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날은 주말을 끼고 있어 짧게 느껴진다. 뭔가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연휴의 반이 흘러갔다. 이제 월요일만 지나면 다시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느긋한 연휴 기분을 내고 싶다면 서두르자. 가볍게 게으름도 피울 겸 평소 바빠서 보지 못했던 해외 드라마를 보는 건 어떨까. 연휴가 짧은 만큼 온종일 시간을 내지 않아도 반나절이면 정주행 할 수 있는 시리즈면 부담이 없을 것 같다. 반나절의 정확한 기준이 애매하기에 한 시즌 4시간(240분) 안팎 분량의 드라마들로 엮어봤다.

프라임 서스펙트 1973(Prime Suspect 1973) 6부작, 261분, 왓챠
이미지: WATCHA PLAY

90년대 방영된 헬렌 미렌 주연의 수사물 [프라임 서스펙트]의 프리퀄 드라마. 작가 린다 라 플란테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인 테니슨의 신입 시절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못마땅해하는 가족과 여성을 차별하는 남성 중심의 경찰서 사이에서 압박을 느끼는 22세의 제인 테니슨이 살해된 채 발견된 10대 가출 여성 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수사관으로서 조금씩 거듭나는 모습을 그린다.

보스 프린세스(Triad Princess) 6부작, 239분, 넷플릭스
이미지: 넷플릭스

가볍고 경쾌한 말랑말랑한 로맨스가 생각난다면 류이호가 소심한 스타로 나오는 [보스 프린세스]를 보자. 삼합회 보스의 딸 안치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평소 좋아하던 배우 쉬이항이 소속된 연예 기획사의 비밀 경호원으로 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이야기에 국내 로맨틱 코미디 감성과 결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취향에 따라 오글거릴 수 있다), 털털한 여자와 소심한 남자가 가까워지는 과정은 결말을 알고 봐도 재밌고 설렌다.

메디컬 폴리스(Medical Police) 10부작, 237분, 넷플릭스
이미지: 넷플릭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방영된 [아동병원] 제작진과 주인공들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메디컬 폴리스]로 다시 만났다. [아동병원]의 독특한 유머 코드를 좋아한다면 반가울 테고, 혹 잘 모른다 해도 황당한 개그를 진지하게 펼치는 코미디를 새롭게 접해도 좋다. [메디컬 폴리스]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근무하는 두 의사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조사하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비밀요원이 되어 전 세계를 누비며 첩보 작전을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얼렁뚱땅 어이없게 웃기는 게 포인트니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우리 사이 어쩌면], [앤트맨과 와스프]의 랜들 박이 깜짝 출연한다.

콜래트럴 이펙트(Collateral) 4부작, 229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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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이후 영국 사회를 엿볼 수 있는 캐리 멀리건 주연의 수사 드라마. [콜래트럴 이펙트]는 런던 도심에서 시리아 난민 출신 피자 배달부가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캐리 멀리건이 사건을 조사하는 글래스피 형사로 등장하는데, 흥미로운 건 임신 6개월 차의 결혼생활을 이야기에 끌어오지 않고 오직 사건을 대하는 수사관으로서 모습을 비춘다. 뿐만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주요 인물이 여성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여성 감독 S.J. 클락슨이 연출을 맡고, [디 아워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등을 쓴 데이비드 헤어가 각본을 썼다는 것도 [콜래트럴 이펙트]가 가진 매력을 뒷받침한다. 전개 과정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여성들이 주요 서사를 끌고 가는 드라마를 원한다면 4부작은 금방 흘러갈 것이다.

수호천사 울리(Nobody’s Looking) 8부작, 206분, 넷플릭스
이미지: 넷플릭스

[굿 플레이스], [멋진 징조들]처럼 인간 세계 너머의 존재를 다룬 브라질 코미디 시리즈. [수호천사 울리]는 300년 만에 나타난 ‘호기심 많은’ 신입 천사 울리가 시스템과 임무에 의문을 느끼고 규칙을 어기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다. 울리가 자신만의 방식대로 인간을 돕기 시작하면서 천사 세계의 주변 동료까지 파장이 확산된다. 전반부가 기계적으로 획일화된 시스템의 무능함에 허를 찌른다면, 후반부는 사랑과 믿음, 본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신선한 세계관과 가볍고 경쾌한 코미디는 즐겁고, 다음 시즌도 보고 싶게 하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The Movies That Made Us) 4부작, 187분, 넷플릭스
이미지: 넷플릭스

[더티 댄싱], [다이하드], [고스트 버스터즈], [나 홀로 집에], 한때 연휴 때마다 어김없이 특선 영화로 찾아왔던 추억의 영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여정을 탐험한다.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은 [토이: 우리가 사랑한 장난감들]의 제작자가 선보이는 영화 버전 다큐시리즈로, 미처 몰랐던 8~90년대 인기 영화 네 편의 극적인 창작 과정을 추적하며 영화보다 더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숨은 배경을 알고 영화를 다시 본다면 감상의 여운은 전과 다를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
– 누명(Ordeal by Innocence) 2부작, 171분 / ABC 살인사건(The ABC Murders) 2부작, 169분, 캐치온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 3부작, 167분 / 검찰 측의 증인(The Witness for the Prosecution) 2부작, 117분, 왓챠
이미지: WATCHA PLAY, 캐치온

100여 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40억 부 이상 팔린,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드라마로 만난다. 이미 원작을 읽었다 해도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먼저 [누명]은 크리스마스에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파국에 이르는 가족의 이야기다. 빌 나이, 매튜 구드, 안나 첸셀러 등이 출연하며, 막대한 자산가 레이첼을 살해한 혐의로 지목된 의붓아들 쟈코가 복역 도중 사망하면서 가족 중에 진짜 범인이 있을 거라는 의심이 번지고 파멸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다. 아가사 크리스티 본인이 손꼽은 베스트 10에 속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ABC 살인사건]은 은퇴한 탐정 에르큘 포와르와 그에게 범행 예고 편지를 보낸 살인범의 추리 게임을 다룬다. 존 말코비치가 노쇠한 명탐정 포와르 역을, [해리 포터] 시리즈의 루퍼트 그린트가 그와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크롬 경위 역을 맡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탐정의 심리 추리극을 선보인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명탐정 포와르와 미스 마플 없이도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과 함께 세계 3대 추리 소설로 꼽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보다 스산하고 적막한 분위기의 추리극으로 탄생했다. 찰스 댄스, 노아 테일러, 메이브 더모디, 샘 닐 등이 출연해, 고립된 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인형이 사라질 때마다 의문을 죽음을 당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검찰 측의 증인]은 무명 변호사가 부유한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지목된 남성을 변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토비 존스, 빌리 하울,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킴 캐트럴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며, 법정물보다는 환영을 보는 듯한 심리물에 가깝다.

언던(Undone) 8부작, 183분, 아마존
이미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작년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성인을 위한 색다른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다. 넷플릭스는 데이빗 핀처와 팀 밀러의 참여로 잘 알려진 앤솔로지 애니메이션 [러브, 데스 + 로봇]을, 아마존은 [보잭 호스맨]의 작가 케이트 퍼디와 라파엘 밥-왁스버그가 각본을 쓴 로토스코핑 기법의 애니메이션 [언던]을 선보였다. 오늘 소개할 [언던]은 [알리타: 배틀 엔젤]의 로사 살라자르와 [베터 콜 사울]의 밥 오덴커크가 주연을 맡아,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깨어난 알마에게 신비로운 일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오래전 죽은 아버지와 만나는 알마의 이야기는 초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 가벼운 블랙 코미디처럼 흐르면서도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심오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어 색다른 애니메이션을 원한다면 적극 추천한다.

스페셜(Special) 8부작, 115분, 넷플릭스
이미지: 넷플릭스

아직까지 영화와 드라마에서 장애인에 대한 벽이 높다. 지난주 공개된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 2에 사고로 팔, 다리가 마비된 배우 조지 로빈슨이 메이브의 새 이웃 아이작 역을 맡아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작품에서 장애인 캐릭터도 배우도 흔하지 않다. 작년 봄 공개된 [스페셜]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뇌성마비가 있는 방송작가 라이언 오코넬이 자신의 회고록을 각색하고 주연을 맡아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장애인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보통 장애를 소재로 한 작품이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스페셜]은 게이 청년 라이언의 성적 호기심과 사회생활, 가족 관계를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한다. [빅뱅 이론]의 짐 파슨스가 총괄 제작에 참여했다.

본딩(Bonding) 7부작, 106분, 넷플릭스
이미지: 넷플릭스

짧은 웹드라마 형식의 [본딩]은 BDSM을 소재로 삼지만 노골적이지 않다. 낮에는 웨이터로 일하며 스탠드업 코미디를 꿈꾸는 피트가 밤에는 도미나트릭스로 일하는 동창 티프와 우연히 만나 그의 조수로 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은밀한 비즈니스가 계속되면서 성 정체성과 무대공포증에 갇혔던 피트는 점차 자신을 돌아보며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중생활을 하는 티프 역시 오랜 트라우마와 마주하며 스스로에게 솔직해진다. 제작자 라이터 도일의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성 소수자를 주제로 한 영화제 ‘아웃페스트 LA LGBTQ’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최근 두 번째 시즌 제작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