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유향

2018년 10월 24일 “해적왕”으로 데뷔하고 약 2년 만에 케이팝 스토리텔링에 한 획을 그은 에이티즈(ATEEZ)가 오는 3월 1일 컴백한다. 에이티즈는 작년 7월 29일, 1년 3개월의 대장정이었던 “TREASURE”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ZERO : FEVER Part.1 ]를 발매하며 새로운 막을 열었다. 곧 공개될 앨범 [ZERO : FEVER Part.2]는 이전에 한 이야기를 바로 이어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관 맛집’으로 불리는 에이티즈의 서사가 어떻게 펼쳐질지 지금까지의 활동을 기반으로 예측해보고자 한다. 이번 타이틀곡 “불놀이야 (I’m the One)”와 컴백 뮤직비디오, 노래, 무대 등에서 주목해볼 만한 점들을 짚고 넘어가 보자.

끝이 기다리는 시작, 노스탤지어와 새로움이 공존하는 멜로디

이미지: KQ 엔터테인먼트

에이티즈의 ‘다크함’ 또는 ‘강렬함’은 음악에서부터 느껴진다. 타이틀곡의 대부분이 도입부만 들어도 비장함이 느껴져 세련된 21세기의 군가 같다. “Answer”에서 웅장한 분위기를 내는 낮은 음의 오토튠은 뮤직비디오나 무대를 따로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그룹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음악적 요소는 “해적왕”으로 데뷔하면서 시작된 무언가를 “찾아서 헤매다 길을 잃어가”(INCEPTION)는 그들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Say My Name”의 도입부에 들리는 곡의 메인 모티브는 보헤미안풍의 관악기 연주를 배치해 그룹이 갖는 ‘해적’ 이미지 특유의 자유로움과 비장함을 더한다. 특히 코러스에 깃들어진, 여러 겹의 목소리가 레이어드된 ‘떼창’ 사운드와 부족 또는 부대를 연상케 하는 ‘후!’ 같은 찬트 (Chant) 추임새는 에이티즈의 아이덴티티는 그룹의 단일성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처음으로 청량함이 더해진 타이틀곡 “WAVE”는 다른 타이틀곡들처럼 강렬함이 느껴지지 않을지 몰라도 완벽한 장조가 아니라는 점과 후렴구에서 멤버 민기가 외치는 “HAKUNA MATATA”를 통해 단순한 여름 노래가 아님을 보여준다. 에이티즈가 “WAVE”의 밝은 분위기로도 컨셉에 따라 비장함을 표현할 수 있는 건 그룹 특유의 음색 때문인데, 작곡가 LEEZ의 역할이 한몫한다. 그는 에이티즈뿐 아니라 드림캐쳐의 단골 작곡-작사가로, “PIRI”, “SAHARA” 등 그룹의 거의 모든 곡들을 작사, 작곡, 편곡했다. 앞서 말한 곡들을 들을수록 LEEZ의 장르 짙은 음악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에이티즈와 함께 용감하지만 아픔이 있어 보이는 해적 크루의 컨셉을 음악에 그대로 옮겨와 세계관을 완성해갔다.

이 보헤미안풍의 사운드가 익숙할 수 있는 이유로 우리가 블락비에 익숙한 세대라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자. KQ 엔터테인먼트라는 같은 회사를 공유하기 때문인지 에이티즈는 데뷔 때부터 블락비의 동생그룹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하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회사만이 아닌 것 같다. 데뷔곡 “해적왕”은 블락비의 “닐리리 맘보”와 연결성을 계획하고 나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사적 비슷함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음악적 요소에서도 많이 들리는데, 앞서 언급한 ‘찬트’ 추임새와 레이어링이다. 다만 에이티즈에게 “해적왕”은 대서사의 시작이며 지금까지 이어온 이야기의 첫 챕터다. 에이티즈의 노래에서 ‘군가’, ‘블락비’, ‘해적’ 등의 익숙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판타지적인 새로움을 더해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 클리셰가 될 수 있는 기존의 것을 활용하며 동시에 차별화를 꾀하는 게 에이티즈 음악의 가장 큰 장점이다.

4세대 아이돌의 방향성이 잘 드러나는 가사

에이티즈는 어떻게 청량한 여름의 파도에서 애환의 향기가 나게 했을까. 답은 바로 가사에 있다. ‘우리’라는 불특정한 아이덴티티에 대해 비유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에이티즈의 노래에는 힘이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케이팝 노래가 아이유의 노래 제목처럼 ‘너와 나’의 이야기였다면, 4세대 아이돌 노래의 ‘우리’가 일컫는 것은 그룹의 정체성일 수도, 세계관일 수도, 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역사일 수도 있다. 에이티즈의 강렬함이 유독 깊게 파고드는 이유도 스토리 없이 남성성을 과시하는 ‘쎈 척’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과 의도에 의한 파워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미지: KQ 엔터테인먼트

“저기 저 달빛이 부를 때 / 세상을 덮칠 듯 달구네 / 우리 손을 잡고 날아가” (Say My Name)
“여기 지금 우린 오션블루 / 파도 위 어디쯤인가 / 함께 하고 있어 여전히 / 어디로 갈진 모르지만” (WAVE)
“On my my way 없는 길도 만들어 / 어서 가자 어서 가자 / 끝이 기다리는 시작으로” (WONDERLAND)
“건배하자 Like a thunder / 여기 모두 모여라 / 뜨겁다면 Join us, yeah / 깃발 들고 우린 Hands up / 모두 준비되었는가” (ANSWER)

케이팝이 본격적으로 4세대를 맞으며 아이돌들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둘만의 사랑이나 특정 누군가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내용보다 팬덤의 불특정함을 내세워 그들을 그룹 ‘여정’의 동행자 또는 ‘싸움’의 아군 등으로 표현한다. 에이티즈 노래 가사도 역시 ‘그대’나 ‘그녀’ 등의 청자를 특정 지어 부르는 대명사보다는 ‘우리’, ‘We’, ‘Our’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특히 위 가사가 증명하듯 무언가를 같이 “하자”는 격려와 힘을 북돋아 주는 내용을 자주 담는다. 이러한 가사는 사기를 높여줄 뿐 아니라 에이티니(팬덤명)와 에이티즈를 감싸는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러한 ‘파이팅’을 외치는 노래가 발랄하기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도 흔치 않은데, 적절한 은유가 들어가 이를 가능케한다. 그들이 외치는 “우리의 파도”, “여정”, “길”, “세상”이 무엇인지 사실적으로 풀이할 수 없지만, 바로 그 모호함이 이 그룹, 그리고 4세대 아이돌 그룹의 스토리텔링 방법이다. 에이티즈는 거대한 “해적왕” 세계관 속에 존재하지만, 그 밖에 아이돌로서 여정과 길 또한 팬들과 함께 걷는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스토리텔링으로 해석의 여지를 준다. 특히 팬덤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해외 팬들을 끌어 모은 이유도 탄탄한 서사 뒤에 함께 형성되는 팬과의 유대감 때문일 것이다.

이번 [ZERO : FEVER Part.2] 의 컨셉 티저에서 ‘어둠’이라고 일컫는 것은 에이티즈 세계관 내 ‘악’의 존재이며 현재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커다란 난관이라는 뜻을 내재한 것으로 보인다. 판타지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동시에 풀어내며 나아가는 에이티즈가 이번 앨범을 통해서는 무엇을 이야기할지 기대된다.

강렬한 퍼포먼스를 자랑하며 음악 속에 친근함과 혁신을 담고 달리는 에이티즈는 “ZERO : FEVER”의 두 번쨰, Part.2에서 어떤 시작을 마주할까. 힘이 돋보이는 멜로디와 깊이 있는 가사로 여러 세계의 문을 열고 이야기할 것이리라 희망한다. 앨범 발매 한 달 후, 4월 1일에 시작하는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킹덤]에서 에이티즈만의 스토리텔링으로 빛나는 모습 또한 기다려진다. 새파랗고도 검붉게 물든 티저에서 느껴지듯 세계관의 시작과 끝을 흐트려 놓는 에이티즈는 이번 작품에서도 비극과 희극, 어둠과 빛을 넘나들 것으로 예상된다.

에디터 김유향: 화려하고 불안정한 가능성으로 도배된 케이팝을 쫓습니다.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자리잡은 아이돌들의 다양한 세계관과 판타지를 흥미로워하며 사소한 것에 의미부여하기가 취미이자 특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