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애폴리스의 시민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시위가 미 전역에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도시 곳곳에 모여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를 외치고, 정치인, 기업, 유명 인사 모두 제도적 인종차별과 비백인 인종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을 없애는 데 힘을 모으겠다고 선언했으며, 미 연방의회는 인종차별과 공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법안을 상정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시위대 진압을 위해 군대 투입까지 고려했다(국방부 장관의 반대로 무산됐다). 몇몇 경찰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장면이 SNS로 공개되었고, 일부 경찰은 동료들을 응원하면서 시민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다.

비백인 인종에 대한 사법 집행기관의 차별과 폭력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근 한 연구는 TV가 미국 사회의 범죄 현실을 왜곡하고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범법 활동을 일반화한다고 비판했다. 지난 1월, Color of Change라는 시민권 지지 비영리 단체는 TV 범죄물 시리즈에서 경찰 등 공권력 집행자가 그려지는 방식을 연구했다. 지난 20년간 범죄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과 달리, TV 드라마 속 범죄는 꾸준히 증가한다. 보고서는 TV 드라마가 범죄와 인종에 대한 진실을 왜곡하고, 비백인을 희생양으로 삼으며, 형사사법계 종사자의 비행을 일반화하고 정당하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이 글에선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전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Normalizing Injustice: The Dangerous Misrepresentations that Define Television’s Scripted Crime Genre

보고서는 미국 범죄 TV 드라마(scripted television series)가 미국 형사사법 시스템 내 광범위한 인종 불평등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다. 연구자는 TV가 시청자의 현실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바탕해, 현재 방영하는 드라마 또는 범죄물 장르 자체가 TV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시청자의 안전, 범죄, 처벌, 인종, 젠더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태도를 수립하는 데 잠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p 27)

연구는 2017-18 시즌에 방영 또는 공개된 메이저 텔레비전 네트워크(NBC, CBS, Fox, ABC)와 스트리밍 서비스(넷플릭스, 아마존)의 범죄 드라마 26편의 7~80%인 에피소드 353편을 선정했다. 각 에피소드는 무작위로 선택되었으며, 에피소드의 스토리라인과 주요 캐릭터 15인(형사사법계 종사자, 관련 요주 인물, 피해자)을 분석했다*. 연구는 또한 해당 프로그램의 쇼러너, 작가, 크리에이터의 인종 및 성별 구성을 파악했다.

*캐릭터는 ‘선한 자(Good Guy)’, ‘악한 자(Bad Guy)’로도 분류했는데, ‘선한 자’는 다른 사람들을 돕거나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행동을 하는 인물로 에피소드 끝까지 그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이며, ‘악한 자’는 처음부터 악한 사람이며 에피소드 어느 순간부터 두드러지게 악한 인물로 그려진다.

1. 불의한 행동을 표준 절차나 문화적 규범으로 만드는 ‘불의의 일반화’

이미지: CBS

조사 대상 드라마의 대다수는 형사사법계 종사자가 저지르는 불법 행위를 일상적이고, 무해하며, 필요하며, 심지어 정의 추구를 위한 고결한 행동으로 그린다. 사건 해결을 위해, 나쁜 놈을 잡고 정의를 위해 싸우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라는 것이다. 전체 26편 중 18편에서 형사사법계 종사자인 선한 자가 악한 자보다 불법 행위를 더 많이 저지르며, 이런 행위들은 용서하거나 용인할 수 있는, 본질적으로 선하고 옳은 것이라 판단된다.

형사사법계 종사자이면서 선한 자가 저지르는 불법 행위와 악한 자가 저지르는 불법 행위의 횟수를 비교하면, 18편의 평균은 18:1이다. [블루 블러드], [리썰 웨폰]은 그 비율이 36:1, 34:1로 치솟는다. 반면 행위가 불법이라 인지하는 캐릭터의 64%는 비백인 또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행위의 적법성을 인지하는 특성은 백인 남성 캐릭터에겐 기대되지 않는다. 범죄 장르 전반적으로 불법 행위를 인식하는 것보다 저지르는 것을 더 기대하며, 그것이 일의 일부라 여긴다.

몇몇 작품은 비백인 캐릭터를 불법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검증의 도구로 쓴다. 비백인은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범인이나 지지하는 인물, 또는 암묵적인 옹호자로 그려진다. 이 경우 시리즈는 불법적인 행위를 묵인하거나 무시하는 비율이 크면서도 비백인 캐릭터가 다수 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2. 형사사법 시스템의 작동 방식의 그릇된 재현 & 인종 차별의 비가시적 묘사

이미지: NBC

TV 드라마에는 형사사법 과정이나 행위가 일으키는 피해를 다루는 이야기나 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또한 실생활에서 만연한 인종 편견과 관련된 구체적 불법 행위는 TV 드라마 내 형사사법계 종사자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드라마 속 세계에선 인종 프로파일링, 경찰의 과도한 무력 사용, 검찰권 남용, 재판관의 권력 남용 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형사사법 시스템의 일상적 실행을 그릴 때도 인종 중립적으로 그리는데, 이는 현실과 맞지 않다. 보석, 형량 협상, 투옥 등의 절차에서 흑인을 노리거나 백인에게 불평등한 혜택을 주는 것은 묘사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드라마의 인종 중립적 태도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인상을 남긴다. 사람들은 TV 드라마가 그리는 ‘정의가 구현되는 준법 사회’에서 인종, 성별, 과도한 폭력과 남용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오히려 형사사법 절차는 비효율적이며, 그 원인을 경찰, 검찰 등 형사사법계 종사자가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표시 또는 암시한다. 정의 구현이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은 관료적이고, 피해자에게 관대한 것이라 인상을 남기며, 감시와 보석금 등 다른 표준 절차를 무해하게 보이게 하거나 완전히 잘못 묘사한다. 그러나 전체 353편 중 형사사법 시스템의 개혁 또는 개정을 논의하는 에피소드는 단 6편뿐이다. 그리고 문제를 제기하는 캐릭터는 매번 비백인이다. 백인은 형사사법계 종사자를 변호하고, 비백인만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 모두 다양성을 위한 접근 차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TV 범죄 드라마에서 피해자가 비백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적다. 전체 353편에서 다룬 범죄 중 피해자가 흑인 여성인 경우는 전체 범죄의 9%였다. 반면 피해자 중 백인 남성은 35%, 백인 여성은 28%, 비백인 남성은 22%, 비백인 여성은 13%였다. 성범죄 수사가 메인 테마인 [로 앤 오더: 성범죄전담반]에선 여성 피해자가 가장 많이 나오지만 비백인 피해자 비율은 가장 적다.

3. 카메라 뒤 비백인과 여성의 소외

이미지: NBC

연구 대상인 2017-18 시즌 TV 범죄 드라마 시리즈 26편에는 작가 275명, 쇼러너 27명, 크리에이터 42명이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중 81%, 26편 중 21편의 쇼러너는 백인 남성이었다. 작가진의 최소 81%도 백인이며, 흑인은 9%에 불과했다. 전체 26편 중 20편은 흑인 작가가 아예 없거나 1명 뿐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7초]와 [루크 케이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작품의 백인 작가와 비백인 작가의 비율은 6:1이었다.

작가가 모두 백인인 작품은 3편(NCIS, 블루 블러드, 마인드헌터)이며, 백인 작가가 90% 이상인 시리즈는 6편(블랙리스트, 로 앤 오더: 성범죄전담반, 블라인드스팟, 9-1-1, 엘리멘트리, 크리미널 마인드)이다. 장르 전반에 걸쳐 여성 작가는 전체의 37%, 비백인 여성 작가는 11%에 불과하다. 범죄 드라마 26편 중 5편만 작가팀 중 여성이 절반을 넘었다(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불, 마인드헌터, 범죄의 재구성, 크리미널 마인드) .

조사 대상인 범죄 드라마를 가장 많이 제작, 방영하는 네트워크는 CBS와 NBC다. 하지만 작품의 수나 개별 시리즈의 유명도와 달리, 쇼러너나 작가진 등 창작 집단 구성에선 다양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인종 측면에서 다양성이 가장 떨어지는 11편 중 8편이 CBS와 NBC 작품이다. 2018-19 시즌에는 조사 대상 시리즈 26편 중 19편이 후속 시즌을 제작,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들의 작가진 전체 중 86%는 백인이며, 흑인은 7%에 불과하다.

다양성 부족은 작품 속 캐릭터 구성과 구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종 진실성 지수 (The Racial Integrity Index)’를 확인하면 더욱 잘 드러난다. 작가팀 내 다양성과 작품의 내용, 즉 비백인과 여성들의 현실성, 행위, 관계, 의도, 생각, 느낌 등 재현하는 정도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범죄 TV 드라마 대다수의 지수는 매우 낮다. 이 지수가 가장 낮은 프로그램은 [나르코스], [9-1-1], [시카고 P.D.], [블랙리스트], [NCIS] 등이다.

제언

이미지: 넷플릭스

보고서는 인종 문제의 시스템적 문제는 시스템 규모의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간단한 변화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명백하고, 명료하며, 의미 있는 정책 변화와 실행이 중요하다. TV 범죄 드라마 시리즈 중에서도 장르 관습을 타파하는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작품도 있지만, 한두 편의 특별 케이스가 전체의 오류를 덮을 수는 없다.

그래서 보고서는 업계 전반에 걸쳐 적용할 만한 기본 원칙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임 있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의미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해롭거나 부정확한 스테레오타입을 보여주기로 결정한 임원들에게 책임의 대가를 물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작가팀 구성에 인종, 성별 다양성을 성취해야 하고, 작가팀의 베테랑 작가들(주로 백인 남성)들이 새 작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경험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구체적인 제언은 다음과 같다.

  1. 오늘날 TV 범죄물의 관습을 규정한 가장 위험한 묘사를 피하기 위한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쇼러너의 주도 아래 대본 집필 시 피해야 하는 관습들을 정리하고 충실히 따른다.
  2. 스토리텔링과 모티프 면에서 주니어 레벨 작가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관점을 받아 들어야 한다. 이는 작가팀 내에서 활발한 토론을 거치는 것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 쇼러너와 임원에 함께 압력을 넣는 것도 포함한다.
  3. 미국 사회 내 인종 현실과 형사사법 시스템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다양한 이야기와 캐릭터, 정보가 나올 수 있다. 범죄 드라마 작가들은 새로운 이야기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형사사법 시스템 내 인종 불평등을 인정하며, 정치와 정책이 이에 미친 영향을 받아들여야 한다.
  4. 제작자와 작가들은 TV 드라마 제작의 유·무형의 관습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는 형사사법계 종사자를 그리는 방식, 백인 또는 비백인을 캐스팅하게 되는 캐릭터 유형 등 시청자의 평등 또는 사법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영향을 미칠 만한 요소를 포함한다.
  5. 어떤 새 캐릭터나 새 정보를 시청자에게 제시할 것인지 등 작가팀이 성취할 목표를 공공연히 설정한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최소한 작가실 내에서라도 목표를 명백하게 설정하는 것은 성취에 도움이 된다.
  6. 쇼 전반의 패턴을 파악하고 내부에선 파악하기 힘든 문제점을 규정하기 위해 독립 감사를 도입하는 것을 고려한다.
  7. 현실적인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해 잘 이해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며, 의사 결정 및 크리에이티브 과정에 참여하는 인물들을 다양화한다.
  8. 형사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을 종사자가 아닌 공동체, 시민 단체, 연구기관, 또는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평범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현실적인 이야기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