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시상식 시즌의 시작을 알린 골든글로브가 막을 내렸다. 아카데미 전초전이라 불리는 큰 시상식인 만큼 모든 수상 결과가 이목을 사로잡았지만, 국내 영화 팬들에게는 단연 <기생충>의 외국어영화상 수상 소식이 가장 큰 화제이자 자랑거리가 아니었나 싶다. 시상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수상 소감’도 많은 이슈가 되었다.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만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저희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어는 영화(cinema)입니다”라는 봉준호 감독의 소감 외에 또 어떤 말들이 골든 글로브와 할리우드를 사로잡았을까? 이번 주 ‘할리우드 말말말’에서 살펴보자.

수상 소감이나 말하고 무대에서 꺼지세요- 리키 저베이스

올해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골든글로브 사회를 맡은 리키 저베이스는 특유의 독설 화법으로 유명하다. 얼핏 들으면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멘트가 매운데, 올해도 변함없이 수많은 이들이 표적이 됐다. 자녀 부정입학 사건으로 복역 중인 펠리시티 허프먼과 골든글로브 주최사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마틴 스콜세지, 애플 CEO 팀 쿡까지 ‘디스 레이더망’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리키 저베이스가 특히 신랄하게 비판한 대상은 시상식을 정치적 발언의 무대로 삼는 사람들이었다. “여러분에게는 대중을 훈계할 자격이 없습니다”라며 운을 뗀 그는 “진짜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무지하잖아요. 아마 대부분은 그레타 툰베리보다 학교도 덜 다녔을 거고요. 그러니 단상에 올라 트로피를 받으시고, 에이전트와 각자 신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꺼지세요(f*** off). 안 그래도 세 시간짜리 시상식입니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열변을 토했다. 과연 그의 진심(?)이 수상자들에게 닿았을까? 미셸 윌리엄스, 패트리샤 아퀘트 등이 소신 있게 정치적 신념을 밝히고 단상에서 내려왔으니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출처: deadline

오바마 대통령님, ‘플리백’ 좋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피비 월러-브리지
이미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플리백]이 2019-2020 시즌 TV 시리즈 중 가장 핫한 작품인 건 확실하다. 작년 에미상을 휩쓸었고, 여러 연예 매체의 연말 결산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혔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여우주연상과 작품상을 수상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임을 재차 확인했다. 작가 겸 주연 피비 월러-브리지는 [플리백] 출연진과 제작진 등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표했는데, 지난달 오바마가 공개한 2019년 재미있게 본 영화와 TV 시리즈 리스트에 [플리백]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아마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중년 남성이 ‘막 사는’ 30대 영국 여성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게 놀랍지 않았을까. 대통령까지 팬으로 만들 만큼 영향력 있는 [플리백]이 시즌 2를 끝으로 종영했다는 사실이 아쉽다.

출처: deadline

레오, 난 너랑 뗏목 같이 탔을 거야 – 브래드 피트
이미지: 소니 픽쳐스

브래드 피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90년대부터 연기력과 스타성을 모두 갖춘 배우이지만 상복은 없는 편이었다. 아카데미 상은 배우가 아닌 제작자로 받았고, 연기상은 [머니볼]로 2012년 후보에 오른 뒤엔 지명을 받지 못했다. 골든글로브 상 또한 [12 몽키즈]로 1996년 남우주연상을 받은 지 24년 만에 다시 타게 됐다. 피트는 수상 소감에서 자신을 캐스팅한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한 공동 주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LDC”라 부르며 함께 연기한 것이 정말 영광이라고 말하고, “너랑 뗏목 같이 탔을 거야.”라며 [타이타닉] 레퍼런스까지 재치 있게 덧붙였다. 하지만 시상식 전, 후로 피트와 관련된 가장 큰 이슈는 전처 제니퍼 애니스톤과 시상식에서 재회할지 여부였다. 피트와 애니스톤의 일거수일투족뿐 아니라 피트가 상을 받을 때 애니스톤의 표정마저 나노 단위로 분석되었다.

출처: vulture50

아빠, 저 취직했다고 말했잖아요 – 아콰피나
이미지: A24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 이변의 주인공이라면 [더 페어웰]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아콰피나일 것이다. 첫 주연작 [더 페어웰]의 중국계 미국인 ‘빌리’를 연기하며 기존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퀸즈 출신 아시아계 ‘노라 럼’은 ‘아콰피나’라는 래퍼로 얼굴을 알리고, 코미디 감각을 뽐내며 대작 영화에 감초 역할을 해냈다. 첫 드라마 연기를 성공적으로 펼치고 이제 상도 받았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펼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고, 그만큼 가족의 걱정도 컸다. 아콰피나는 수상 소감에서 상을 아버지에게 바치며 “아빠, 저 취직했다고 말했잖아요.”라는 농담을 곁들었다.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시아계 배우가 된 것을 축하하며, [더 페어웰]을 하루빨리 국내 극장가에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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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최고의 배우’ 따위는 없어요 – 호아킨 피닉스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시상식에서는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물론 골든글로브처럼 인지도가 높을 땐 후보에 오르기만 해도 대단한 일이지만, 수상자가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올해 골든글로브에서 이러한 ‘승자독식’ 형태의 시상식 문화를 비판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남우주연상 수상자 호아킨 피닉스다. [조커]로 트로피를 거머쥔 그는 평범하게 소감을 이어가는 듯하다가 “동료 여러분, 빌어먹을(F***ing) ‘최고의 배우’나 경쟁 따위는 없어요. 그저 시청률과 광고비 때문에 나누는 거죠”라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평소 할리우드 시상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호아킨 피닉스다운 발언이었지만, 누구도 ‘수상 소감’으로 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기에 장내가 들썩였다. 허를 찌른 발언 이후 피닉스는 동료들에게 공을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러분에게 많은 걸 배웁니다. 지난해 경이로운 작품을 선사하신 모두가 스승 같은 존재예요. 함께 이름이 호명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라며 함께 다른 후보자들을 추켜세우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보여주면서 큰 환호와 함께 단상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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