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

이미지: 마블 코믹스

2009년에 출간된 마블의 [램페이징 울버린]에는 바다에 빠진 울버린이 한국으로 떠내려 와서 겪는 모험담이 실려 있다. 자신을 구해준 부부의 억울한 죽음을 15년 후에 돌아와 복수한다는 훈훈한 이야기이지만, 그림을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한국이 물소를 키우고 원숭이가 서식하는 환경으로 표현된다. 물론 지금은 고증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아져서 이 같은 황당한 묘사를 보기 힘들어졌지만, 아시아에 대해 무지함을 알 수 있는 해프닝이었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픽션에서 다른 나라를 묘사할 때 100% 완벽한 고증이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젠 소비시장이 특정 국가가 아닌 전 세계로 넓어졌기에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다. 다행히 여러 작품에서 점점 현지의 풍경이나 문화를 왜곡하지 않고 묘사하려는 성의가 많이 보이고 있다. 특히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 중에 이 같은 개선이 눈에 띄는데, 그만큼 관련 시장이 커졌고, 아시아계 작가들이 마블과 DC에 많이 진출한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몇 년 새에 한국, 중국, 필리핀 등의 히어로들이 꾸준히 탄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개봉을 앞두고 있는 마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역시 아시아계 인물들이 주인공을 비롯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마블과 DC는 그들의 세계관 속 아시아 지역과 관련 요소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실제 존재하는 곳부터 가상의 국가까지, 슈퍼히어로의 여러 작품들을 통해 자세하게 살펴보자.

카마르타지 (마블)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한 날씨 속에서도 신비한 기운을 품고 있는 히말라야산맥은 대중문화에서 마법, 종교, 오컬트와 주로 연관을 맺어왔다.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스티븐 스트레인지가 심하게 다친 손을 고치기 위해 찾아간 카마르타지도, 히말라야 인근 네팔의 카트만두에 있다 (코믹스에서는 티벳 근처). 영화에서 카마르타지는 소서러 슈프림인 에인션트 원을 비롯해, 많은 마법의 대가들이 머무는 성스러운 장소로 묘사했는데, 각종 희귀한 마법서적들을 보관 중임은 물론, 와이파이도[?] 연결되어 있어 마냥 옛날 도시는 아니었나 보다.   

쿤룬 (마블)

이미지: 넷플릭스

쿤룬은 신선들의 땅이라는 곤륜산을 모티브로 한 장소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으며 천국의 일곱 도시 중 하나다. 마블 드라마 [아이언 피스트]에서 등장, 15년마다 쿤룬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샤오라오라는 용이 도시의 수호자인 아이언 피스트를 선정한다고 묘사되었다. 극중 빌런 집단으로 나온 닌자 비밀결사대 ‘핸드’는 고대의 쿤룬에서 추방된 다섯 제자가 만들었다고 한다.

난다 파르밧 (DC)

이미지: CW

힌두쿠시 산맥 높은 곳에 위치한 비밀도시 난다 파르밧은 힌두교의 라마 쿠슈나 여신을 모시는 장소이다. 이곳의 시간이 바깥세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점도 특별하다. 난다 프라밧에서 곡예사 보스턴 브랜드가 라마 쿠슈나의 가호 덕분에 유령 히어로 데드맨이 되었고, 퀘스천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드라마 [애로우]와 [레전드 오브 투머로우]에선 라스 알 굴과 그의 암살단의 본부가 여기에 있으며, 수명연장과 부활의 도구로 쓰는 ‘라자러스 핏’이라는 웅덩이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영화 [배트맨 비긴스]에서 브루스 웨인이 닌자 훈련을 받은 곳도 난다 파르밧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 

마드리푸어 (마블)

이미지: 디즈니+

마블에서 서울이나 상하이, 도쿄 등의 대도시와 함께 아시아의 발전을 상징하는 곳으로 자주 등장한 지역이 가상의 국가이자 섬나라인 ‘마드리푸어’다. 인도네시아 군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다. 드라마 [팔콘 앤 윈터 솔져]에서 이곳을 무대로 팔콘과 윈터 솔져가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마드리푸어는 많은 범죄자들이 즐겨 찾는 곳인데, 상업과 문화는 엄청나게 발달했지만 빈부의 격차가 심해 많은 갈등이 일어난다고 한다. 

칸다크 (DC) 

이미지: DC 코믹스

중동지역은 샤잠이나 호크맨, 닥터 페이트 등의 히어로와 얽혀서 DC 코믹스에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드웨인 존슨 주연의 영화 [블랙 아담]의 배경이 될 칸다크 역시 중동에 위치한 가상 국가다. 블랙 아담이 통치하는 중이며, 이집트와 유사한 문화를 갖고 있다. 인근의 이슬람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규제나 법도가 자유로운 편이나, 블랙 아담의 존재 때문에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칸다크 말고도 반미성향의 테러지원국인 쿠락과 비알리아 같은 나라도 등장하는데, 이라크와 리비아 등을 모티브로 했다는 이야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