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리틀빅픽쳐스

‘혼전임신’, ‘친부모 찾기’, ‘사라진 예비 아빠’ 등등. 소재만 보면 막장 드라마가 부럽지 않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애비규환]은 오늘날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가슴 따뜻한 영화다. 막장과 따뜻한 가족 드라마,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을 [애비규환]은 어떻게 성공적으로 조합했을까?

스물두살 대학생 토일은 남자친구 호훈(고3이지만 성인이다)의 과외를 봐주던 중, 눈이 맞아 임신을 하게 된다.5개월 후, 토일은 그동안 임신 사실을 숨긴 엄마와 새아빠에게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며 학업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내용의 야심 찬 PPT를 건넨다. 그러나 따뜻한 격려는 고사하고 “너는 도대체 누굴 닮은 거냐”라며 면박만 듣는다. 토일은 ‘내가 누굴 닮아서 이런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친아빠를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토일은 어린 시절 헤어진 친아빠가 기술가정 선생님이라는 단서와 함께 무거운 몸을 이끌고 대구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친부를 찾는 데 성공하지만, 예상과 달리 철없는 모습에 실망감만 안은 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실망도 잠시, 이번에는 호훈의 행방이 묘연하다. 그동안 자신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호훈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토일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미래에 대한 확신마저 흔들리기 시작한다. 임신을 탐탁지 않아하는 새아빠와 실망스러운 친아빠, 사라진 예비 아빠까지. 그야말로 ‘애비’규환이다. 

이미지: 리틀빅픽쳐스

[애비규환]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가 토일 가족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토일은 어릴 적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고, 새아빠와는 함께 산 지 1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어색하다. 그런 와중에 20대 초반이란 나이에 덜컥 임신까지 했으니, 누군가는 이들을 보며 ‘콩가루 집안’이라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하나 감독은 토일의 다이내믹(?)한 가정사를 결코 ‘실패’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부모의 이혼과 재혼, 혼전임신 등을 예나 지금이나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하고 극복할 수 있는 ‘실수’로 바라본다. 이러한  따뜻한 시선은 토일과 비슷한 성장 환경을 거친 관객에게는 위로를 건네고, 누군가의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는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이미지: 리틀빅픽쳐스

[애비규환]에 담긴 개그 코드 역시 매력적이다. 슬랩스틱이나 화장실 개그, 유치한 말장난이 아닌, 예상치 못한 상황의 연속에서 비롯된 유머는 소소하고 편안한 웃음을 선사한다. “제사를 그렇게 지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시종일관 한탄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변화하는 가족 개념에 아직도 부정적인 일부 기성세대에 대한 풍자도 담아낸다. 그래서일까? 다소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애비규환]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다. [애비규환]으로 첫 영화 주연을 맡은 정수정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 대담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상 가보지 못한 길 앞에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평범한 청춘의 모습을 있는 현실감 넘치게 그려낸다. 장혜진과 최덕문, 신재휘, 강말금, 남문철, 이해영 역시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에 친근함을 더한다. 베테랑과 청춘 배우들의 맛깔난 케미스트리가 돋보인다. 

이미지: 리틀빅픽쳐스

[애비규환]은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가족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족하더라도 어려움과 행복을 같이 나누는 게 결국 가족이라고 이야기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만큼 오늘날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메시지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