오트만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이런 방식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로 사상 첫 오스카를 품에 안은 그는 지난 18일, [작전명 발키리] 당시 브라이언 싱어와 크리스토퍼 맥쿼리, 그리고 톰 크루즈의 간섭에 눈물을 흘렸던 사연을 소개해 화제가 됐다. “가장 먼저 톰이 편집본을 훑어보고 피드백을 했다. 다음에는 크리스가 방문해서 톰과는 다른 의견을 남겼다. 이렇다 보니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이는데 진전이 없었다. 어찌어찌 편집을 하다 보면 브라이언이 찾아와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놓았다. 그러면 톰과 크리스가 찾아왔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뒤이어 “가만히 앉아서 펑펑 울고 말았다. 오랜 시간을 들였지만, 이러나저러나 큰 차이가 없는 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이다”라며 자신이 받았던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했음을 밝혔는데, 역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출처: Dead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