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닛코

이미지: 마블 코믹스

1963년, 스탠 리와 잭 커비는 마블의 새로운 슈퍼 팀을 구상하면서 초능력을 얻게 된 기원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탄생한 게 선천적으로 특별한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뮤턴트라는 종족이다. 마블 유니버스의 엑스맨은 뮤턴트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작가 렌 윈과 데이브 코크럼은 판매 감소로 연재가 중단된 엑스맨 코믹스를 울버린, 스톰, 나이트크롤러, 콜로서스 등 다국적 멤버들로 재편해 시리즈를 부활시켰다. 이후 크리스 클레어몬트가 집필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수십 년간 엑스맨과 관련한 여러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90년대에는 어벤저스를 능가했다.

엑스맨은 소수자 및 비주류 세력에 대한 은유로 다양성을 대표하면서 유명해졌다. 인간 우월주의자에게 박해받는 뮤턴트의 자리에 소수인종이나 성소수자, 난민 등을 대입해 볼 수 있는데, 이런 두드러진 특징이 엑스맨 시리즈의 큰 약점이 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도 탄압받는 뮤턴트라는 구조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면서 동일한 이야기의 반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가득함에도 판매량은 점차 감소했고, 울버린 같은 인기 캐릭터들이 다른 히어로들과 함께 하는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엑스맨 시리즈를 찾아볼 필요성도 줄어들었다. 결국 마블 코믹스는 여러 종류가 발행되던 엑스맨 타이틀을 대폭 축소하고, 인휴먼즈와의 전쟁을 통해 뮤턴트를 전멸 직전까지 몰아갔다.

이미지: 마블 코믹스

이쯤에서 많은 사람들은 마블이 인휴먼즈의 영상화를 위해 내린 결단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폭스가 엑스맨의 영화화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마블이 엑스맨을 버리기로 작정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누구라도 충분히 떠올릴만한 이유였다.

하지만 엑스맨 시리즈를 집필하던 작가들에 따르면, 대략 그 시기부터 마블은 엑스맨 시리즈를 개편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인휴먼즈의 실사 드라마가 참담한 결과를 내면서 다시 엑스맨을 살리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이 있었지만.

엑스맨 타이틀은 다시 늘어났지만 작가들은 이야기를 마음껏 펼치기가 어려웠다. 곧 대대적인 개편이 예정됐기 때문인데, 많은 뮤턴트들이 연달아 살해됐고, [엑스맨 블루]를 비롯한 몇몇 시리즈는 흐지부지 끝을 맺었다.

그리고 2019년, 마블은 모든 엑스맨 타이틀을 끝내고 공식적으로 엑스맨의 세계관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공표했다. 때마침 디즈니가 폭스를 인수 합병한 이후라 그 의도가 순수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영화 판권도 돌아왔고 엑스맨도 다시 시작됐다.

새로운 엑스맨은 작가 조너선 힉맨에게 맡겨졌다. 그는 이미지 코믹스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와 [팍스 로마나] 같은 작품으로 꽤 괜찮은 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이후 마블에서 [시크릿 워리어즈]나 [판타스틱 포] 등을 집필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힉맨은 종종 큰 구상을 갖고 기존의 설정을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데, 어벤저스 팀을 확장시킨 뒤에 마블 유니버스를 파괴하고 재창조한 [타임 런즈 아웃]과 [시크릿 워즈]가 대표적이다. (다만 성공적이라고 하긴 어렵다) 최소 일 년 이상 엑스맨을 준비해온 그는 [하우스 오브 X(로마 숫자로 읽음)]와 [파워즈 오브 X]라는 두 시리즈를 번갈아 발표하면서 새로운 엑스맨의 포문을 열었다.

이미지: 마블 코믹스

힉맨의 엑스맨은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독자를 완전히 새로운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변화는 엑스맨의 동료 과학자인 모이라 맥태거트부터 시작됐다. 그는 찰스 자비에 교수의 연인이었으며, 뮤턴트만 걸리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은 최초의 인간이었다.

힉맨은 오래전에 죽은 모이라의 설정을 완전히 바꾸었다. 모이라는 사실 부활하는 능력을 가진 뮤턴트였는데, 죽을 때마다 전생의 기억을 유지한 채 다른 타임라인의 현실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했다.

모이라는 아홉 번의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뮤턴트의 멸종을 막아보려 애쓰다가 마지막 삶으로 추정되는 현재의 인생에서, 바이러스로 죽은 척 위장하고 숨어 지내면서 자비에와 매그니토에게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바로 뮤턴트 공통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미지: 마블 코믹스

뮤턴트끼리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우선, 거대한 섬이면서 살아있는 생명체인 크라코아에 뮤턴트로만 구성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자비에는 얼굴을 뒤덮는 이상한 헬멧을 쓰고 나타나 전 세계에 자신들의 뮤턴트 국가를 인정해주면 크라코아에서 나는 특수한 꽃을 제공하겠다고 선포했다. 이 꽃은 인간의 수명을 5년 연장시키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등의 특수한 효능을 지녔다. 일종의 협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그의 발언은 그동안 박해받고 살해된 뮤턴트들이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다른 국가들을 압박하면서 인류를 지배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과의 화합을 강조하던 자비에의 사상에 변화가 온 것일까? 무언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또한 악당 뮤턴트들에게도 협력하고 함께 공동체를 구성한다면 이전의 죄를 묻지 않겠다는 ‘대사면’을 내렸다. 이에 따라, 뮤턴트의 생존이라는 목표에 공감하는 아포칼립스, 미스터 시니스터, 미스틱 같은 빌런들이 크라코아에 둥지를 틀고 어울려 살게 됐다.

이미지: 마블 코믹스

또 다른 큰 변화는 그동안 죽은 많은 뮤턴트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남의 능력을 흉내 낼 수 있는 호프 서머스, 시간을 조종하는 템푸스, 강력한 힐러인 일릭서 등 다섯 뮤턴트의 능력을 결합하여 사망한 뮤턴트들을 부활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 정확히는 클론을 배양해서 원본의 모든 기억과 힘을 그대로 집어넣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얼마 전 죽은 울버린과 사이클롭스 같은 동료뿐 아니라 적들까지 되살려냈다.

힉맨의 새로운 엑스맨은 화제 속에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설정상 여러 모순점도 보인다. 부활한 울버린은 클론 신체임에도 어떻게 진짜 뼈가 아닌 아다만티움 뼈를 갖고 있는지?, 어떤 뮤턴트들은 왜 훨씬 어린 모습으로 부활한 건지?, 효능이 있는 꽃은 갑자기 어떻게 생겨났으며 부활 작업도 지금까지 할 수 있었는데 안 했다는 건지? 등을 독자들이 지적하자 힉맨은 실수를 인정하고 하나씩 오류를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전과 같은 서사의 반복이 아니길 바라며 새로운 틀에서 울버린이나 스톰 등이 기존과 어떻게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고 공동체에 합류한 아포칼립스나 미스틱 같은 악인들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를 기대해본다.

조너선 힉맨은 판타스틱 포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을 가져왔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그가 떠난 이후 다시 판매고가 떨어져 시리즈가 취소됐다. 닥터 둠이 모든 것을 지배했던 내용인 [시크릿 워즈]는 장기간 진행된 것에 비해 기대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엑스맨이 반짝 상승했다가 다시 하락하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한편으로 영화화되기엔 좋은 상황이다. 이제 MCU로 들어오게 될 엑스맨 영화는 재탕하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기존 영화와는 다른 이야기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힉맨의 엑스맨은 영화 세계관에 적용되면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휴 잭맨을 능가하는 울버린 캐릭터가 나올 수 있을 것인지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