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10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LA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우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감격을 선사했다.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예측을 뛰어넘고 각본상을 시작으로 감독상, 국제영화상, 작품상까지 수상하며 영화사에 기념비적인 순간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동안 백인 남성 중심의 보수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아카데미였기에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고 [기생충]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변화의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여건상,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소식을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과 [기생충] 수상 소식을 접했던 에디터들은 어제 하루를 어떻게 기억할까. 흥분되기도 감격스럽기도 했던 솔직한 기분을 얘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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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혜란: [기생충]의 선전을 축하한다. 각본상을 받을 때 설마 했는데 작품상까지 받게 되어 정말 놀랐다. [기생충]이 존재감을 과시한 건 반가웠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다른 영화들이 선전하지 못해서 아쉽다. 작품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영화들은 규모도 크거나, 사회비판적이며, 굉장히 강렬하다. 그러다 보니 규모는 작고 섬세하고 따뜻한 영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자는 생각까지 든다. 한편 “영화적 체험”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작품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넷플릭스와 극장 간 힘겨루기는 계속되겠지만, 당장은 아카데미 유권자들이 넷플릭스의 변칙 개봉을 반기지 않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어느 쪽에서 태도를 바꿔야 하는 걸까? 스트리밍과 극장의 힘겨루기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에디터 홍선: 아카데미 시상식 전 지인들과 [기생충] 수상 결과 예측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필자는 예상에 실패했다. (작품상 수상은 ‘기생충’을 찍었지만 감독상은 샘 멘데스가 탈 줄 알았다) 그런데 기분이 좋은 건 왜일까? 아마 어제 대부분 대한민국 영화 팬들은 자신의 예상이 틀려도 행복했을 것이다. [기생충]이 작년부터 시작된 비평가 협회, 골든 글로브, 조합상 등에서 기세 넘치는 수상 장면을 보여줬지만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 트로피를 동시에 거머쥘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번 시상식에서 두 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기생충]이라는 훌륭한 작품과 작년 여름부터 오늘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와 멋진 마무리를 보여 준 또 하나의 시네마를. BTS와 강남 스타일 열풍을 보면서 혹시나 한국 영화가 미국 내 한류 히트를 친다면 조촐하게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 정도 하겠지(?)라고 생각한 필자에게 오스카 작품상 트로피는 ‘계획에 없던 일로’ 벅찬 감정을 선사했다. 한국 영화사를 넘어 세계 영화사에 상징적인 한 페이지를 장식한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을 만든 모든 연기자, 제작진에게 ‘리스펙트’ 가득한 박수를 보낸다.

에디터 영준: 이미 온 나라가 떠들썩하지만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4관왕이라니! 감동의 순간을 직접 영접(?)하지 못하고 SNS로 접한 게 아쉽기만 하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업적이 국내 영화계에 자극이 되어 앞으로 좋은 한국 영화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생충] 수상만큼이나 기쁜 건 호아킨 피닉스가 아카데미와의 악연을 마침내 끊었다는 것이다. 최애 배우와 한국 영화가 전해준 기쁜 소식에 수백 번 내적 박수를 치느라 칼로리 소모를 한 본인은 자축의 의미로 어젯밤 치킨을 먹었다. 기쁠 땐 역시 치킨이지.

에디터 원희: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시네필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월호를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은 아쉽게도 후보에서 그쳤지만, [기생충]이 각본상, 국제영화상에 더해 감독상, 작품상을 받으며 신기록을 세웠다. 국내 시청자와 재외 국민, 교포뿐 아니라 아시아계, 더 나아가 비백인 영화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백인 중심적인 할리우드에서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아시아인으로서 한 걸음 나아가는 순간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감동적인 마음마저 들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때로 돌아간 것처럼 모두가 열광하던 그 순간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에디터 현정: 자막이라는 1인치 장벽을 넘고 뜻깊은 성과를 거둔 [기생충]의 활약이 놀랍다. 당연히 상을 받을 거라 예상했지만,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인 감독상과 작품상을 석권할 줄은 상상을 못했다. 할리우드 밖에서 제작된 아시아 영화에 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은 분명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편으론 아카데미상이 [기생충]을 기점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했으면 하는 마음도 교차한다. [기생충]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양극화 문제’를 주제로 아카데미상의 높은 장벽을 무너뜨렸지만, 아직까지 여성과 인종 등 다양성에 인색한 건 사실이다. 또, 무관에 그친 [아이리시맨]을 지켜본 마음은 참으로 복잡하다. 아카데미가 변해야 할까, 넷플릭스가 변해야 할까.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영화적 경험은 분명 스트리밍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지만,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지는 양쪽 모두 유연한 태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어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뭉클했던 순간은 봉준호 감독이 수상 소감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언급할 때다. 영화인과 팬들이 가장 극적으로 경계를 허문 순간이 아니었을까. 아카데미도 넷플릭스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모두가 더 한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