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사람은 각기 멀티 페르소나(서로 다른 자아)를 가지고 생활하며, 필요에 따라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이 사실은 최근 국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와 닮으면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어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멀티 페르소나’와 달리, 한 사람이 둘 이상의 인격을 가진 정신 질환 ‘해리성 정체 장애’를 진단받았던 빌리 밀리건(William “Billy” Stanley Milligan)의 범죄를 담은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빌리 밀리건, 24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이하 ‘빌리 밀리건’)가 그 주인공이다.

연쇄 강간 사건의 피의자로 체포되었으나, 무죄 판결을 받은 남자

이미지: 넷플릭스

1977년,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연쇄 강간 사건이 발생했다. 빌리 밀리건은 해당 범죄를 저질렀다는 수많은 증거와 정황을 토대로 사건의 피의자로 체포됐다. 당연히 유죄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그가 받은 판결은 무죄였다. 그의 다중 인격 장애(해리성 정체 장애)를 법정이 인정한 것이다. 처음에 빌리는 10명의 인격만을 공개했다. 그러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총 24명의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내용 아닌가? 실제로 빌리 밀리건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3 아이덴티티]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그의 인격들은 나이와 성별, 외모와 체격 등이 전부 달라 사회적 이슈는 물론 학계의 관심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법정이 그가 범행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중 인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여 무죄를 판결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것이 공개될수록 꼬리를 무는 그에 대한 의문들

이미지: 넷플릭스

그는 무죄 판결을 받을 만한, 실제로 다중 인격을 지닌 인물이었을까? [빌리 밀리건]은 차근차근 그 의문에 다가간다. 빌리가 저질렀던 캠퍼스 내의 연쇄 강간 사건을 중심으로, 그의 어린 시절과 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주장들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나아가 빌리가 자신의 다중 인격을 빌미 삼아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른 사연까지 되짚으며 이야기의 흥미를 더한다.

범행 사실이 밝혀진 뒤, 흉악범이라고 비난을 받았던 그가 무죄 판결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여론과 학계의 의문에도 빌리 밀리건을 변호한 두 변호사는 그가 무죄임을 이끌어냈다. 다큐멘터리는 이 과정에 집중하며 그의 다중인격을 인정한 의사와 심리학자들을 향한 의문을 치열하게 쫓는다.

갑작스럽게 추가된 14개의 인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미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빌리의 삶에도 주목한다. 그가 언급한 주장에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빌리의 언어적 능력부터 예술적 감각, 더 나아가 어린 시절의 인간관계까지 수많은 증거를 토대로 다양한 시선과 각자의 주장을 펼쳐 보인다. 그가 얼마나 불우하고 끔찍한 유년 시절을 보냈는지, 10개의 인격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밀도 있게 다룬다. 더 나아가 그의 인격 중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지도 중요하게 살펴본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작품은 또 다른 논쟁을 추적한다. 당시에 유행처럼 번져나갔던 다중인격에 대한 여론의 긍정적인 태도, 이전에 말하지 않았던 14개의 인격을 갑작스럽게 추가 언급한 빌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이전과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그가 해당 인격들을 새로 언급한 타이밍이 하필 영화 제작과 출판 제의를 받은 시점이라고 하니, 다중 인격을 주장한 그의 진심에 불신의 그림자가 짙어진다.

빌리 밀리건을 둘러싼 의문 속, 다큐멘터리가 주장하는 메시지

이미지: 넷플릭스

의문은 점점 늘어났지만, 빌리 밀리건은 계속해서 다중 인격을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아왔다. 수많은 범죄 행각에도 그가 처벌을 받지 않은 이유는 24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빌리 밀리건]은 그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 밀어 넣었는지 날카롭게 꼬집는다. 첫 범죄로 재판을 받은 이후에도 수차례 반복된 그의 잔혹한 범행, 그럼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고통만을 주장했던 빌리에 대한 수많은 의문과 근거를 적절하게 제시하며 영리하게 펼쳐낸다.

전체적으로 [빌리 밀리건]은 실존 인물을 둘러싼 당시의 여론과 의견, 더 나아가 그가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는 범죄 행각들을 담담하게 기록해나간다. 정말 그는 24개의 인격을 지닌 남자였을까, 아니면 순간적인 대응 능력이 좋은 영리한 소시오패스였을까. 그 답을 향한 작품의 치열한 추격은 지금도 계속된다.